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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Dec 28. 2019

고개 숙인 여자 스님, 뻣뻣한 남자 스님

삶 속의 붓다 얼굴, 첫 번째-폰지와 띨라신

"내가 보기에 스님은 참 돼지처럼 보입니다."
"제 눈에 대왕께서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잘 아는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나눴다는 얘기다. 무학대사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해 이성계에게 한방을 먹였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지요."
 
미얀마에서 나는 수많은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나고 왔다. 정말이다. 미얀마를 표현하는 말이 여럿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붓다의 나라'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단 하루만 돌아다녀도 곳곳에서 풀풀 풍기는 붓다의 냄새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도시 양곤 시내에서 많은 사원(파고다)들을 만나게 되면 처음에는 생경스럽기도 하지만, 곳곳에서 마주치는 가사 입은 스님들을 만나다 보면 이곳이 붓다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며 점점 친근감이 생긴다. 

▲붓다와 미얀마: 미얀마에서는 어디서든 가사 입은 스님을 만날 수 있다.
▲미얀마 스님들: (좌)어느 곳을 가든 승복 입은 스님을 볼 수 있다. (우) 줄지어 아침 탁발 공양하는 스님들


미얀마는 붓다의 나라다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다. 하지만 현재 인도는 불교의 나라라기보다는 국민의 80%가 힌두교인 힌두교의 나라에 가깝다. 불교의 발생지는 아니지만 인도보다 미얀마를 불교의 나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얀마는 불교를 현재까지 이어오며 전 국민의 90% 정도가 믿고 있고 또한 원형에 가깝게 지켜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얀마 불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대승불교가 아닌 불교 원칙론에 가까운 상좌부불교(Theravada 테라바다 불교)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현세의 삶을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한 일시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현세에서 물욕이나, 부지런한 생산활동, 성공 등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세에서는 더 좋은 세상을 가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보시하고 공양하여 공덕을 쌓는 것이 큰 가치를 갖는다. 이런 가치관 때문에 이들에게 보시나 공양은 생활이 되어 있었고 현세의 물질적 풍요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실제 들여다보니 미얀마에서 불교란 종교를 넘어선 생활이고 삶 자체로 보였다. 


이른 아침 스님들이 줄지어 걸어가며 탁발 공양하는 모습을 보면 지나치게 뻣뻣한 스님들의 자세가 좀 낯설기도 하다. 공양하는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바지런 떨며 밥이나 과일 등 공양 거리를 준비해 나와 한참을 기다렸을 텐데 스님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뻣뻣하게 앞만 보고 걸어간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좌부 불교의 원리로 보면 스님들이 현세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스님이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 원리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은 도움을 받고도 감사의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중 내가 만나본 미얀마 사람들은 젊은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관광객들을 많이 상대해 봐서 그런지 몸짓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리라. 

▲소녀의 기도: 소녀에게 붓다는 어떤 존재일까?
▲붓다는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이다.

같은 스님 다른 대우, 폰지와 띨라신
미얀마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10세 전후가 되면 출가 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신쀼(Shin Pyu)'라고 한다. 이처럼 미얀마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머리를 깎고 승려 생활을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회 구성체로 대우를 받는다. 여행 중에 곱게 차려입은 아이를 트럭에 태우고 요란하게 시내를 질주하는 차량을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신쀼 의식이었다.

이렇게 출가한 소년 스님들은 1개월~6개월 정도 부모와 떨어져 사원에서 탁발 수행을 하며 불교 교리와 예절을 배우게 된다. 양곤 달라 지역 사원을 방문했을 때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꼬마스님들을 보니 아무리 스님이라도 아이는 아이였다. 이러한 신쀼 의식은 대부분 남자아이 중심으로 하는데 이는 미얀마 불교의 철저한 남성 중심적인 불교관 때문이다. 미얀마 불교에서 여성은 전생에 공덕을 쌓지 못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실제 미얀마 정부가 관리하는 공식 스님은 남성만 될 수 있다. 스님이 되면 사회적으로 최고 대우를 받는다. 

미얀마는 1980년 불교 정화법을 만들고 각 지방 단위에 따라 위원회를 만들어 승려를 등록하게 했다. 대략 정부가 관리하는 스님은 46만 명 이상(2001년 기준-최근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으나 현재도 이 정도 수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이라고 하는데 정식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시처럼 시험을 쳐서 통과해야 한다. 따웅지 시내를 헤매던 중 마침 승려 자격시험(?)을 치는 모습을 봤는데 가사를 입고 진지하게 시험을 보는 젊은 스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자격을 갖춘 스님을 '폰지(Pongyi)'라고 부른다. 

▲띨라신(비구니): 폰지(남자 스님)와 다르게 수도자 생활하는 띨라신(비구니)- 대우받는 폰지에 비해 모습이 팍팍해 보였다.

이에 비해 미얀마에서 '띨라신'이라고 부르는 여자 스님들의 대우는 이와 다르다. 미얀마 거리를 걷다 보면 분홍빛 가사를 걸친 스님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비구니(여성 스님)인 ‘띨라신’들이다. 이들은 정식 스님은 아니지만 불교에 귀의하여 수도자로 살아간다. 낮에 땡볕을 걸으며 탁발하는 모습을 보니 띨라신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차별하는 것 같아 종교관을 떠나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소년 스님들: 신쀼 의식을 마치고 단기 출가한 소년 스님들-천진난만한 모습이 아이는 아이다.


우티로카 스님을 만나다
5년 전, 미얀마의 얼굴이라는 쉐다곤 파고다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미얀마의 고승 우티로카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쉐다곤 파고다를 대충 둘러보고 남문 쪽 보리수 옆에 사람들이 앉아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 장소에 앉아 있었다. 그때 옆에서 누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가사를 입은 노스님이었다. 온화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노스님의 기운이 남달라 뭔지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도 한국을 잘 안다며 더욱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30여 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워낙 반 토막짜리 짧은 영어 실력이라 스님의 고귀한 말씀을 다 담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몇 마디씩 들리는 단어와 스님의 바디 랭귀지에 온 신경을 곧추 세우고 이해하려고 하니 대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이것도 순전히 내 추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티로카 스님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유학파 스님이고 우리에게 미얀마 불교의 의미를 조금 설명해 주었다. 

특히 몇 번을 가슴에 손을 얹으며 'mind(마인드)' 'spirit(스피릿)'을 강조하셨는데 아마도 불교의 깨달음과 정신수양을 말씀하신 것 같았다. 각자 이해하는 방식으로 우티로카 스님의 즉문즉설을 경험한 우리는 우티로카 스님과 기념 촬영도 하고 주소와 명함도 교환했다. 물론 다시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순간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지려는데 우티로카 스님이 우리를 잡으며 한마디 한다.
'Donation(도네이션=기부)!' 
아하! 우리는 스님에게 5천짯을 내밀었다. 그런데 돈을 받지 않는 거였다. 뭐라고 다시 말했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두 손으로 드리니 그때서야 마땅찮은 표정으로 돈을 시주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얀마에서 스님에게 시주나 공양을 올릴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공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5천짯을 적선하듯 내밀었으니 스님이 약간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혹시 미얀마 여행 중에 스님에게 시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공손하게 두 손으로 올리기 바란다. 


벌써 5년이나 지났다. 우티로카 스님은 잘 계시는지 모르겠다. 건강하시어 오래오래 자비를 베푸시며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우 티로카 스님: 노스님에게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법명을 가졌다. 불교도는 아니지만 군대에서 얻은 초코파이 법명이다.  ‘홍의(弘義)’, 나는 이 법명이 참 좋다. 비록 초코파이 유혹에 빠져 얻은 이름이지만 ‘넓을 홍’ ‘의리 의’ ‘홍의(弘義)=널리 의리를 전파하며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자주 쓰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이 이름을 들고 다닌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든 불교를 보니 그동안 무교였던 나도 종교적 삶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종교는 절간이나 교회, 성당 같이 정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 속 실천으로 있어야 진정한 종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 여행 내내 보이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붓다의 흔적이고 붓다의 가르침들이었다. 짧은 기간의 여행으로 수백 년간 녹아든 붓다의 얼굴을 다 볼 수는 없었지만 미얀마가 불교의 나라라는 것은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붓다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말이 겹쳐진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인도의 동쪽으로 간 까닭은 붓다의 깨달음이 붓다의 나라 미얀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함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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