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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May 14. 2019

여행은 뭘까요

여행은 노는 것

여행은 뭘까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여행을 떠나고자 할까요? 왜 우리는 몇 개월 전부터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예매하고,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지,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여행을 좋아하는 저의 기본적인 생각의 바탕은 이겁니다. 사람은 놀기 위해 태어났고, 여행은 노는 데에 아주 적절한 이유와 환경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죠. 여행은 노는 거니까요. 남이 시키는 일 안 해도 되고, 좋아하는 일만 실컷 하면 되는 자유로운 시간이잖아요.



여행을 떠나서 얻게 되는 자유로운 시간에, 저는 공간들을 경험합니다. 그 지역의 여러 건축 작품들과 장소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닙니다. 때로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아니면 성당과 절, 그게 아니라면 공원이나 골목 이곳저곳도 모두 좋습니다. 일상의 공간들과는 다른, 낯선 공간을 경험하는 것이 제가 여행을 떠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제가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 공간들의 사진을 찍고, 그 공간들의 좋은 이유를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소장한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이 되는 공간에 주목합니다. 어떻게 빛을 들여오게 설계했는지, 사람들은 어떤 순서로 움직이게 되는지, 작품끼리의 간격과 높이는 어느 정도여서 좋은 것인지.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요소들이 그 공간을 좋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만듭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설계했는지는 알고 가는데, 오히려 그 안에 든 작품들은 모르고 가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는 경험도 다반사입니다.


성당이나 교회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오로지 신을 위한다는 한 가지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고, 건축가는 딱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리는 거예요. 딱 한 가지의 고민.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이 신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각 시대마다 지어진 교회와 성당의 모습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때 중요시했던 가치들이 고스란히 공간에 녹아있고, 아낌없이 쏟아부어진 노력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죠.


꼭 건물이 아니더라도 좋아요. 여행지의 공원은 꼭 방문해야 합니다. 공원은 사람을 관찰하기에도 좋은 공간이라, 공원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공원을 즐기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어요. 유모차를 끌고 나온 사람, 자전거를 타고 나온 사람, 조깅을 하는 사람과 돗자리를 깔고 누워 햇빛을 만끽하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공원을 즐기고 있는 것이겠죠. 그럴 때면 도심 속 공원이 시민들에게 어떤 기능을 제공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곤 합니다.


좋은 공간에 가면 한참을 감탄하고 둘러보다가, 주저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그런 경험들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지속적으로 글을 쓰며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공간을 경험하기에 좋은 여행지를 꼽으라고 하면, 두 곳 정도를 꼽습니다. 미국 뉴욕과 일본의 나오시마.

 

뉴욕은 정말 다양한 것들이 한 번에 압축된 것과 같은 도시입니다. 모든 문화들이 집대성된 곳이고, 그곳엔 건축가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지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훌륭한 건물들이 있고 아직도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도시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들로만 여행 일정을 꽉꽉 채워도 모자랍니다. 뉴욕 여행 중에는 정말 한숨을 쉬며 친구와 이야기했어요. 이 도시 사람들은 이렇게 엄청난 공간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걸 본인들은 알까?


낮에 센트럴파크와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았다면, 밤에는 재즈바와 스피크이지 바에 한 번쯤 들렀으면 좋겠습니다. 꼭 오래되고 유명한 재즈바가 아니더라도, 연주자와 그렇게나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을 듣고 음식을 먹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리고 스피크이지 바는 미국에서 술이 금지된 시대, 몰래 술을 마시기 위해 생겨난 공간이라 아주 재밌는 입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핫도그 집 전화부스를 통해 들어가기도 하고, 양복점 문을 열면 숨겨져 있던 바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좋은 공간들이죠.


그에 반면 나오시마는 사실 도시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섬이라, 그저 섬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습니다.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나오시마는 건축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여행 리스트 중 언제나 1순위입니다. 몇 번이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요. 안 가봤다고 하면 오히려 묻습니다. 왜 아직도 안 가봤어? 얼른 가, 얼른. 빨리.


나오시마를 포함해 12개의 작은 섬들에는 3년에 한 번씩 예술의 축제가 열리고, 섬 곳곳에는 일본의 유명 건축가들이 고심해서 지은 미술관이 군데군데 조용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제 인생 미술관과 터미널은 모두 나오시마에 있어요. 차분히 예술과 건축을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여행지입니다.



여행이 좋은 점은 역시 정답이 없어서겠죠.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고, 좋아하는 일에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으니까요. 


또 짐을 싸들고 여행을 떠난다는 딸에게 아빠는 종종 정말 궁금한 것처럼 묻습니다. 가서 뭐하려고? 그럼 전 대답합니다. 뭐하긴, 구경하지. 건축가란 직업은 이럴 때 조금 유리합니다. 아빠, 이게 다 공부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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