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대접 받는 세상에서 살고픈 한국 청년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저) 독후 리뷰

by 유연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곧바로 뒤이어 <한국이 싫어서>를 읽었습니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의 상황은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 씨보다 더 악조건이었지만, 캐릭터 자체는 더 적극적인 여성상으로 그려집니다. 물론 특정 꿈을 향해 달려가는 환희에 가득찬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서,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어서 도망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 또한 선택이지요. 그 선택마저도 두려워 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머무는 이들이 많으니까요(저 포함 ^^;;).

이 소설을 읽으며 밑줄 친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습니다. 밑줄 친 부분마다 다 암울한 한국 현실,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현실을 축약해놓았기에 감탄한 문장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옮겨 놓고 다시 천천히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발췌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다 선택했습니다.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p. 186)



사.람.대.접. IMF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생겨나고,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서민들의 삶이 몰락하면서 양극화가 극심해져가는 한국사회. 그 안에서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의 차이는 경제적인 수준뿐 아니라 마음의 거리도 멀어졌습니다. 감정의 골 또한 점점 깊어져가는 것 같습니다. 탕진잼, 금수저와 흑수저 등 신조어들만 보아도 청년들이 분노하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전 기사에서 '경비실에 에어컨을 달아주지 말자는 한 아파트 주민의 대자보'를 보았습니다.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니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더군요. 세월호 아이들을 구하느라 본인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기간제 교사분이 기간제란 이유로 순직처리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도 우리는 분노 했습니다. 백화점 VIP라며 죄 없는 판매직원을 무릎꿇리며 갑질하는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였을까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분노했던 것이 아닐까요?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는 그 부분을 짚어냅니다. 계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이 소개되고, 그로 인해 그녀가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가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물론 호주에서의 삶을 마냥 행복하게 그려내지는 않습니다. 저자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써내려가기 위해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이면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본인 인생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두는 가치를 가지고 있지요. 어떤 사람은 돈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명예라고 합니다. 사랑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친구는 안정되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도 고민해보았습니다. 다른 건 다 포기해더라도 죽어도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를 뽑는다면 무엇일까? 저도 계나와 같은 생각입니다. 바로 '사람 대접 받는 삶' 입니다


정당하게 일 한만큼 대우 받고, 돈이나 직업, 학벌, 외모로 차별 당하지 않는 세상

직급이 낮다고, 나이가 어리다고, 가난하다고,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무시하지 않는 세상

자본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성보다 더 우위에 두지 않는 세상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세상

이것이 제가 꿈꾸는 삶이고, 세상이고,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최후 가치입니다.




격정의 한국사를 몸소 겪어오신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유약해서 금방 힘들다고 포기해버리지. 요즘 애들은 인내심도 노력도 부족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첨언하자면, 이 책은 그저 유약한 청년이 삶이 힘들다고 칭얼대고 불평하는 책이 아닙니다. 더 노력할 필요 없이 바로 포기하도록 권장하는 책도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 불평만 하면서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계나의 친구 은혜와 미연이 같은 사람들을 향해 말이죠.


사실 지루한 얘기는 두가지뿐이었어. 은혜 시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미연이 회사 이야기. 그런데 은혜랑 미연이 그 두 얘기를 너무 오래 하는 거야.
몇년 전에 떠들었던 거랑 내용도 다를게 없어.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p. 120)



계나는 행동하는 적극적인 인물입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선택도, 계나가 어렵게 모은 2천만원으로 가족 전부가 평수 넓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 돈으로 호주 워홀을 선택한 것도,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남자친구를 버리고 또 다시 아무도 없는 호주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선택이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어땠을까요? 암울한 한국의 현실을 눈으로 읽으며 함께 고민해보고, 용기있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한국청년 계나를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