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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Feb 23. 2021

'살아남은'과 '남겨진'의 차이


  21년을 만난 친동생과 사별한 뒤 가장 오래 머무른 감정은 슬픔보다 원통에 조금 더 가까웠다. 동생은 늘 세상을 등지고 싶어 했고, 고통이 수반되는 방법도 개의치 않고 도전해 실패하기도 수십 번이었다. 나는 7년 전부터 이미 동생을 마음에 묻어두었다. 내가 기억하는 사랑스러운 동생은 그때 나를 떠났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언젠가 들이닥칠 상황에 마음 대비를 해두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던하게 사건 현장을 살피는 나를 보며 경찰은 독한 언니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언제쯤 잊고 지낼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영영 그럴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가족은 눈을 감을 때까지 고인을 마음 한편에 둔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에 섣불리 창을 끄지 못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심장에 무거운 도끼를 꽂아둔 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사회는 고인을 미워하는 분위기보다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더 많아서 함부로 속마음을 꺼내기 어렵다. 홀로 동굴을 파고 과거를 들춰내 후회해도 달라지지 않을 상황을 반복해 헤집었다. 그 과정에서 동생이 간 사후 세계는 어떤 곳이며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업체 직원은 어떤 식으로 트라우마를 잊는지 검색했다. 정신을 차리니 한 달이 흘러 있었다.


  그 날이 지나고 일주일이 흐르니 문득 사람들이 동아리원처럼 보였다.

  오늘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동아리원, 내일은 지구에 남겨진 동아리원.


  동아리가 바뀔 때마다 의욕의 높낮이도 수시로 변했다.


  동생을 보내고 지구에 살아남은 언니라는 동아리에 들 때는, 동생을 대신해 무언가를 더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따라왔다. 코로나가 끝나면 동생이 살고 싶어 하던 독일에 1년을 지내야겠다거나 동생이 응원하던 나의 커리어를 더 다져야 한다는 무게. 그러다 다음 날, 동생에게 버림받아 지구에 남겨진 동아리에 들 때는 친동생을 위로하지 못하는 내가 누구를 위로하나 싶은 무기력에 시달렸다. 불안을 잊고자 억지로 쓴 동화에서 작가님은 내게 “어른의 시선으로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 평했다. 정답이었다. 동생이 내게 아픈 말을 내뱉지 않았더라면 나도 동생에게 더 많은 사랑을 건넸으리라, 하는 가정에서 시작한 동화였다. 지구에 남겨진 동아리원으로서의 나는 미움과 그리움을 품고 잠에 들었다.


  차라리 살아남은 동아리원으로 커리어를 다지는 쪽이 낫나 싶지만, 열심히 일하다보면 ‘다 무슨 소용? 결국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는데.’ 싶은 삶의 덧없음으로 향했다. 어제는 점심을 먹고 병원에 들러 살 확률이 극히 낮을 경우, 심폐소생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사인했다.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나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포스터를 들고 나왔더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제주는 벌써 벚꽃이 움트고 있었다. 소매를 접으며 편의점에 들어가 신상 음료수를 샀다. 나와서는 횡단보도 앞 그늘진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다 문득 새로운 동아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구에서 살아남은 동아리도, 지구에 남겨진 동아리도 아닌 지구에서 쉬어가는 동아리.


  그러니 동생은 지구에서 쉬어가는 동아리원 옆에 잠시 들렀다가 제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벤치에 앉은 채 오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겠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빨간불에 지쳐 벤치를 찾는 이에게는 새로 산 음료수를 건네며. 오늘 참 덥네요, 내일은 비가 오려나요.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인연을 만나면 연락처를 교환하기도 하고. 동생의 빈자리를 대신하는 언니의 탈은 훌렁 벗어 던지고서 그저 나의 모습으로 오래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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