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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Jun 03. 2021

잠들다 일어났는데
십 년이 흐르면 좋겠다고


  잠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자고 일어났는데, 딱 십 년이 흘러 있으면 좋겠다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복에 겨운 소리냐'라고 말하겠지만, 아직도 나는 내 나이가 실감 나지 않는다. 어쩌면 미래 생각을 너무 자주 해서 그런 지 모르겠다. 나이로 인해 많은 어른에게 듣기 싫은 조언을 듣는 날이 많아서인가, 혹은 오르내리는 감정의 폭을 감당할 길이 없어 얼른 안정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인지도. 이유가 무엇이든 진심으로 눈을 감고 뜨면 얼른 삼십 대 후반이 되어 있으면 했다. 세월만 흐른 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안정된 위치에 올라 딱 간소한 삶을 영위할 만큼의 돈과 진정한 친구 몇을 둔 사람으로 말이다.


  직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나와 친해지는 법'에도 시행착오가 필요해서인지, 사람을 대하는 법에 미숙한 내 모습을 보거나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고민하느라 망설이는 나를 보면 모든 질문에 확고히 답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래서인지 이곳저곳에 부딪히는 이십 대가 미웠다. 왜 사람은 안정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엄청난 수의 시도를 거듭해야 하는가. 믿었던 이에게 발등을 찍히고 일생의 한 시기를 열렬히 나눌 만큼 사랑하던 사람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하는가.


  한숨만 나왔다. 내가 꿈꾸는 모습은 지금의 모습이 아닌데. 무기력과 불안을 조절하는 법을 몰라 항상 약을 구비하는 어른으로 자랄지 몰랐는데. 이십 대 후반이 되면 조금 울적할 때 어떤 일로 나를 달래고, 많이 기쁠 때는 나를 칭찬하며 앞으로 잘 걸어가자 북돋는 사람이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의 나는 울적할 때 화를 내고, 기쁠 때는 행복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며 발만 동동 굴렀다. 기쁨을 온전히 느끼기 전에 일어나지 않은 걱정부터 하며 복에 겨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나를 손수 괴롭혔다.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 혈안이 되었고, 칭찬은 빠르게 잊고 비판은 오래 기억했다. 몇 안 되는 비난을 받을 때는 직업을 바꾸어버리자는 충동에 이르기까지 했다.


  여느 때처럼 오후 두 시 인지 새벽 두 시 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를 너무 확고히 둔 나머지 시간이라는 버스에서 잠만 자고 싶은 건 아닐까?


  우선 목적지 없는 쪽으로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상을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없으므로 진짜 바퀴를 굴리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렇게 대입을 치르기 싫어 도망치던 고등학생의 나처럼 무작정 버스를 타고 카드를 찍었다. 스마트폰을 보며 어디쯤 왔나 경로를 탐색하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는 접고, 출발지로 다시 돌아와도 개의치 않다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니 오름 끄트머리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고 새로 생긴 카페가 눈에 띄었으며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소품샵이 이곳이구나 했다. 비탈길을 돌 때는 생각보다 속도 울렁거리고 에어컨 없이 찝찝한 버스 안에서 마스크를 끼고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웠지만 억지로 과정 자체에 집중하니 참을성이 생겼다.


  그래, 세월이 얼른 흘렀으면 하는 소망이 생긴 뒤로 참을성과 인내심은 바닥을 쳤다. 장편을 쓰겠다면서 소설을 쓸 만한 키워드가 왜 안 나오는지 스스로에게 분노했고 급기야 검색창에 '참을성 기르는 법'을 치고는 원하는 답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며 짜증을 부렸다 (이게 무슨). 그러자 현재의 부족한 모습만 들어왔고 언제 부족한 면이 모두 메꿔질지 전전긍긍했다. 벗어나고 싶은 이상은 더욱 위대하게 보였고, 인내심 없고 매 순간 인정받고 싶어 칭찬을 달라 말하는 어린아이인 현실에서 더 도망치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크게 깨달은 건 없다. 오름 끄트머리에 사람들이 보였다고, 그토록 찾아 헤매던 골목길에서 원하는 분위기의 카페를 발견했다고 갑자기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전부가 흥미로워질 리 없다. 다만 목적지에 가기까지는 버스든 택시든 걷든 제 열정으로 가야 함을 깨달았다. 걸을 때는 열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차로 한 시간이면 달릴 수 있구나 하는 존경심 같은 것도. 차와 비행기를 발명한 이들 덕에, 뿐만 아니라 한 차례 직업을 거친 사람들의 시간 덕분에 사육사라는 직업을 잘 몰라도 동생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나처럼 이미 어딘가로 향하는 경로는 누군가의 땀과 시간 덕에 확실해졌다.


  평소 차멀미가 심한 사람도 언젠가는 커다란 한숨을 몰아 쉬며 계단을 내려오겠지. 멀미약을 삼키고 눈을 감으면 끝나지 않을 듯하던 차 속의 시간도 흘러 없어지고 말 테니까. 그러니 우울과 불안을 잠재우는 약도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잠이 안 오는 지경까지 이르니 그때는 버스 안에서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친구와 얘기도 하며 원하는 사람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라야지.


  과정의 행복에 집중하는 현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차를 타는 과정이 있어야, 신발을 신고 걸음을 떼는 과정이 있어야 목적지에 다다른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번 여정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게 아닌가 싶다. 잠깐, 그런데 나는 왜 과정이 있다는 사실도 직접 익혀야 하는 거지? 언제 삼십 대가 되는 걸…… 아냐, 이십 대가 있어야 삼십 대가 있다.





독자님께 드리는 풍경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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