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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치료와 멀어져야 좋은 이웃

by 현요아



만나면 좋지만 안 만나면 더 좋은 친구가 있다. 그를 만나고 내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난생처음 필라테스를 끝마쳤고, 집안 구석구석에 땅콩볼이 굴러다닌다. 목뒤를 시원하게 찜질할 핫팩은 없을 새가 없을 만큼 쌓여 있으며 이제 나는 밑위가 짧은 와이드 청바지보다 밑위가 너무 길어 흡사 바지를 안 입은 느낌의 요가 바지를 서랍에 두둑하게 채워두었다. 그는 나의 도수 치료 선생님. 나보다 세 살쯤 많아 보이는 언니지만 악력은 이제야 막 상병이 된 남동생만큼 세다. 처음에는 아픈 걸 좋아하는 내가 그의 손아귀에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럴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있는 재활의학과는 우리 동네에 있지만 그는 한 시간 거리에 산다. 내가 여기서 강남까지 매번 한 시간을 왔다 갔다 했던 걸 생각하면 물리치료사의 출퇴근 시간이 꼭 사무직과 다르리라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내가 몸이 많이 안 좋을 때, 그래서 회사에서 구급차를 불러야 했을 때, 어지럼증이 심해져 큰 병원을 갔지만 도리어 정신과를 가봤냐는 둥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때마다 선생님은 함께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고개도 끄덕이며 내 목을 꾹꾹 눌렀다. 요아님은 참 나이답지 않게 어깨에 돌이 두둑해요, 이 나이에 이런 사람은 처음 봐요, 아니 만나본 사람 중에 연령대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요.


매운 걸 잘 먹는 것처럼 보이는 데 의기양양한 사람이 있노라면, 나는 이상하게 몸과 마음이 성하지 않다고, 딱딱하다고, 이 정신과 육체를 이고 어떻게 살았냐며 경탄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가슴이 판판해진다. 안 그래도 엄살이 심하니 아프지 않은 게 참 좋을 텐데도. 선생님은 내가 이고 진 커다란 돌들을 잘게잘게 부쉈다. 주마다 이틀을 꼬박꼬박 반년 정도를 다녔던 것 같다. 도수치료의 비용은 어마어마하고 그를 만나는 데 이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니 싶어 괜히 의문스러워지기도 하지만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선생님의 손과 마음이 좋다. 딴 소리를 하려고 해도 그는 내 온몸을 두드리다가 무언가 콱 하고 잡히면 바로 근육 얘기만 한다.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는 뻔한 말도 더 세세하게 설명한다. 땅콩볼, 전기담요, 요가링. 판매원은 아니지만 치료를 받고 개운하게 집에 가는 순간 나는 이미 근육을 푸는 기구 하나를 더 주문했다.


햄스트링을 펴는 기구에 가만 올라가 있다가 선생님이 최은영의 밝은 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 책도 표지만큼은 밝은 밤과 아주 약간 비슷하지 않나 싶어서 그에게 책을 줬다. 작가도 아니고 국문과도 아닌데 밝은 밤을 좋아하는 사람을 병원에서 마주치는 일은 귀하니까. 선생님은 내게 꼭 재활전문 필라테스를 가라고 했고, 자기 전에 찜질을 하라고 했고, 아프다고 주사만 맞지는 말라고 했다. 십만 원을 내고 만나는 선생님이 그 십만 원으로 다른 데를 가라고 해서 나는 지난 일 년간 필라테스와 요가를 내내 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다닌 덕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 단순히 '많이 좋아졌다'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제 픽픽 쓰러지지 않는다. 산소 포화도가 70%대라 언제 자도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살을 빼서 기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더는 두통이 올 때 타이레놀을 찾지 않는다. 근육 이완제를 먹고 나아졌다면, 역시 근육의 문제였구나 싶어 몸과 마음이 얼마나 긴밀하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된다.


마음은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몸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던 내가 내 몸을 알게 된다. 중학생 때 차에 치여 어깨가 성하지 않다는 것, 편도가 커서 편도염에 쉽사리 걸린다는 것, 대장정 후유증 때문에 이만 보를 내리 걸으면 무릎이 시큰해진다는 것, 덥거나 추우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신경안정제가 아니라 선풍기나 핫팩을 찾아야 한다는 것, 갈비뼈를 닫고 옆으로 숨을 쉬었을 때 샤워 한 것처럼 개운해진다는 것, 남들보다 발이 많이 차가워 수면 양말을 신으면 잠을 푹 잔다는 것, 아침에 꼭 샤워를 해야 그날 하루 내내 기분이 뽀송하다는 것, 호흡에만 집중하며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을 반복해 심장을 약하게 뛰면 평온해진다는 것. 그간 마음이 아파 덩달아 몸이 아파지는 줄 알았는데 몸이 아파 마음이 덩달아 아팠다.


운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재활의학과로 향하던 발걸음이 뜸해졌고, 이번에는 마지막 방문일로부터 3개월이 지났으므로 진료를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생경한 말을 들었다. 늘 그 선생님이요, 하면서 늘 찾던 커피처럼 가던 재활의학과에서 나의 신분을 물어본다는 게 신기하고 기뻤다. 그의 말대로 안 오는 게 좋다. 그런데 나는 그분을 만나는 것도 좋아서 약간의 괴리감이 있다. 아프면 만날 수 있어 기쁘지만 몸이 안 좋고, 안 아프면 만나지 않아도 되니 몸은 좋지만 심심하다. 한 시간 거리를 다니는 선생님이 이사나 이직을 가면 우리는 영영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와 나는 일 년 이상을 봤지만 연락처를 교환한 적은 없으니까. 그럼 뭐 어때. 나는 그의 행복을 빌고 선생님은 내 몸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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