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란 평일에 병원을 방문할 수 있는 것, 시간을 재지 않고 물침대를 슬쩍 두 번 이용하는 것, 그런 게 아닐까 싶었는데 직업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공부하는 진정한 회복과 휴식이 다가오자 자유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창문에 빗방울이 후두둑 부딪힐 때, 볕 좋은 날 호수를 걷자고 약속한 동료에게 해가 뜨는 날로 산책을 미루자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우리에게는 평일 낮이 있으니까. 궤도의 농담이 떠오른다. 왜 주말은 평일보다 훨씬 짧게 느껴질까요? 라는 아나운서의 물음에, 주말은 이틀이고 평일은 오일이니까요. 절대적으로도 짧습니다! 정말로 주말과 평일의 시간 체감 차이를 공정하게 느끼려면 정확하게 반반 나눠야 합니다. 라고 했던 것. 내게는 일주일이 있다. 절대적인 시간. 아무 것도 안해도 되고, 잘 살지 않아도 되고, 잠이 오면 화장실에서 쪽잠을 청하는 게 아니라 침대에 누워 알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것.
생산성이라는 카테고리가 흔하게 불린 뒤로부터 우리의 모든 행동은 생산성으로 취급한다. 당신의 아이디어는 얼마 어치의 수익을 냈나요? 몇 명을 불러냈나요? 당신을 만난 사람들의 만족도는 좋았나요? 하루는 무덤덤하고 하루는 들뜨다가 하루는 울적해지는 나는 생산성이 제멋대로 뒤죽박죽.
근데요.. 애초에 아무도 소비를 하지 않으면 생산을 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은 잠을 자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걸 아나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말이 굴뚝 같고. 식당의 가격표를 보고 머쓱하게 돌아서는 일이 없도록 나는 다시 손을 움직이고. 오늘 약속이 있다면 분명 연차를 만들어 낸 시간일 테니 어깨가 뻐근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어도 립스틱을 바르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날, 자유로운 나는 약속을 미룬다. 경제적 자유는 평생 누릴 수 있을 지 아닐 지 고민하는 것조차 환상이지만 시간적 자유는 만들 수 있다. 궁핍해도, 밥에 김을 싸 먹는 게 점심이어도 그게 나는 훨씬 좋다. 비싼 고등어 솥밥 한 숟갈 떠도 옆 상사 눈치 보느라 맛도 잘 못 느끼는 시간보다 그게 훨씬 좋다.
하염없이 미룰 수 있는 느긋함이 좋아 마감을 선택하지 않는 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투고를 하지 않는다. 꼭지를 책으로 엮고 시기에 맞춰 내려는 조급함이 없다. 일 년에 한 권은 내야 작가 아니겠냐는 이름 모를 사람의 말도 그리 들리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짜내야 하는 일 말고, 비싼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무런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이상한 죄책감 느끼는 일 말고, 그냥 안 써지면 말고. 써지면 써지는 거고. 좋음과 안 좋음을 구분하지 않는 날.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할지 말고 나무와 새의 이름을 알고 싶다. 집 근처 맛집을 속속들이 외우는 거 말고, 냉장고를 열어 있는 식재료로 근사한 볶음밥이나 만들고 싶다. 시간 재지 말고. 시간 계산하지 말고. 시간 보지 말고. 장기 기억에는 자연과 미물을 넣고 싶다. 트라우마 말고, 아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