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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예지 Sep 12. 2019

너도 프리터족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번 추석 당신도 들을 수 있는 질문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데 지금까지 아주 여러 개의 우물을 팠다. 미래보다 현재의 만족을 중요하기 생각했기 때문일까? 다른 사람보다 포기가 쉬운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조직이라는 단체 생활에 나를 끼워 맞추다 보니 어느새 내 색깔이 사라지는 게 익숙지 않았던 탓이다.


본질적인 삶의 이유를 찾아서


언제부턴가 킨포크 매거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삶의 작은 순간을 즐기는 법을 알려주는 킨포크 매거진은 다양한 일상 이야기와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공유하는 매거진이다. 첫 시작은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농부, 요리사, 작가 등 40여 명의 지역주민이 자신들의 일상을 기록하여 창간한 것으로 다양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다뤘던 잡지였다고 한다.


킨포크 매거진 같이 일상과 작은 것들에 찬사를 보내던 와중에 <와비사비 라이프>라는 책을 발간했다. 킨포크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줄리 포인터 애덤스는 유유자적하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 우리에게 삶의 멋을 전달해주고자 했다.


부족해도 덜 완벽해도 그게 인생.


'와비사비'란 일본어 와비와 사비와 합쳐진 말이다. 와비란 단순한 것, 덜 완벽한 것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며, 사비란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인 오래된 것, 낡은 것을 뜻한다. 전 세계를 누비며 본질적인 삶을 살아온 생활자를 만나온 저자는 와비사비가 단순히 미학적인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깊숙이 들어왔음을 표현한다.


킨포크 매거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와비사비란 단어를 정감 있게 받아들이게 된 것도 본질적인 삶의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지 포기가 쉬웠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부족해도 덜 완벽해도 그게 인생이라 믿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돈을 덜 쓰는 사람들


시간적 여유가 생긴 프리랜서는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한다. 시간이라는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건 너무 행복하지만, 반대로 부족함이라는 속박의 굴레로 다시 나를 밀어 넣게 됐다. 예전만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있는 게 아닌, 매 달 다른 날짜에 나 스스로 들어오는 돈을 확인해야 한다는 새로운 어려움에 봉착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삶의 질이 높아졌냐며 질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불과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땐, 이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질문의 유형이 확연히 변한 걸 체감할 정도다. 최근 사회적으로 '프리터(Freeter)족'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지인들의 질문의 이유를 알게 됐다. 프리터족이란 일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만 한시적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오후 두 시를 좋아한다.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그리고 틈새의 낮잠시간을.


프리터족이 생활에 만족하는 1위로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기 때문'이란다. 남들에게는 불안해 보이는 삶일지 모르지만 프리터족은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 제약 없이 '나'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가 중요한 그들은 현재를 잘 사는 것이 바로 '미래'를 잘 사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간다.


프리터족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기분이 나쁘기보단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을 규범화시키는 그들의 방식이었다. 사람은 한 개체를 특징지어 분류화시킬 때 이해가 쉽다고 하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니만큼 나를 이해하고 싶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그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무소유보다, 소유가 더 좋은 거 아니야?


아홉 살 인생을 살아온 난, 거실에 앉아 법정스님의 <무소유> 읽고 있는 아빠에게 위의 질문을 했다. 소유와 무소유의 관념을 설명하기에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아홉 살 인생의 내게, 아빠가 읽어주었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도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자연스레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필요'를 질문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유를 최소화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다. 그래서일까. 삶이 자유롭고 단순해지는 기분이다.


얽매이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하기로 한 난, 베스트셀러였던 <무소유>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구절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곱씹을 수 있게 된 건, 그만큼 집착하며 살았다는 반증이다.


여전히 집에 물건이 많지만, 우리는 점점 미니멀리즘을 향해 가고 있다.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집착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열심히 영업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는데. 내 실적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아픔. 고작 이 정도밖에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허탈감. 그렇게 자꾸 숫자에 집착하게 되었고, 비교를 일삼았다. 팀원들은 더 움직이길 강요하며 나의 집착에 불을 지폈다. 압박은 또 다른 소유욕을 불러일으켰다. 불필요한 옷을 사서 입고, 비슷한 가방을 사고. 그렇게라도 나를 위로해 줄 방법을 찾아다녔다.


주객전도된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내게 채색된 색깔이 빛을 잃어갔다. 무엇인가를 가지면 가질수록 많이 얽혀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여전히 간소화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무소유>의 의미를 또다시 생각해볼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프리터족이 생겨나고,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읽히는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매 순간 감사하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본질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당신은 지금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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