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해지고 싶었다.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눈에 띄지 않고, 특별하지 않고, 조용히 어울리며 사는 사람.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저녁에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 그런 삶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멀고 빛나는 풍경이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나는 친모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 사건의 기억은 없지만, 내 몸은 그 이별의 공기를 기억한다. 한 사람의 온기가 다른 냄새로 바뀌던 순간, 나는 이미 세상의 불안정함을 배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길이 내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알고 있었다. 그분의 손끝은 “너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언어였다. 하지만 열 살이 되던 해, 그 손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세상은 잠시도 안전하지 않았다.
새로운 어른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내 존재를 조정했다. 조금 더 얌전하게, 조금 더 눈치 있게, 조금 더 이해력 있는 아이로. 사랑받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는 늘 ‘괜찮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감정을 삼키는 건 일상이 되었고, 아픈 일이 생겨도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울면 귀찮은 아이가 되니까. 귀찮은 아이는 오래 곁에 두지 않으니까.
어린 나는 ‘보통의 아이’가 되고 싶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가족사진을 찍고, 학교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저녁밥 냄새를 맡고 싶었다. 그 ‘보통’이라는 단어가 내겐 목표이자 생존의 언어였다. 나는 평범함을 향해, 거의 종교처럼 달려갔다. 성적이 나쁘면 안 되고, 감정이 들키면 안 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지키는 것이 곧 내가 이 세상에 있을 자격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남들처럼 웃고 말해도, 내 안의 고요는 언제나 흔들렸다. 즐거운 자리에서도 문득,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범을 향해 노력할수록, 나는 평범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내가 정말 평범해지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평범이라는 옷을 입고 정상으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이 질문이 내 안에서 자라났다. 누군가에게 평범은 숨 막히는 틀일지 몰라도, 나에게 평범은 늘 닿지 않는 천장이었다. 그 천장을 향해 손을 뻗다 보면, 언제나 내 팔이 조금 짧았다. 그 모자람이 곧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이제야 안다. 나는 평범을 꿈꾼 게 아니라 소속을 꿈꿨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흘러다니던 내가 누군가의 세계 안에서 ‘당연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단순하고 절실한 바람이 나를 수십 년간 몰아왔다. 그래서 나는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보통의 삶을 흉내 내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흉내의 끝에서 마주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묻는다.
‘보통 사람’이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감추며 서로의 평범을 연기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의 평범함도 연극이 아니라 진실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인정한다. 나는 완벽히 평범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더 이상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조금은 어긋난 리듬으로 살아가는 나의 하루가 나만의 질서와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평범함은 남들과 같아지는 일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하루를 지속해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평범해지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평범함이란, 나를 닮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용기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평범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역설이, 내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