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기억나지 않는 시절의 일은 잊힌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기억은 머리에 남지 않아도, 몸에는 흔적처럼 남는다.
내 몸은 처음부터 세상에 ‘안착하지 못한’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친모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채로, 나는 한 사람의 품에서 다른 품으로 옮겨졌다. 세상에 나온 첫 순간, 나는 이미 누군가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그 결정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몸은 그때부터 세상에 기대는 법을 조심스러워했다.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붙잡는 법’이 아니라 ‘놓이는 법’이었다. 사랑은 언제나 조건적이고, 따뜻함은 잠시 후 차가움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일찍 배웠다. 그때부터 나의 세계는 언제나 대비로 구성됐다. 주어지는 사랑과 사라지는 사랑, 품과 공기, 손과 손 사이의 공백. 그 공백이 나의 첫 기억이었다.
할머니가 나를 키웠다. 그분의 손에는 늘 쌀가루 냄새가 났고, 그 손끝의 온도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은별이’라고 불렀다. 그 이름은 어쩌면, 세상에 남겨진 작은 조각이라도 빛을 잃지 말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품 안에서는 잠시나마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열 살이 되던 해, 그분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낯선 품에 놓였다.
그 이후로 나는 언제나 질문을 품고 살았다.
‘나는 왜 여기 있지?’
다른 아이들은 부모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했지만, 나는 늘 문장 끝이 비어 있었다.
“누가 널 키웠어?”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르곤 했다.
그때마다 느꼈다.
나는 누군가의 딸이라기보다, 세상에 잠시 놓인 존재 같았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보통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숙제를 빠짐없이 하고, 친구들의 표정을 빠르게 읽었다. 누군가의 감정이 흐트러지면 먼저 눈치를 챘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조차 나는 내 존재를 조율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내 탓이 되지 않게, 늘 ‘괜찮은 아이’로 남아야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내가 안전해지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어릴 때는 칭찬받았다.
“얘는 착하고 얌전해.”
그 말은 마치 보호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말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사라졌다.
나는 정말 착한 아이였을까, 아니면 보호받기 위해 착한 척했던 아이였을까.
그 경계는 어느 순간 흐려졌다.
나의 첫 질문은 그때 생겨났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아이의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이른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물음은 내 안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살고 있다’는 사실보다, ‘살 이유’를 찾아야만 견딜 수 있었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누구의 품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로 자라난 존재.
그게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질문은 생명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소속에 대한 질문이었다는 걸.
‘나는 어디에 속해 있을까?’,
‘나도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속에 포함될 수 있을까?’
그 단순한 물음이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나는 한때 평범함을 동경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늘 이뤄지지 않는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삶을 ‘이루어야 할 목표’처럼 여겼다.
그 목표를 향해 오랜 세월을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평범함이란, 누군가가 주는 삶의 형태가 아니라 내가 매일 조금씩 지어가는 존재의 결이라는 걸.
이제 나는 내 안의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태어난 이유를 증명하지 않아도 돼. 너는 이미 여기에 있어.”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선언이다.
평범해지고 싶던 아이가, 결국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버려졌지만, 세상에서 완전히 잃어버린 적은 없다. 버려짐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붙잡는 법을 배웠고, 그 애씀의 시간들이 나의 ‘보통’을 만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그 첫 질문을 품고 산다. 다만 이제는 답을 안다. 나는 ‘남겨진 아이’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