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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의 기술을 배우다

by 석은별

나는 일찍부터 ‘평범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마치 하나의 완벽한 매뉴얼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순서로 하루를 보내며, 정해진 감정의 톤으로 대화했다. 그 매뉴얼을 익히지 못하면 뒤처지거나 ‘특이한 사람’으로 분류될 것 같은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하는 행동의 패턴을 분석하고, 그 틀에 나를 끼워 맞추는 데 오랜 시간을 썼다. 사람들의 표정, 말투, 행동의 간격을 유심히 관찰했다. 언제 웃는지, 어떤 농담에 반응하는지, 누가 맞장구를 치는지. 그런 패턴들을 머릿속에 저장했다가 내 차례가 오면 비슷한 리듬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내가 배운 사회적 ‘평범의 기술’이었다.


점심시간의 대화는 이 기술의 훈련장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대화에 너무 깊지 않게 끼어들고, 공감을 표현하되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게 반응했다. 너무 진지해도, 너무 가벼워도 안 됐다. ‘적당함’은 언제나 이상적인 기준이었고, 나는 그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감정의 볼륨을 조절했다. "맞아, 나도 그래.”라는 문장은 ‘나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야’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채 내 언어의 기본값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평범의 기술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들과 비슷하게 행동해도, 나는 언제나 어딘가 어긋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들 편하게 이야기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지금 웃어야 할까?’를 계산했고, 다들 아무렇지 않게 화를 낼 때 나는 ‘이 말을 하면 싫어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평범을 배우려다 보니, 나는 오히려 비정상적인 자기 검열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술을 놓을 수 없었다. 평범은 나에게 생존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무겁게 느껴졌고, 나는 그 시선 속에서 내 행동을 끊임없이 점검했다. 목소리의 높이, 걸음걸이의 속도, 표정의 각도까지, 모든 것이 나의 하루 계획표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 습관은 이어져, 나는 모든 상황에서 ‘적당한 사람’이 되고자 분위기를 맞추고 긴장을 풀었다. 누구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깊은 피로가 몰려왔다. 누구도 나를 깊이 알지도 못했다. 그것은 사회적 성공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이었을까.


어느 날 친구가 “넌 항상 안정적이야.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평온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내 감정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맞춰 내 표정을 조율했다. 그 결과, 내 안의 감정은 점점 희미해졌다. 감정이 사라지면 상처도 덜할 거라 믿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감정이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평범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소거하는 습관을 들였다. 남들이 불편해하지 않게 말하고, 남들이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만 골랐다. 어떤 날은 내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내가 한 말인데도 내가 한 말 같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평범의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비표준화된 인간’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남들과 같아지려는 노력이 나를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다르게 산다.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내가 편한 거리에서 머무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의 리듬에 맞추기보다 내 리듬을 조금씩 드러낸다. 대화 속에서 잠시 침묵이 흘러도 괜찮다. 그 침묵이 나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더 이상 완벽히 평범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맞는 불완전한 평범함을 살고자 한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아도, 내 걸음이 너무 느리다고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조금씩, 나는 내 리듬으로 세상 속에 머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평범해지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 평범은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나만의 기술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그러나 나 자신으로 남아 있는 기술. 그것이 내가 새로 배우는 평범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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