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믿지 않아도 비교는 믿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휴대폰을 켜면, 나만의 작은 예배가 시작됐다. 누군가의 활동 사진, 자격증 합격 소식, 오늘의 운동 기록, 반려동물의 귀여운 표정까지. 그들의 하루는 빛으로 채워져 있었고, 나는 그 빛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좋아요를 누르며 예배를 마치고, 내 현실로 돌아오면 이상하게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무 일도 없는데,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비교는 종교처럼 작동한다. 그 중심에는 신앙 대신 ‘순위’가 있고, 믿음 대신 ‘박탈감’이 있다. 남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은 죄가 아니지만,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이미 하나의 신앙 체계가 된다. 매일 새로운 비교 대상이 생기고, 그 앞에서 자책과 맹세를 반복한다.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해야지.’
그건 기도라기보다, 자학에 가까운 결심이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시간표를 보며 살았다. 그들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내가 따라 할 만한 게 없는지 훑어보곤 했다. 여행 소식, 이사 소식, 투자 소식, 진급이나 이직, 자녀의 진학과 입사까지...
마치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경쟁 트랙처럼 느껴졌다.
각자 다른 결승선을 향해 뛰고 있는데, 나는 자꾸 남의 트랙을 엿보았다.
그렇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내 발 아래의 길은 점점 흐려졌다.
비교의 구조는 은밀하고 정교하다.
겉으로는 단순한 감정 같지만, 그 속에는 ‘증명 욕구’가 숨어 있다.
나도 괜찮다는 걸, 나도 잘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그 인정은 결코 충족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성공을 기준으로 만든 내 목표는, 도달해도 공허하다.
도착한 순간, 이미 그 위에 더 높은 누군가가 보이기 때문이다.
비교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늘 새로운 신을 만들어낸다.
질투는 이 종교의 가장 인간적인 기도문이다.
“왜 나는 안 되지?”
이 짧은 문장은 나를 끊임없이 작게 만든다.
질투는 분노처럼 터지지 않는다.
조용하고 끈적하게 마음을 감싼다.
친구의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좋겠다”라는 말 뒤에 묻어 있는 얇은 쓴맛.
그건 사랑과 열등감이 뒤섞인 복잡한 미세 감정이다.
나는 그 쓴맛을 들키지 않으려 더 열심히 웃었다.
언제부턴가 비교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라, 나를 마비시키는 독이 되었다.
더 잘하려고 애쓰는 삶이 아니라,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삶.
성취보다 결핍을 세는 습관이 몸에 밴 뒤부터,
나는 늘 ‘무언가가 부족한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 부족함은 현실의 결핍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였다.
이미 충분한 순간에도 ‘아직 덜 됐다’는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비교의 세계는 빠르다.
한 번 눈을 떴다가 감는 사이에도 순위는 바뀐다.
그 속도에 맞춰 살다 보면, 나의 리듬은 사라진다.
내 호흡이 아닌 세상의 박자에 맞춰 살아가는 일.
그건 마치 남의 심장으로 뛰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살아 있지만, 내 맥박은 점점 약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와 경쟁하고 있지?’
답은 없었다.
내가 싸우고 있던 대상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상상 속의 평균, 허구의 타인, 내가 만든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조금 더 나았고, 조금 더 예뻤고, 조금 더 안정적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남의 삶이 아니라, ‘이상화된 나’와만 비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우상(偶像)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남의 속도를 부러워하는 대신, 내 리듬을 느껴보기로 했다.
조금 느려도, 조금 모자라도, 지금 내 발걸음이 닿는 땅의 감촉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때 처음으로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는 언제나 나보다 느린 쪽에 있었다.
얼마 전 동료와 대화를 나누다가, 예전의 나를 마주한 듯한 순간이 있었다.
그녀는 아침마다 SNS를 확인하며 다른 사람들의 소식에 마음이 요동친다고 말했다.
누구는 또 자격증을 땄고, 누구는 새 집으로 이사했고, 누구는 어느 나라로 떠났다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아.”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더 이상 그 아침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있구나.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어느 지점부터, 나는 남의 시간을 찬양하는 대신 내 하루를 조용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성취가 내 실패를 의미하지 않듯, 누군가의 늦음이 나의 우위를 증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비교는 여전히 유혹적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나의 신은 아니다.
오늘도 세상은 속도를 자랑하지만, 나는 나의 리듬으로 걷는다. 비교라는 이름의 종교를 떠난 사람에게 남은 건 단 하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이것만이 내가 끝까지 붙들고 싶은 신앙이고, 나의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