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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못한 나를 미워하던 시절

by 석은별


나는 오랫동안 나를 미워했다.

보통의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그 벗어남 전체를 나의 결함으로 오해했다.
조금 더 예민했고, 조금 더 느렸고, 조금 더 많이 생각했다는 이유로.
세상은 그 ‘조금’을 이상하다고 불렀고, 나는 그 말이 맞다고 믿었다.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으려 애썼다.
말을 하기 전엔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문장을 되뇌고,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상황을 관찰하며 상대의 표정을 먼저 읽었다.


특히 가족 이야기가 나올까 봐, 혹은 나의 개인적 취향을 묻는 질문이 나올까 봐 긴장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누구나 아는 최신 이슈나 기사, 혹은 가벼운 잡담...
그런 것들을 던지는 것이 내가 믿던 ‘평범함의 기술’이었다.
차라리 무언가를 발표하는 자리가 더 편했다.
그곳에서는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조심스럽게 사는 일은 안전했지만, 동시에 너무 피곤했다.
누구보다 조심스러웠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자주 상처받았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눈치 보지 않고 말하고, 자연스럽게 웃고, 가끔 실수해도 미안하다고 말하면 금세 괜찮아지는 그런 사람.
하지만 내게는 그게 너무 어려웠다.


항상 같은 문장이 맴돌았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데, 왜 나는 안 되지?”
그 문장은 부드러운 속삭임처럼 시작해, 결국 내 안에서 폭력으로 변했다.


평범하지 못한 나를 향한 그 폭력은 아주 정교했다.
“너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니?”
“그 정도로 예민하면 어떻게 살래?”
누군가의 말이 나를 찌른 게 아니라, 그 말에 동의하는 ‘나 자신’이 나를 더 깊이 베었다.
나는 늘 ‘문제 있는 사람’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오래 지속되면, 존재 자체가 결함처럼 느껴진다.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부모님과 일상을 이야기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들의 삶에 스며들지 못하는 대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통 주제’를 던지는 것이
내가 택한 평범의 방식이었다.
그 방식은 나를 안전하게 해줬지만, 동시에 나를 더 멀어지게 했다.


가끔 속내를 털어놓는 이들은 말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지.”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언어적 장식일 뿐이었다.
사랑하기엔 나는 너무 피곤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엔 세상의 눈이 너무 밝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감추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말투를 바꾸고, 표정을 연습하고, 대화 주제를 익혔다.
겉보기에는 점점 평범해졌지만, 그만큼 진짜 나는 희미해졌다.


평범해지려는 노력은 나를 사회 속에 섞어놓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고립됐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도, 늘 혼자였다.
다들 웃는데, 나는 웃는 법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움은 재능이었고, 나는 그 재능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러워지고 싶다’는 바람이 또 하나의 강박으로 변했다.


그 시절의 나는 항상 ‘어디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리에 있어도 어딘가 한 발짝 뒤에서 서 있었고, 조용한 사람들 틈에서도 나의 고요는 어딘가 결이 달랐다.
사람들은 “넌 참 생각이 깊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언제나 ‘너는 우리와 다르다’의 완곡한 표현처럼 들렸다.
그 다름이 자랑이 아니라 결핍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그건 하나의 습관이었다.
비교의 시대에 태어나, 정상의 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들여진 습관.
타인의 기준을 빌려 나를 재단하고, 그 재단선에 닿지 않으면 나를 벌주는 구조.
나는 내 안의 심판관에게 평생 유죄 판결을 받고 있었다.


그 심판관이 조용히 사라진 건 누군가의 위로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피로’ 때문이었다. 더는 나를 비난할 힘조차 없을 만큼 지쳤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상하거나, 부족하거나, 느리거나, 혼자여도 그게 꼭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스침이 내게는 혁명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교정이 아니라 이해였다. 조금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인식, 평범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와 감각으로 존재해도 된다는 믿음.


그걸 알게 된 후부터 내 삶의 톤이 달라졌다. 조급함 대신 호흡이 생겼고, 자기검열 대신 관찰이 생겼다. 나는 드디어 나에게서 ‘결함’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이제는 안다. 평범하지 못한 건 결함이 아니라 결일 뿐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의 삶에는 각자의 무늬가 있고, 그 무늬는 비교나 모방으로는 닮을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다르다.

그러나 그 다름이 더는 부끄럽지 않다.

그것이 내 리듬이고, 나의 평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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