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라볶이엔 다른 점이 있어요
90년대에 태어났지만, 생각보다 전통적인 시골집에서 자라왔다. 집만 시골스러웠던 게 아니라, 모든 게 옛스러웠다. 한 달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내고, 집안 어르신들의 생신날에는 마치 명절처럼 생신 전날부터 밥을 차리느라 부산스러웠다. 집집마다 농사를 지어서 품앗이도 잦았고, 1년에 한 번씩 마을 단합을 도모하는 체육대회, 척사대회 등 지금 사는 모습과는 아예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모든 달에 행사와 이슈가 있던 마을이었지만, 내가 제일 기다렸던 건 설날이었다. 설날이 되면 엄마는 늘 가래떡을 가득 담은 대야를 갖고 왔다. 분홍색 광택이 나는 보자기 천을 걷어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들이 줄지어 누워있었다.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내 손가락 길이만큼 잘라서 오물오물 씹어 먹으면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나는 가래떡에 꿀이나 조청을 찍어먹는다는 걸 중학생이 되고 나서 티비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진 구운 가래떡, 꿀 찍어 먹는 가래떡 보다 갓 나온 뜨끈한 가래떡이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맛있게 먹고 남은 가래떡은 서늘한 데서 딱딱해질 때까지 서서히 굳혔다. 하루 정도 지나면 딱딱하게 굳는데, 그럼 엄마는 반나절을 꼬박 떡을 썰었다. 나랑 동생들은 엄마가 한석봉 엄마 같다고 우스갯소리도 하긴 했는데, 그맘때엔 엄마뿐 아니라 우리 동네 엄마들은 다 한석봉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썰어둔 가래떡은 설 명절에 떡국을 끓여 먹고, 남은 건 냉동실에 가득 채워 두고두고 먹었다. 라면을 끓일 때 떡라면을 해먹기도 하고, 떡만둣국을 끓여 먹기도 했지만 그중 우리 삼 남매가 가장 좋아했던 요리는 '라볶이'였다. 부모님이 모임을 가는 주말이면 늘 동생들과 라볶이를 먹었다. 둘째는 라볶이에 들어가는 양파를 다듬는 일을 주고, 막내에겐 양념장을 풀라는 일을 주고, 나는 떡을 불리고 요리를 하는 완벽한 분업 체제였다. 양파, 대파 그리고 겨울에 저장해 둔 떡국떡, 라면에 고추장 물을 넣고 끓인 간단한 요리지만 우리 삼 남매는 그 요리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동생들도 모두 자라서 사회인이 되었지만, 가끔 본가에서 요리를 할 땐 여전히 둘째는 재료를 다듬고, 막내는 소스를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라볶이를 보면 학창 시절보단 동생들과 주말 저녁을 먹던 시골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여전히 떡은 떡국떡을 쓴다.
재료 : 떡국떡 300g, 고추장 2스푼, 간장 1스푼, 설탕 1스푼, 라면 스프 반 봉지 (없다면 참치액 1큰술),
대파 1개, 양파 1/2개, 다진 마늘 1스푼
1. 기름을 두른 팬에 대파, 양파, 다진 마늘을 볶아줍니다.
2. 볶은 야채에 물 500ml를 넣고, 고추장 2스푼, 설탕 1스푼, 간장 1스푼을 넣고 끓입니다.
3. 소스가 끓으면 불린 떡국떡을 넣고 끓여줍니다.
4. 라면스프 반 봉지를 넣고, 라면을 넣어줍니다.
5. 라면이 꼬들하게 익을 때까지 끓여줍니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가래떡을 뽑아 오지 않는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엄마는 이따금 선물용으로 들어오는 진공포장된 떡국떡을 주면서 집에 두고두고 먹으라고 할 뿐이다. 이제 꾸덕한 가래떡을 똑똑 끊어가는 칼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라볶이나 떡볶이를 할 때엔 여전히 떡국떡만 쓰게 되는 건, 아마 납작한 떡을 먹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내 시골시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우리 집 냉동실엔 떡국떡이 대기 중이다. 다음 주 주말엔 동생들 불러서 라볶이 해 먹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의 레시피 끝
* 해당 레시피는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