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6일. 자 이제 시작이야.
시차가 뭔데?
몸이 피곤하면 무조건 꿀잠이다.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뜨니 보이는 풍경. 아 맞다 여기 프라하지.
부지런히 나갈 채비를 한다. 새로운 숙소에 가서 짐을 맡기고 브런치를 먹은 다음 곳곳을 누비고 다닌 후에 내 캐리어를 사서 체크인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첫 일정.
숙소 창문 밖으로 슬쩍 보이는 동네의 모습이 너무 기대된다. 얼른 떠날 준비를 마치고 그렇게 밖으로 나간다.
드디어 시작된 유럽 여행.
건물 밖으로 나오니 이제야 제대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 늘 익숙함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란 '언젠간 가보겠지, 기회가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늘 우선순위 밖으로 밀렸던 것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르다. 되려 미루고 미뤘던 지난 시간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건 지금 봐야 한다고, 지쳤던 너에게 가장 큰 기쁨일 거라고, 그래서 널 여기로 보냈다고 말해준다.
첫날의 게스트하우스는 바로 잊고 호텔로 들어선다. 우리의 두 번째 숙소는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있는 바츨라프 광장에 자리한 호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호텔에 체크인 전 짐을 먼저 보관한다. 세상 친절한 직원들. 짐을 맡기고 나니 후련하다. 이제 밥을 먹으러 가야지!
구글맵으로 미리 찾아둔 브런치 맛집.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알고 보니 늘 웨이팅이 있는 프라하 맛집이었다! 정말 제대로 된 유럽에서의 첫 식사였다.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이미 가게 안은 만석이다. 야외 테이블은 웨이팅 없이 착석이 가능했다. 날은 조금 쌀쌀했지만 야외에서 즐기는 유럽 브런치라니! 그렇게 착석한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시작한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향한다. 모두가 손에 동그란 원통 모양의 빵 같은 걸 들고 다닌다. 저건 뭘까. R에게 물어보니 굴뚝빵이라고 한다. 방금 밥을 먹고 나왔지만 처음 보는 굴뚝빵은 먹어줘야지. R의 입맛에는 별로라는 굴뚝빵을 하나 사서 나눠먹는다. 처음이니까 오리지널로 사서 돌돌 말려있는 걸 풀어먹었는데 그럭저럭 무난한 맛. 그렇다고 엄청 맛없지도 않은 굴뚝빵 체험 완료.
굴뚝빵을 들고 천문시계탑 앞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앉는다. 정시가 되면 12 사도 인형이 나와 1분간 인형극을 하는데 이걸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천문시계탑 앞으로 모인다. 이때 우리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1일 7끼를 목표로 한 우리는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정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천문시계탑 앞 테라스 카페들은 인형극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이 찾다 보니 대체로 모든 음식과 음료들을 비싸게 판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피해 소매치기 위험도 줄이고 의자에 앉아 편히 인형극을 감상하는 값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정신 승리)
우리는 하벨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 여행객들에게 유명하다는 프라하 하벨 시장 10번 아저씨를 다들 아시는지? (나는 몰랐음)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시는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직접 손으로 뚝딱 만들어주시는 이니셜 목걸이가 주력 상품이다. 시장을 헤매다 드디어 찾은 아저씨. 알고 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10번이었는데 코로나 이후 28번으로 바뀌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찾기 힘들었구나.
그렇게 R과 나는 이니셜 목걸이를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스펠링을 써서 드렸는데 한국말을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다. 손으로는 빠르게 만들면서 입으로는 우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세 완성된 목걸이. 목걸이와 함께 펜던트 팔찌를 선물로 만들어주셨다.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참 따뜻하고 즐겁다.
하벨 시장에서 행복한 목걸이 쇼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던 캔디샵에 들렸다. R과 나는 평소 군것질을 좋아하진 않지만 시선을 끄는 젤리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른, 맛은 모르지만 눈에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한 봉지 가득 담아 나왔다. 발걸음을 옮기며 하나 먹어봤는데... 역시 눈에만 예쁜 것. 좋은 경험이었다.
계속해서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10월엔 비가 올 확률이 높아 작은 우산을 챙기라고 했는데, 숙소에 두고 나온 우리. 평소에는 비 맞는 걸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나인데도 오늘은 괜찮다. 이것도 다 추억이니까. 여행지에서는 평소보다 너그러워지는 걸 보면 일상에서도 좀 너그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숙소 체크인 전 마지막 일정. 바로 내 캐리어를 사러 가는 것. 어젯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근처 상점들을 검색해 봤는데 유명한 브랜드 매장은 가까운 곳엔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ㅎㅎ
아무튼 이름 모를 어떤 가방 매장을 찾게 되었고 그곳으로 간다. 여행 일정이 짧지 않기에 튼튼하고 큰 캐리어를 사야 한다.
28인치 캐리어를 가지고 왔는데 더 큰 캐리어를 사려는 나란 사람. 쉽지 않네. 매장에 도착했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매장 곳곳에 온통 캐리어 천지다. 큰 거, 큰 거, 큰 거, 내 짐을 다 감당할 수 있는 큰 캐리어를 찾는다. 좋아하는 색깔의 청록색 30인치 캐리어를 골랐다. 예상치 못한 지출과 에피소드. 역시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잠시 숙소에 들려 새로 구매한 캐리어에 짐을 옮긴다. 우리는 오후 야경투어가 예약되어 있어 잠시 침대에 누워 쉼의 시간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