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예약해 놓은 프라하 야경투어를 위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사실 나는 패키지여행에는 관심도 없고 해 본 적도 없었기에 투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R의 제안으로 경험해 보게 되었다. 사실 R은 투어를 추천했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안 들고 별로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는 이야기.
그저 고맙다.
우리의 집합 시간은 저녁 5시 30분.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모임 장소 근처 식당을 찾았다. 프라하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가 아기 돼지 무릎으로 만든 꼴레뇨라는 메뉴인데 겉은 엄청 바삭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제대로 된 겉바속촉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너무 바삭했을까. 우리가 씹을 수 있는 정도의 바삭을 넘어선 음식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맛있게 잘 먹었다. 김치가 조금 그리웠지만 그래도 양배추 절임 덕에 살았다.
사실 나는 '술보다 커피'를 외치는 사람이라 이번 여행에서는 각종 논 알코올음료와 다양한 음료수로 배를 채웠다. 그래서 R과 함께 술을 즐기지 못해 조금 미안한 마음이 컸다.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겐 정말 행복할 수밖에 없는, 어디에 가나 빠지지 않는, 커피보다 맥주가 더 많은 이곳이 참 재미있다.
드디어 야경 투어 시간이 다가왔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관광하는 기분은 어떨까? 여행 전부터 필수로 챙겼던 유선 이어폰을 드디어 쓸 때가 왔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팔라디움 광장에 모여 가이드 선생님을 만났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누가 봐도 같은 투어 일행으로 보이는 한국 사람들. 그렇게 우리는 프라하 곳곳을 누빈다.
가이드님의 센스 있는 설명이 소소하지만 재밌는 포인트가 되었고 오래오래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프라하 블타바 강에서 프라하성을 볼 수 있는 야경코스였다. 평소에 배 타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물 공포증)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배에 올라탔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이 공부하고 갈 걸 하는 후회도 되지만 또 나름의 재미가 가득했다.
R과 내가 신청했던 프라하 야경투어! 약 2시간 반 정도의 도보 투어인데 만족도가 100%이므로 프라하 여행이 계획되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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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투어를 마치고 우리의 마지막 코스는 재즈바에 가는 것이었다. 재즈바라니? 너무 기대되는걸. 음료를 주문하고 예약된 자리에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린다.
곧 시작된 재즈 공연. 재즈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나는 악기를 다루면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항상 대단하다고 여겨왔던 터라 이 공연은 정말 완벽 그 자체였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프라하에서의 둘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
2022년은 예기치 못한 불행이 불쑥 찾아온 한 해였다. 퇴근길마다 매일을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울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를 붙들고 부엌 냉장고 앞에 앉아 엉엉 울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을 고쳐먹는 게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이제는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여기기로 했다.
어쩌면 인생이란 무수한 엔딩의 연속이지 않을까.
예고 없이 찾아오는 해피 엔딩과 그저 그런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엔딩, 평범하지만 분명히 소중한 엔딩,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삶을 무너뜨리는 새드 엔딩.
그리고 이 수많은 엔딩이 모여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준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삶에 자주 해피 엔딩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과 나의 삶과 우리의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혹시 조금 재미없는 일상이라도 그 하루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어떤 엔딩을 만나도 무너지지 않을 힘만 있다면,
무서울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