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모양도 나팔같은 Pfifferlinge
16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인 독일은 각 주가 자치권과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주요 권한이 바로 교육 정책 (Schulpolitik)이다. 하나의 교육부가 있고 학제가 전국 모두 같은 한국에 비해 독일에서는 주마다 초등학교 졸업 시기, 중고등 학교의 형태 및 진학 방법, 한국의 수능 격인 아비투어까지 걸리는 기간, 아비투어 그 자체의 형식까지 각기 다르다. 독일이라는 테두리 안에 16개의 다른 나라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교육 제도에 포함되는 방학 기간 역시 각 주마다 다르다. 독일의 여름방학은 16개 주가 릴레이로 돌아가면서 쉬는 로테이션 시스템이다. 방학 시기를 분산하는 가장 큰 이유는 6주나 되는 이 긴 기간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교통체증을 막고 알프스나 북해 등의 관광지 과밀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북독일의 어느 주는 6월 중순 즈음부터 학교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데 반해 가장 남쪽에 있는 바이에른 주는 8월 초부터 9월 중순이 학교 여름방학이 되는 것이다. (2주밖에 되지 않고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낀 겨울방학 시기는 며칠 정도의 차이만 난다.) 뒤늦은 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뮌헨의 8월은 덕분에 도시 전체가 한산해지고 왠지 모르게 더욱 청량한 분위기다.
8월의 뮌헨은 바이에른의 주 깃발처럼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고 푸른 바이에른의 하늘 (Bayerischer Himmel)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즈음 먹어줘야 할 것은 바로 슬슬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하는 노란색 꼬꼬마들인 꾀꼬리버섯, 피퍼링(Pfifferling)이다. 뮌헨 중심에 있는 빅투알리엔 시장의 가판대는 노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바이에른 전통 음식 식당 메뉴판에도 꾀꼬리버섯 샐러드나 수프, 슈니첼 등이 등장하며 이탈리아 음식점들도 꾀꼬리버섯을 넣은 피자와 파스타를 내놓는다. 이 시기가 되면 길고 긴 메뉴판을 둘러볼 것 없이 식당마다 메뉴판 가장 앞쪽에 소개하는 계절 한정 메뉴를 재빠르게 스캔하며 꾀꼬리버섯의 이름을 찾는다.
작고 귀여운 나팔처럼 생긴 꾀꼬리버섯은 다른 식재료에 비해 슈퍼마켓에서도 비교적 높은 가격에 팔린다. 농장에서 재배가 되지 않아 무조건 야생에서 직접 채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산량을 통제할 수가 없으니 매년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을 즐길 수 있는 데다가 숲에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아 채취 비용이 높아지는 것이다. 8월이 되면 꾀꼬리버섯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라 그 수요 또한 적지 않다. 게다가 독일에도 채식과 비건 식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두부와 각종 버섯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원래도 8월의 슈퍼스타였던 꾀꼬리버섯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만 알았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만인의 스타인 것.
웬만하면 독일에서 먹는 음식들은 그 원어를 사용하려 하지만, 이 귀한 분의 발음은 시작부터 난관이다. (어려워서 갑자기 존칭을 써야 할 것 같다) 그 존함은 바로 Pfifferling. ㅍfㅣ퍼링. 독일어를 좀 배워본 사람들은 늘 r 발음이나 ö, ü 같은 움라우트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물론 그들도 쉽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ps 또는 pf 같은 이중자음이 훨씬 더 어렵다. 피퍼링의 시작인 pf는 입을 다문 상태에서 p와 f 발음을 모음 없이 한 번에 내야 해 입방구 비슷한 소리같기도 하고, 꾀꼬리버섯의 형태인 나팔 모양 같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독일어 원어민들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내가 개떡처럼 발음을 해도 대부분 찰떡처럼 알아듣는다는 사실.
뮌헨의 싱그러운 8월 햇살과 진한 녹음을 농축시켜 놓은 향의 꾀꼬리버섯. 여름 하면 떠오르는 색감에 진노랑색을 더해 준 8월 식탁 위의 주인공. 여름의 정점을 확인해 주는 동시에 이젠 가을을 향해 갈 시간임을 안내해 주는 노란 친구들. 언젠가는 그 이름 한 번 정확히 발음해 줄 수 있을까 싶지만 확실한 건 매년 여름 제대로 먹어줄 준비는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