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면접 이후, 보름 만에 네 번째 면접이 잡혔다. 지금까지 낸 이력서들을 확인하니 대략 40개가 좀 넘는다.
회현역 근처, 3시. 면접이라는 불편한 시간에 적응을 한 걸까.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긴 탓에 아침에는 근처 산책길에서 운동도 하고, 지난 면접 이후 급하게 지른 스피킹 맥스를 틀어 놓고 한 시간쯤 영어 공부도 하고, 점심까지 챙겨 먹고, 면접 이후 근처에서 약속까지 만들어 놓고 집을 나섰다. 면접 갈때 맨날 굽 낮은 드라이빙 슈즈만 신었었는데 그냥 왠지 구두를 신고 싶어서 (안 신어서 다 버리고) 이제 딱 하나 남아 있는 굽 8cm의 멋쟁이 스틸레토 힐을 꺼냈다. 도저히 이걸 신고 하루 종일 걸을 엄두는 나지 않아서, 운동화를 꺼내 신고 힐은 종이 가방에 담았다.
너무 여유롭다 했네, 동묘역에서 환승한 152번 버스가 동대문을 지나 을지로 입구역을 거치면서부터 심상치가 않더니만, 롯데백화점을 지나 숭례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주 그냥 꽉 막혀 움직이질 않는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는데 면접에 늦는 불상사가 생길까 초조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서 뛰기 시작했다. 걷느니만 못한 속도로 뛰었지만 시간을 보니 순간 이동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제시간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 시간이 더 임박하기 전에 연락을 드리자 싶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당히 푸근한 목소리의 상대는 천~천히 오셔도 된다며 사람 좋게 웃으셨다. 조금 안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맘 편히 갈 수도 없는 노릇. 뛰고 걷고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니 으슥한 골목길 안에 새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10층. 1층 편의점에서 물을 한 병 사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얼른 구두로 갈아 신었다. 띵. 10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회사에 들어간 시간은 3시 10분쯤, 지각이라니 있을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니 나이가 꽤 있으신 직원분께서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아주셨다. 다행히(?)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탓에, 상대가 되려 나를 걱정했다. "아우, 너무 급하게 오셨나 보네."
이 글을 쓰면서 그때 즈음의 기록들을 뒤지고 있는데 이런게 남아 있다. 보내다 만 문자 내용이 그대로 써 있어서 혼자 빵 터짐. 문자로 변명하다가 안되겠다 싶었는지 전화를 걸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보내다 만 문자만...
사무실 한 쪽, 넓은 책상에서 면접이 시작되었다. 구인 분야는 오픈 예정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관리와 거래처 관리를 담당하는 MD, 그리고 쇼핑몰 전반의 전략기획과 마케팅을 맡아줄 팀장, 각각 한 명씩. 그렇다. 또 쇼핑몰이다. (혹시 내가 쇼핑몰에만 지원하고 있는 건가 착각하실까 TMI를 좀 전하자면 여전히 신문사, 출판사, 매거진 등등 글을 쓰거나 글 근처에 있는 일에 지원하고 있으나 연락이 전혀 오지 않았을 뿐이다. 좀처럼 서류 면접에서 통과하는 법이 없었던 것뿐이다.) 막상 구인공고를 올린 업체는 해당 기업의 O2O 서비스 구축을 담당한 소프트웨어 개발, 앱 개발을 하는 중소기업이었다. 이게 일반 상식인지 잘 모르겠지만, O2O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이라서 면접 전에 검색을 해보고 갔다. 혹시 나처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O2O는 'online to offline'의 앞 글자를 따온 것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다.(출처: 위키백과) 해당 업체는 오프라인에서는 업계 1위를 선점하고 있는 브랜드지만, 온라인몰이 아직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에 새로 쇼핑몰을 오픈하게 되었단다.
이번만큼은 공고 페이지 여기저기에 [경력자 구함]이 간절히 적혀 있는, 다소 나에게 유리한 면접이었다. 지원 분야는 MD 쪽이었는데 팀장은 언감생심, 지원 자격이 '경력 7년 이상'이라 지원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쇼핑몰 전반의 전략기획이라니, 사실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운데다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곳도 아니고 오픈 예정인 몰이라니 더욱 더 아찔했다. 면접관은 개발 업체 담당자라 그런지 딱 봐도 쇼핑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분이셨다. 그러니 계속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로 시작하는 쇼핑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갑자기 A4용지 몇 장을 들고 와 이전 회사의 팀 구성을 적어달라고 하질않나, 팀 구성원 대략의 숫자와 정확히 팀마다 하는 주요 업무 등을 묻기 시작했다. 생각나는대로 거래처들에 대해 묻고 해 올 수 있는(?) 거래처가 있냐 묻더니 급기야 너무 과하다 싶어서 내 입에서 '이것까지는 다 말씀드리기 좀 그렇네요'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광고 전략이라던가 광고 비용 같은 내용, 사실 몰라서 말 못 한 거였지만.
내가 쇼핑몰에서 해왔던 일들을 줄줄 설명하는데, 면접 중에 이렇게 자신감 있게 말해보긴 또 처음인 게, 은근 안 해본 일, 안 건드린 일이 없이 여러가지 겪어 가며 일을 배우고 회사가 성장한 거라 그런지 쇼핑몰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나왔다. 물론 혼자 한건 아니고, 믿을 만한 좋은 직원들과 함께여서 했겠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뿌듯한 감정에 얼마나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어 댔을꼬. 물론 여러 쇼핑몰에서 일해본 게 아니라서 모두 비슷한 상황인지는 알 수 없으나 쇼핑몰 업계는 진입 장벽이 낮고 이직률이나 퇴사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라, '(나 같이) 좋은 경력자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불쑥 불쑥 올라왔다. 실컷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면접관이 맡아야 할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맡고 있는 업체의 상황과 지금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아뿔싸. 모르면 모를까, 아는 사람은 다 알 거다. 말로만 들어도 피곤했다. 해놓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원하는 상황이 좀 허무맹랑했다. 업체의 주요 상품을 포함한 여성 의류, 여성 액세서리, 여성에게 좋다는 음식을 비롯, 여성 관련 상품 전반을 판매하는 종합몰을 만들고 싶단다. 아니 사실 방향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내가 정해도 된단다. 이게 무슨 허허벌판에 깃발 꽂는 소린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오픈 예정은 8월 중이란다. 아직 뽑아놓은 직원이 없고 내가 거의 첫 면접인데 나만 괜찮다면 MD가 아니라 팀장으로 지원해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난색을 표하자 한마디 덧붙인다.
"원하는 급여가 얼만데요? 돈은 그만큼 잘 드릴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