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라
시간. 우리는 어떤 시간을 걷고 있을까요?
시간은 때로는 느리게 흘러갑니다. 일이 없어 퇴근 시간만 바라볼 때. 전역 날짜를 앞둔 말년 병장의 마음. 교장 선생님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훈화 말씀. 시간이 옆에 있다면 등에 업고 뛰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어떨 땐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휴가는 왜 그렇게 짧게 느껴질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걷다 보면 어느새 막차 시간이고요. 시간 이 녀석. 분명히 고약한 성격일 것입니다.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라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운동장만 한 넓은 공간에 엄청나게 큰 구릿빛 조형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변덕쟁이 시간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내심 기대와 의문이 가득했습니다. 키의 두 배는 넘을듯한 얇은 석판이 각양각색으로 서 있었습니다. 어떤 건 물결처럼, 어떤 건 동그라미 물컵처럼. 그 속을 걸으며, 그 옆을 지났습니다. 리처드 세라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지. 그가 표현한 시간 위를, 옆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느껴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시간을 걸으며 걷어봤습니다. 마음속 고민, 잡념들, 생각들. 거친 구리 벽면에 마음 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어 붙였습니다. 포스트잇처럼. 그렇게 걷다 보니 텅 빈, 좀전 보다 밝은 공간이 나왔습니다. 잠시 위를 바라보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같은 길을 걸으며 마음으로 붙인 포스트잇이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마치 다시 데려가 달라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모두 놓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일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시간은 어쨌든 흘러갑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처럼. 가만있으면 어느새 저 멀리 달려가 있습니다. 쫓아가기엔 참 힘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시간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법을 익혀야겠습니다. 혼자 가지 말라고. 같이 걷자고. 그리고 같이 걷어내자고. 그렇게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마음속 포스트잇도 많이 사놓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