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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를 잘 준비하는 방법

by 성우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라는 책에, 장병규 의장이 첫 이사회를 앞두고 있었던 스토리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2019년 첫 이사회를 앞두고 경영팀이 공유한 발표 자료 초안을 보고 이사회 의장 장병규가 반응했다.

“이사회는 회사의 중장기적 성장에 관심을 가진 주주들의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입니다. 이사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에서 바로 ‘우리는 이런 방향으로 갈 건데, 이런 액션이 정말 중요하고, 현황을 보면 그런 방향과 액션이 의미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라는 메시지가 바로 전해져야 하는데, 글쎄요. 장표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가 명쾌하게 바로 읽히지 않습니다.

추가로, 이사회에서는 승인 사안을 중심으로 가급적 꼭 필요한 사안만 간결하게 논의하자고 했습니다. 이 관점에 부합하는지도 다소 의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애매합니다.”
장병규는 “크래프톤과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 웹사이트 링크를 첨부했다. 가장 유명한 벤처투자사 중 하나인 미국 세콰이어 캐피털이 이사회 자료 작성 원칙을 설명한 홈페이지였다. 거기엔 클라우드 기반 통신 서비스업체 메타스위치 네트웍스의 CEO 존 라자르이의 발언도 포함돼 있었다.

“회의에서 모든 내용을 자세히 다루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의 전에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고, 정작 회의에선 우리가 자료의 모든 걸 다루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죠.”...

-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전장으로' 중


더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이사회를 만들고 싶었던 장병규 의장과 크래프톤의 고민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습니다. 장병규 의장이 소개한, <미국 세콰이어 캐피털의 이사회 자료 작성 원칙>이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이 글에는 이사회의 본질은 무엇인지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이 잘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핵심은 크게 3가지입니다. 1) 이사회는 '창업가가 이사회로부터 최대한의 가치를 얻는 기회'의 장이다. 이사회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2) 창업자에게는 회사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큰 그림으로 회사를 점검하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그리고 3) 이사회 멤버들은 (매일 회사를 관찰하는) 직원들이 아니므로, 회사의 현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효율적으로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


https://articles.sequoiacap.com/preparing-a-board-deck?utm_source=chatgpt.com


번역본을 아래 작성해놓았습니다. 이사회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사회 자료 준비하기 (Preparing a Board Deck)


우리는 보통 Seed(시드)나 Series A(시리즈 A) 단계에서 회사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이사회(Board Meeting)가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죠. 하지만 어느 순간, 스타트업의 라이프사이클에서 이사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될 때가 옵니다. 흔히 다음 투자 라운드가 있거나 독립적인 외부 이사(Independent Board Member)가 합류할 때 촉발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여기서는 초기 스타트업이 처음 몇 번의 이사회를 어떻게 구조화하면 좋은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요약했습니다. “데크(deck, 즉 슬라이드 자료)”라는 표현을 쓰지만, 꼭 슬라이드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꼭 ‘슬라이드’일 필요는 없다


Qualtrics, Domino, Thumbtack 같은 회사들은 아마존 스타일의 ‘메모(memo)’ 방식을 사용합니다. 긴 글 형태의 문서로 같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죠. 결국 핵심은 경영진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1. 충분히 준비하되, 과도하지 않게 (Prepare just enough)


이사회의 목표는 창업자가 얻는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준비에 드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혀 준비하지 않으면 이사회를 집중된 논의로 이끌기 힘들겠죠.
그래서 좋은 이사회 자료(보드 데크)는 매우 중요합니다. 발표자료가 회의의 성공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게 다소 의아할 수 있지만, 이사회의 역할은 조언, 문제 해결, 베스트 프랙티스 강화 등입니다. 이 주제가 회사 상황과 맞아떨어질 때, 이사회는 회사를 더 잘 성장시키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료 없이 이사들이 각자 원하는 주제를 건드리게 되면… 쉽지 않습니다.


2. 이사회와의 조율 (Focus on calibration)


사내 회의와 이사회 회의의 가장 큰 차이는, 직원은 매일 회사를 들여다보지만 이사회 멤버들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매번 만날 때마다 이사들이 회사 현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조율(calibration) 해줘야 합니다.
이사회 멤버를 초대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의 경험과 전문성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맥락과 데이터로 ‘보정’을 해주면, 그들이 가진 기술과 경험을 통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3. 한 걸음 물러서서 보기 (Take a step back)


이사회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창업자 본인에게도 회사 운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전체를 바라볼 기회가 됩니다. 이는 무척 중요한 과정이고, 창업자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즉, 마치 달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듯, “우리는 지금 실행하고 있는가? 혁신하고 있는가? 인재를 채용하고 있는가? 경영팀을 구축하고 있는가? 고객 기반을 확장하고 있는가? 지난번 계획대로 하고 있는가? 그 계획이 여전히 승리할 만큼 충분한가, 아니면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계획이 필요한가?”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4.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Don’t overthink it)


연간 4~6회, 회당 3시간 남짓의 이사회 준비가 엄청난 부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건 당연히 비효율적입니다. 대신 회사를 운영할 때 사용하는 자료 그대로를 이사회에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주간 경영진 리포트에서 표지만 뽑아 비서가 묶어서 제출하는 형태입니다. 이렇게 하면 별도의 준비 부담이 없고, 무엇보다 이사회와 경영진이 완벽하게 정렬(alignment)됩니다.


5. 자료는 미리 공유하라 (Share materials early)


이사회 자료는 회의 1~2일 전에 미리 배포하세요. 이사들이 사전 숙지할 수 있게 하고, 회의 시간은 발표가 아니라 토론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6. 회의 구조화 (Structure the meeting)


아래는 초기 단계 이사회/데크의 일반적인 구조 예시입니다. 많은 창업자들이 이를 변형해 활용했고, 드롭박스(Dropbox)도 시드 단계부터 지금까지 이 기본 틀을 유지해왔습니다.


(1) 큰 그림: 15분

CEO 업데이트

지난 회의 이후 성과(Highlights)

지난 회의 이후 문제점/과제(Lowlights/Challenges)

회사가 도움이 필요한 부분 (채용, 고객, 파트너십, 제품, 마케팅 등)


(2) 조율(Calibration): 45–60분

회사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시간

차트를 많이 붙이는 건 쉽지만, 핵심 메트릭 몇 가지로 현재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훨씬 중요

잘못된 지표를 공유하면 회사가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심각할 수 있음

포함할 수 있는 지표 예시: 재무 성과 및 업데이트된 전망 (분기별) 마케팅 성과 vs 목표(인지도, 리드 생성) 매출/영업 성과 vs 목표 제품 참여 지표 (가입, 다운로드, 활성화, 리텐션 등) 제품 출시 현황 고객 경험 품질 (예: NPS, 단 맥락을 곁들여 해석 필요)


(3) 회사 빌딩(Company Building): 30분

향후 6개월 채용 계획 포함 조직도

제품 로드맵 및 성과

엔지니어링/기술 업데이트

성장팀(Growth Team) 성과

마케팅/브랜딩/PR 업데이트

비즈니스 개발: 전략적 파트너십 진행 상황

운영(Operation) KPI 및 과제

월별 재무 지표: 매출, 소진(burn), 현금 잔액, 인원수


(4) 워킹 세션(Working Session): 주제당 30분

특정 기능 심층 토론, 큰 파트너십 기회, 주요 비즈니스 과제 등


(5) 마무리 세션(Closed Session): 15분

창업자 피드백, 공식 의사결정, 스톡옵션 부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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