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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코 Oct 14. 2018

푸른 제주의 딱새우

제주 <서귀포 올레시장>

제주에 다녀왔다. 

일정이 워낙 급하게 잡힌 탓에 출발을 며칠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제주를 여행으로 떠나는 건 처음인지라 뭘 먹어야 좋을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제주의 대표음식이라고 하면 감귤 초콜릿 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


제주 해변

네이버, 구글, 브런치, 유튜브, 친구, 선배, 후배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그 결과, 몸국, 고기국수, 돔베고기, 방어회 등이 이번 여행 먹거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막상 제주에 발을 딛고는 예상치 못한 해산물 녀석에게 홀딱 반해버렸으니... 녀석의 이름은 딱새우. 


아, 제주의 진정한 명물은 딱새우구나!


용코-백과
딱새우(가시발새우) Red-banded lobster

큼지막하고 화려한 집게발을 지닌 갑각류 새우. 본명은 가시발새우로 정의돼있으나 제주 서귀포 올레시장을 비롯한 국내 다수 횟집에서는 흔히 딱새우로 부른다. 겉 흉갑이 몹시 딱딱한 것이 일반 새우와 다른 점이며, ‘딱새우’로 불리는 이유로 추정된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다리는 집게 모양인 반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다리는 바늘 모양이지만 횟집에서는 껍질이 까진 채로 나오기 때문에 직접 낚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은 없다. 몸길이는 보통 12cm를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산란기 직후 제주를 방문한 덕분에 15cm 짜리도 먹었다. 
출처: 두산백과


녀석을 만난 곳은 서귀포 시장의 한 횟집. 애초에 제주 해산물 먹방은 모슬포 방어회로 끝낼 생각이었으나 추석 후에 이어진 휴무와 터무니없는 가격 탓에 실패했다. 또 방어는 겨울이 제철이라기에... 결국 숙소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올레시장 횟집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서귀포 시장 횟집의 장점은 가게 내부에서 저렴한 포장가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것. 가게에서 일반 가격으로 주문하면 밑반찬을 포함해 고작 모둠회에 무려 육만 원이란 거금을 줘야 한다. 하지만 포장가로 주문하면 쓸데없는 반찬을 빼고 삼만 원에 생선을 즐길 수 있다. 고등어, 방어, 갈치, 광어가 포함된 모둠을 주문하고 추가 메뉴를 고민하던 중, 딱새우의 놀라운 가성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어먹던 모듬 생선회

(생) 딱새우가 열다섯 마리에 만원, 찐 새우가 스무 마리에 만원이라니! 옆 테이블에 올려진 딱새우를 흘깃 훔쳐보니 크기와 굵기가 상당했다. 분명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라 확신하며 회를 집어먹다 말고 딱새우를 냅다 주문했다.


몇 분 후 옆 좌석에 계시던 어머님이 네 개째의 딱새우를 해치우려던 그 순간, 마침내 녀석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가지런히 자리한 녀석들의 오와 열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새우의 곧고 화려하게 뻗은 집게발은 <왕좌의 게임> 용애미 대너리스가 이끄는 무결병의 용맹한 창을 보는 듯했다. 이 용감한 새우들을 잔혹하게 정복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철 왕좌에 앉은 듯 설렘이 멈추질 않았다. 


녀석의 단단한 머리 흉갑을 잡아 정성스레 까진 하얀 속살을 거침없이 붉은 초장에 발라버렸다.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건만 벌써 느껴지는 초장 내음에 입맛을 다졌다. 부드럽고 사납게, 나비처럼 집어 벌처럼 입안에 욱여넣었다. 끝내 속살을 놓치지 않으려는 새우 머리통을 잡고 알맹이까지 쪽쪽 빨아 흡입한 그 순간…


‘떠나요… 둘이서…’

머릿속에선 잔잔한 파도소리와 함께 유리상자의 ‘제주도 푸른 밤’이 투명하게 울려 퍼졌다. 


청량했다. 본래의 새우맛을 잃지 않음은 물론, 머리 속살을 들이켜자 티 없이 맑은 맛이 느껴졌다. 뇌에서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건만 어느새 소주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딱새우를 맛보면 > 소주를 마신다’‘레몬을 먹으면 > 침이 나온다’와 같은 류의 조건 반사였다. 생 딱새우 무리를 반 정도 해치웠을 즈음, 찐 딱새우 한 부대를 새로 주문했다. 동시에 옆 테이블이 남기고 떠난 딱새우 다섯 마리를 슬그머니 가져다 빠르게 해치웠다.


찐 새우는 생새우보다 붉은 빛깔을 더 강렬히 풍겼다. 더욱 진한 홍조를 띤 녀석의 매끈한 껍질들 사이로 모락모락 피어 나오는 김에선 몇십 분간 뜨거운 찜기를 견뎌낸 인고가 느껴졌다. 찐 새우는 보다 고집이 강한 녀석이었다. 딱새우 이름에 걸맞게 단단한 껍질을 벗지 않고 고스란히 두른 채 테이블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정복을 시작한 허기진 손놀림을 막을 순 없었다. 재빠르게 속살과 흉갑을 분리해 혀로 가져갔다.


찐 새우의 맛은 추운 겨울날 전기장판 위의 이불속과 같았다. 진한 포근함. 묵직하고 부드러웠다. 익힌 후의 새우 머릿속에 숨겨진 내장들은 보다 깊은 맛을 뿜어냈다. 생새우가 맑고 청량한 제주 해변가의 투명한 바닷물이었다면 찐 새우는 지평선 너머의 심해를 맛보는 것 같달까. 



그렇게 그날 횟집이 마감하기 전까지 총 마흔 마리의 딱새우를 학살했다. 그날 밤부터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머릿속에 틈이 생길 때마다 녀석이 떠올랐다. 여행 막바지 친구와 ‘제주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골라보자’고 할 때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우리는 딱새우를 샤라웃 했다. 


아, 제주는 딱새우를 먹으러 가는 곳이 틀림없구나! 


마무리는 제주 사진으로 (혹 저 배도 딱새우를 잡는 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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