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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Aug 15. 2018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왜 내일을 살아가는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은 후, 김영하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만났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0년에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세련된 문체가 돋보였다. 김영하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더더욱. 더불어 죽음, 자살, 섹스 등 자극적인 소재에 관한 젊은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져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2017년 10월, 블로그에 썼던 글을 새롭게 옮깁니다.


주인공 그러니까 이 책의 화자는 누군가의 자살을 돕고, 고객들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창작'하는 존재이므로 마치 스스로를 신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신과 같은 것은 오로지 '죽이거나', '창작하는' 존재뿐이다.


그러나 일을 끝냈다고 그 일을 모두 글로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럴 자격이 있는 고객만이 내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난다. 이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의뢰인들을 연민하고 사랑하게 된다. (p.16)


이 책에서의 죽음, 또는 자살은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윤리적인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 스스로 택한 죽음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고통받던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자유를 찾고 비로소 구원받는다. 죽음만이 온전한 해결책이라면 구라도 그 길을 택할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옹호하거나 낙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죽음이란 자기결정에서 비롯된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이해되지 않는 구절이 많아 읽기 힘들었지만, 공교롭게도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단 하나였다. 내 인생의 결정권은 오롯이 내게 있으며, 죽을 자신이 없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그저 앞으로 갈 것.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것만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애석하게도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산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지금의 고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무료해 질 것이고 때아닌 마음의 까지 맛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자살을 선택한 유디트와 미미 역시 그랬다. 자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행복했을까. 자살 이후 그들의 삶은 행복할까.

어떤 일이 펼쳐질지 한치앞도 모른 채 두려움만 앞서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의 끝엔 생각보다 아무 일없이 무탈하게 넘어간 것들에 괜시리 맥이 빠진다. 반복되는 삶이 즐거운 자가 몇이나 있으랴. 그럼에도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정말 힘이 드는 날엔 '그냥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 생각없이 해야할 일들을 하나 둘 해보는 것. 그러다보면 오늘의 걱정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될지 모른다. 왜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할 시간에 나는 그저 살아가려 한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그래. 그것도 답이 될 수 있겠다. 살다보면 언젠가 인생의 주도권이 온전히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날도 오겠지. 한줄기 희망을 쥐고,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 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쉬고 싶어진다. 내 거실 가득히 피어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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