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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Nov 15. 2016

“진짜 나무는 파란색이 아니야!” 과연 그럴까?

[서평] 몰리 뱅 글⋅그림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지난 9월 책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어떤 그림책을 선물할까 고민하던 중 <오마이뉴스>에서 재미있는 서평기사를 찾아냈습니다. 기사 제목이 <엄마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이었어요. 제 마음대로 하겠다고 떼를 쓰는 어린 딸아이의 행동에 참지 못하고 화를 낸 엄마의 솔직한 심정이 담겨 있어 공감이 됐습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언제나 감정을 다스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저 조금 더 참고 인내하는 것뿐, 그래서 간혹 자제심을 잃고 감정을 표출하고 난 뒤엔 민망함과 자책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정말 창피해. 내가 왜 그랬을까?’ 튀어나오는 감정을 어쩌지 못해 표출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어쩐 일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화를 내거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라치면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폄하하려 들어요. ‘감정은 절제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일까요?   

  

서평 기사에서 소개하는 그림책 역시 어린 아이의 감정(분노)을 소재로 다룬 몰리 뱅의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입니다. 화가 난 소피가 자연을 통해 위로받는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어릴 적 속상할 때면 자주 찾던 놀이터가 있었거든요. 놀이터 앞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서 신나게 그네를 타다 보면 어느새 속상했던 감정이 가라앉곤 했죠.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환한 햇살을 온 몸으로 느끼다 보면 다 괜찮아졌던 것 같아요. 아마 소피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제 사랑스러운 조카도 그러길 바라면서 이 그림책을 선물했어요. 조카의 반응은 어땠냐고요?      


선물을 받자마자 그림책이 맘에 들었는지 조카는 자꾸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무릎에 와서 앉았어요. 그때마다 전 소피의 상황을 실감나게 전하려 실제로 화가 난 듯 ‘으아아악’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소피가 훌쩍일 땐 같이 훌쩍이는 시늉을 하기도 했는데요. 며칠 뒤 조카가 물고기가 살고 있는 어항을 향해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쟤가 왜 그러지?’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소피가 화났을 때 지르는 소리를 따라했던 거예요.      

그림책의 중요한 메시지는 소피가 자연을 통해 위로 받는 내용에 있는데, 아직 어린 조카는 소피가 화를 내는 모습이 재밌었던 거예요. 동생 얘기로는 집에 돌아가서도 조카는 화가 나면 소피처럼 ‘으아아악!’ 소리를 지른다고 해요. 이를 어쩌나요? 화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 오히려 화내는 법을 알려준 꼴이 됐으니 말이에요. 조카가 좀 더 크면 그림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소피의 ‘파란 나무’는 과연 ‘진짜 나무’가 아닐까     



어린 조카 덕분에 저도 동심으로 돌아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게 되는 데요. 최근 작가 몰리 뱅의 또 다른 책 <소피가 속상하면, 너무너무 속상하면>을 읽었어요. 전작에 비해 글씨가 많아져서 아이들이 집중해서 읽기에 어렵다는 어느 독자의 평이 있었지만, 작가의 그림체가 맘에 들기도 했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는 점이 흥미로웠거든요. 어른들의 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기는커녕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소피는 나무와 숲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는 데요. 어느 날 선생님이 소피와 반 친구들에게 숙제를 내줘요. 방과 후 ‘가장 좋아하는 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생김새를 찬찬히 살펴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머릿속에 담아 온 나무’를 내일 그림으로 그릴 거라고 말이죠.      


전작인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에서 언니한테 고릴라 인형을 빼앗기고 화가 난 소피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 숲길을 달리고 또 달렸어요. 물론 속상해서 훌쩍거리기도 했고요. 그런 소피를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 건 아름드리 너도밤나무였죠. 너도밤나무는 소피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였어요. 그래서 소피는 숲으로 가서 너도밤나무의 밑동과 나뭇가지, 이파리들을 세심하게 살피고 그 모습을 머리가 아닌 마음에 새겨요.      


다음날 소피는 들뜬 마음으로 너도밤나무에 대한 애정을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궁리하는 데요. 보이는 나무의 모습 그대로 색칠하려니 마음에 새겨진 나무의 모습과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나무의 줄기를 회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나무가 파라니 하늘은 주황색으로, 녹색 이파리는 밋밋하니까 연초록으로 색칠해요.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를 더 멋지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소피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친구 앤드루가 소피의 그림을 보고, 소피의 나무가 진짜 나무와 다르기 때문에 “틀렸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도 키득거리며 소피를 비웃어요. 소피는 정말 틀린 걸까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갖는 의미      


지난 18일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세 명이 항소심에서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기에 병역의 의무가 강제적으로 부여됩니다. 병역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입영하지 않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그동안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내려진 재판부의 판결은 보통 징역 1년 6개월이었다고 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을 지키고자 한 대가로 징역을 산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해 종교라는 명분을 내세워 병역을 기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군 면제나 특혜가 아닐 거예요. 군복무 대신 다른 일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체복무제를 실시해 달라는 거죠.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지난 10년간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 5천 5백 명을 넘는다고 해요.      


헌법에도 명시된 ‘종교의 자유(헌법 제20조)’와 ‘양심의 자유(헌법 제19조)’가 국가의 안보를 위한 병역의 의무와 병역법 앞에 ‘잘못’이고 ‘위법’이 되었던 거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시민 불복종>을 통해 ‘시민이라는 틀’에 얽매이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신념에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도 했는데요. 종교적인 신념과 양심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만큼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참 “진짜 나무는 파란색이 아니야”라며 소피의 ‘파란 나무’를 부정했던 앤드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피가 나무를 본 대로 그리고, 느낀 대로 색칠했다는 것을 알게 된 앤드루는 소피의 ‘파란 나무’가 행복해 보인다고 말해요. 비로소 소피의 ‘파란 나무’를 인정하게 된 거죠.      


하지만 앤드루처럼 ‘진짜 나무’라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다양한 색깔의 나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외에도 -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도 다행인 건 이번 무죄 판결을 통해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의 종교적 신념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더불어 대체복무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뜨겁다는 사실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존중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그래도 하나쯤은 열린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책 정보  -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몰리뱅 글⋅그림, 박수현 옮김/ 책 읽는 곰/ 2013)

<소피가 속상하면, 너무너무 속상하면> (몰리뱅 글⋅그림, 박수현 옮김/ 책 읽는 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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