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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29. 2016

초콜릿을 먹는 게 키스하는 것보다 낫다?

[서평] 마크 미오도닉의 <사소한  것들의 과학>

익숙한 길을 걷다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지 공사 중이거나 식당 간판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공사 중이었지?’, ‘식당은 또 언제 바뀐 거야?’ 나도 모르게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길 위에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변화가 없는지 궁금한 까닭에서다. 그제야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다가온다. 무심히 걷던 길을 관심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거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 잘 안다고 여겼던 열 가지 재료들의 낯선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특히 책의 모든 이야기가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의 집 지붕 위(옥상)에서 찍었다는 사진 속에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왼쪽에 안경을 낀 저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고 앞 테이블엔 펼쳐진 책과 물 잔과 커피 잔이 나란히 놓여있다. 저자의 시선은 앞쪽에 있는 식물을 향해 있는 듯하고, 뒤쪽엔 배경처럼 벽돌로 지어진 창고(?) 비슷한 것이 안테나와 함께 세워져 있다. 이렇듯 평범한 사진 한 장에서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걸까?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쓴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우리가 건설한 재료의 세계를 해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재료들이 어디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기능하며, 우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료 자체에 대한 지식은 때로 놀랄 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재료를 한 번 들여다본 것만으로는 그 재료가 지닌 독특한 특성을 알지 못한다. 재료는 우리 삶의 배경으로 모습을 감추기도 한다. (본문 19쪽)     



저자는 우리 삶의 배경으로 감춰져 있는 재료들을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끌어내기 위해 한 장의 사진을 재료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많은 재료들 중에 저자가 우리에게 선보일 재료는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의 열 가지다. ‘생체재료’를 제외하고 우리의 삶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그 재료의 구조와 특성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있었나?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수많은 재료의 복합체 위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것을 이루는 재료에 대해서만은 무심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물질을 이루는 재료에 집착하는 이 남자의 이야기에 자꾸 귀 기울이게 된다.      


책은 열 가지 재료를 각 장으로 배치해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재료에 대한 과학적 관점뿐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시각이 더해져 재료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재료의 특성만큼이나 각 장을 구성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특히 종이에 대해 설명하는 2장은 스냅사진을 여러 개 모아 놓은 형태로 사진 뒤에 설명을 덧붙였고, 플라스틱을 설명하는 6장은 영화관에서 벌인 한 남자와의 논쟁을 계기로 플라스틱을 ‘잘’ 설명하기 위해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각본 형태로 구성하였다. 물질을 구성하는 재료, 재료를 이루는 원자라는 미시적인 부분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저자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강철’을 설명하는 1장은 ‘무뎌진 면도날을 날카롭게 하는 전자기기를 발명했다’는 한 남자를 만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면도날이 무뎌지는 이유는 사람의 수염과 충돌해 면도날을 이루는 수십억 개의 결정과 그 결정을 이루는 원자의 배열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구조가 망가지는 것이다. 남자의 말대로 면도날을 다시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는 망가진 구조를 다시 복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가를 면밀하게 추적해 나간다.     

‘종이’를 설명하는 2장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기용 노트, 종이기록, 인화용지, 책, 포장지, 영수증, 지폐 등의 스냅사진을 모아 놓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부드럽다고 느끼는 종이의 표현이 사실은 울퉁불퉁하며 종이 제조를 위해 거치는 화학적 과정이 꽤 까다롭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지폐의 경우 위조방지를 위해 종이를 만드는 나무 셀룰로오스가 아니라 면섬유를 사용한다고 한다. 모르고 옷 주머니에 넣고 세탁기를 돌려도 그대로 말려서 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콘크리트’를 설명하는 3장은 길모퉁이에 있던 서더크 타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더 샤드’가 건설되는 광경을 목격한 저자의 경험담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흔히 액체에서 고체 형태로 변하는 콘크리트가 굳는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물이 콘크리트의 주요 성분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는 준비 과정에서 물과 반응해, 재료 깊숙한 곳에서 복잡한 미세 구조를 이룰 일련의 화학반응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콘크리트는 안에 물을 많이 가둬놓고 있지만 굳지 않고, 방수 성능까지 갖는다. (본문 96쪽)      


섬유가 자라고 서로 만나면, 서로 엉켜서 결합을 하고 안에 점점 더 많은 물을 가둔다. 이러한 과정은 전체 질량이 겔에서 고체 바위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 섬유는 서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다른 바위나 돌과도 결합한다. 이것이 바로 시멘트가 콘크리트로 변하는 이유다. 시멘트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벽돌을 서로 붙일 때, 기념물을 만들기 위해 돌을 이을 때 등에 쓰인다. 하지만 양쪽 모두 시멘트는 보조적인 구성 요소로 틈을 메웠을 뿐이다. 일종의 도시용 풀이라고나 할까. 시멘트에 소형 벽돌 역할을 하는 작은 돌을 넣어서 콘크리트가 되면, 이 재료는 마침내 구조재가 될 가능성을 얻는다. (본문 98쪽)                                                

            

콘크리트가 굳는다는 착각의 비밀은, 시멘트 안에서 섬유가 자라고 서로 엉겨 물을 머금은 것에 있었던 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콘크리트의 세계가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저자는 콘크리트로 거푸집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떤 구조물이든 창조할 수 있다며 로마의 판테온, 프랑스의 미요교 등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간다.      

‘초콜릿’을 설명하는 4장은 초콜릿의 결정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강도(초콜릿이 ‘똑’ 부러지는 특성은 초콜릿의 맛에 극적인 요소를 부여한다고 함)와 초콜릿의 풍미,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 등 초콜릿의 매력에 빠져들 만큼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초콜릿의 재료가 되는 가공 전의 코코아 빈(cocoa bean, 코코아 열매에서 흰 과육 부분을 제거한 뒤에 남는 씨앗 부분 : 역자주)은 사실 아무 맛도 없다고 한다. 저자가 먹어 본 결과 초콜릿 맛은커녕 "나무 맛과 쓴맛이 났고, 밍밍했다"고 한다. 이 열매가 초콜릿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공정 과정을 거친다고 하는데,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날이 넓은 칼로 코코아 빈을 수확해 땅에 더미로 쌓았다. 그러고는 썩도록 나눴다. 

나중에 보니 이 과정은 온두라스 코코아 농장만의 특이한 관습이 아니었다. 모든 초콜릿이 다 이렇게 만들어진다. 2주가 넘어가는 동안 코코아 빈 더미는 분해돼 발효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열이 발생한다. 코코아가 발아해 자라지 않도록 씨를 죽이는 게 목적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코코아 빈의 구성 성분이 초콜릿 풍미를 만드는 전구체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슨 작업을 어떻게 해도 초콜릿 비슷한 것은 조금도 얻지 못할 것이다. (본문 130쪽)     


‘코코아 빈 더미에서 분해되고 발효’되어 만들어진 게 우리가 먹는 초콜릿이라는 사실이 좀 당황스럽긴 하지만, 초콜릿도 발효음식이라고 생각하니 김치나 된장, 요거트 만큼이나 우리 몸에 이로울 거라는 생각에 입맛이 더욱 당긴다. 그런데 모든 초콜릿이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면, 초콜릿의 맛은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저자는 코코아 빈이 발효되는 과정의 미세한 차이에서 초콜릿의 맛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 말은 초콜릿의 맛은 코코아 빈이 얼마나 익었는지나 종이 무엇인지에 따라서뿐만 아니라, 열매를 발효시킬 때 얼마나 높이 쌓았는지나 얼마나 오래 발효하도록 나뒀는지, 그때의 날씨가 어땠는지 등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본문 130쪽)      


하지만 어떤 초콜릿 제조회사도 이 조건들에 대해 함구한다고 하니, 영업 비밀인 셈이다. 초콜릿에 중독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초콜릿에 중독되는 이유가 뭔지를 짚어 보는데, 초콜릿에 포함된 성분의 화학적 영향보다 입에 넣자마자 액체로 변해가는 초콜릿이 우리에게 놀라운 감각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초콜릿을 먹는 게 키스를 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초콜릿이 흥미로운 재료임에는 틀림없다.       


그밖에도 에어로겔이라는 흥미로운 ‘거품’을 설명하는 5장, 영화 각본이라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플라스틱’을 설명하는 6장, 그 중요성에 비해 관심을 덜 받는 ‘유리’를 설명하는 7장, 다이아몬드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흑연’을 설명하는 8장, 가마에서 제조되는 과정이 까다롭지만 가치가 뛰어난 ‘자기’를 설명하는 9장, 우리 인간의 몸을 재건하는 데 사용되는 ‘생체재료’를 설명하는 10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들의 변주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우리를 재료의 세계로 안내했던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각 장마다 독립적으로 설명했던 재료의 특징과 구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재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구조화되는 지를 탐구해 나간다.      


어떤 재료가 하나의 재료로 된 것처럼 보이거나 만져지거나 전체적으로 균질해 보이더라도, 그건 환상이라는 것이다. 재료는 여러 서로 다른 존재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모두 한데 모여 전체를 이룬다. 그리고 이 각기 다른 존재들은 각기 다른 크기대로 관찰할 수 있다. 구조를 놓고 보면 모든 재료는 마치 포개어 쌓는 러시아 인형 같다. 재료는 여러 겹으로 겹쳐진 구조로 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눈으로 볼 수 없으며, 작은 구조는 그보다 더 큰 구조 안에 쏙 들어간다. 재료가 복잡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이런 계층적 구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재료의 계층적 구조 때문에 우리만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본문 306쪽)      


저자가 에필로그의 제목을 ‘우리는 우리의 재료다’라고 한 것처럼 물질이 다양한 재료의 복합체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 역시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복합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도 결국 재료인 것이다. 그러므로 재료에 대해 안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얼마 전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실리콘 수모가 머리를 죄는 게 너무 아파서 실리콘 코팅 수모로 바꾸었는데, 물에서 나온 후 모자가 벗겨진 줄 알았다. 머리를 죄는 느낌이 없고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실리콘 수모가 겉면과 안감이 모두 실리콘 100%인데 반해, 실리콘 코팅 수모의 경우 겉면은 실리콘 100%이고, 안감은 폴리에스터 80%, 폴리우레탄 20%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감 재료가 바뀌니 착용감이 달라졌고, 너무 편했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 곳곳에서 재료의 혜택을 누리고 있고, 재료와 함께 발전해 가고 있다. “재료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준다. 우리 인류의 요구와 갈망을 여러 스케일로 표현함으로써 말이다.”라는 저자의 말이 틀리지 않다.      

* 책 정보 -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MI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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