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결혼식 4
“저도 아이들 결혼식 때 양장을 입어야겠어요.”
어느 날 예비 신부가 집에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결혼식 예복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결혼식 때 한복과 양장 중 양장을 입으셨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래서 나도 전통의상을 안 입고 양장을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멋진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양가모두 양장을 하기로 했다.
아들이
"어머니가 옷을 고르시면 제가 계산해 드릴 께요."
했는데 막상 양장을 입으려니 한복이 눈에 아른거렸다.
저녁시간에 유튜브를 보면서 어떤 옷이 좋을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백화점예복 코너를 찾아 눈에 띄는 옷을 입어봐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원피스를 입으면 허리가 너무 잘록하다.
"허리는 터드릴 수 있어요."
하고 말하는 점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허리를 튼들 내가 이 옷을 결혼식날 한번 입으려고 이렇게 비싸게 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내 몸에 착 안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은 백화점에 들른 것 같다. 웬만한 매장의 직원은 나를 알아볼 정도였다.
친구들과 소통할 때 친구들은
"결혼식 때나 한복을 입어보지 언제 입어보겠어."
“ 자녀결혼은 부모손님이고, 부모장례는 자식손님이라고 했다.”
“우리 전통옷을 놔두고 왜 양장을 하려고 하니.”
등등, 많은 의견이 있어 나는 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아들한테 이야기했다.
한복을 입으면 어떻냐고, 그랬더니 아들은 아빠들은 양복을 입는데 엄마들은 왜 한복을 입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아빠들도 한복을 입으면 되잖아 했더니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우리가 양복을 입잖아요.
우리가 전통결혼식을 하는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렇게 입기로 정했으면 그렇게 하기로 하세요."
나는 결혼 당사자인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전통의상과 현대적인 의상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보는 쪽으로 해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한복이 아니면 양장이지 전통과 현대의 믹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옷을 찾아 나섰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길어서 계절감각이 무뎌진 것 같았다
자녀결혼식에 한복을 입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한복 입는 게 더 예뻐, 한복을 맞추거나 빌리면 되는데 양장은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 힘들잖아."
어떤 후배는 신랑집이 압구정동이어서 압구정동 한복대여점에 갔는데 직원이 가지고 나와서 이 옷 입으시면 어울리겠어요. 해서 그 옷으로 했다며 한복대여점도 선택의 여지가 없더라는 이야기, 종로의 어느 한복대여점은 이 옷이 예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날 몇 시에 이 옷은 벌써 대여된 것이라며 이 옷과 이것만 남았다고 해서 골라주는 데로 입고 택배로 보내줬다는 둥 한복대여도 내가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없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식장에 가보면 혼주한복이 다 같은 것 같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젠 이곳 백화점에는 옷이 없다고 단정을 지었다.
내가 오랫동안 살던 지역인 신세계강남점으로 토요일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수요일 나는 운동하다 종아리근육파열이 왔다. 많이 아팠다. 그런데 토요일이 되니 걸을 만했다.
전철에서 내려 신세계 지하로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의류매장 층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의류매장에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화점 감시원이라도 된 듯 의류매장의 옷들을 뚫어지게 보며 들었갔다 나왔다 를 반복하고 입어보고 벗기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득 이 백화점의 층고가 낮고 불빛이 조금만 어둡다면 아웃렛 매장과 다름이 없다는 것은 깨달았다. 아픈 다리를 달래며 그것도 천천히 걸어서 백화점 몇 층을 걷고 또 걸었으니 다리가 성할 리가 없었다. 강남에는 내가 찾는 것이 있을 것 같았는데 실망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상견례 때 입으려고 산 옷이 생각났다.
'정 못 사면 그 옷이라도 입자. 결혼식은 딱 30분인데 길어야 2시간 견뎌보지 뭐, '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자꾸 떠올랐다.
이제 결혼식이 일주일 남았다.
'한복을 입으면 고민 안 하고 그냥 골라 입으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옷 샀어?"
"아니, 어떤 옷을 사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야."
라고 했더니 후배는
"20대부터 지금까지 언니를 봤을 때 언니는 정장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지난 토요일 신세계강남점에 간 이유가 내가 원하는 색상의 정장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찾는 것이 없어서 그냥 온 것이었다.
아들에게 신부의 어머니옷이 준비되었으면 사진 좀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신부의 어머니옷은 단아하고 그분한테 어울리는 옷이었다.
다음날, 나도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하고 브랜드 매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늘은 꼭 사야 된다는 가고를 하고 나갔다.
한 매장에서는 옷을 입어만 보고 그냥 나왔다.
그 매장 점원은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는데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그리고 후배의 말을 머릿속에 넣고 갔기 때문에 내 몸에 더 잘 맞는 옷을 사고 싶었다.
다른 매장에 들어갔다.
귀하게 모셔놓은 신상품 중에서 계산대옆에 걸려있는 옷을 한벌 꺼내달라고 했다.
옷을 입고 거울을 봤다.
내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 옷을 계산했다.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어머니, 참 잘 어울리세요."
결혼식장에서도 하객들이 한복을 입지 않아도 너무 멋지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본인들도 아이들 결혼식 때 양장을 입어야겠다는 분들도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힘든 법이다.
사람들이 입지 않는 옷을 입는다는 것은 더 힘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결혼 시키고 예쁜 옷이 한벌 생겨서 더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