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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떠난 후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까

by 소소


딸은 짐을 하나둘 신혼집으로 옮겨갔다. 가벼워지는 방만큼 내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모든 것이 빠져나간 뒤의 방은 내가 알던 그 공간이 아니었다. 텅 빈 옷장과 비워진 침대 프레임은 마치 한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쓸쓸했다. 책상 위엔 어느새 내려앉은 먼지가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휑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딸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건 오직 ‘그 아이가 여기에 살았었다’는 시간의 흔적뿐이었다.


사실 이 집으로 이사 온 것도, 방 한 칸을 더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각자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딸이 다니던 직장과는 거리가 꽤 멀어져, 왕복 4시간의 긴 출퇴근이 시작되었지만 딸은 내색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지쳐 누웠던 자리에 이제는 온기가 사라지고, 낯설 만큼 조용한 공기뿐이었다.


참 야무진 아이였다. 대학도, 생활도, 취업도, 결혼 준비까지. 뭐든 스스로 해내던 딸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틈틈이 공부해 장학금까지 받던 그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내가 독립한 후 두 딸과 살면서 각자 방이 생긴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각자의 옷장과 침대, 컴퓨터가 생기고 나서 이것저것 소품을 사며 좋아하던 딸의 모습은, 아직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엄마, 그동안 고생 많았네. 성공했어, 우리 엄마.”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리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까. 딸의 향이 빠져나간 그 방안에, 나는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이별은 아니지만, 이별과도 같은 마음. 무언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허전함. 있어야 할 게 없는 것도 아닌데, 분명 빠진 것만 같은 공허함. 먼지를 닦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자식을 먼저 보낸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였다. 그 상실감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일 것이다.


큰애 방은 작은애가 쓰기로 하고 작은애의 방은 내 침실이 되었다. 내 방에서 옷장과 침대를 옮기고, 거실에 있던 책장과 책들도 옮겼다. 거의 이사에 가까운 큰 이동이었다.

“딸이 집에 오면 서운해하지 않겠어?” 딸이 나가자마자 방을 바꾸고 서재가 생겼다고 들뜬 나를 보며 친구가 조심스레 건넨 말이었다. 그 말에 한참을 머뭇거렸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내가 서재를 만든 건, 공간을 바꾸고 싶어서만은 아니었다. 방 한 칸을 비우고도 남은 마음의 허전함,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한 몸짓이었다. 딸이 떠난 방에 살며시 내려앉은 먼지처럼, 내 마음에도 조용히 상실의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던 것이다.







딸이 결혼을 하고 나에게 '사위'가 생겼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웨딩포토 사진을 보내왔다.

비가 오고 습한 날씨에 웨딩 촬영을 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투명 우산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흐린 날조차 운치 있고 더 아름다워 보였다. 결혼 생활도 늘 맑기만 하진 않겠지만, 그치지 않는 비는 없으니 어떤 날도 잘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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