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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Sep 17. 2021

5화_파리 사람들은 왜 열심히 달리나요?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사람들은 ‘파리’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 세상 낭만이 다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센강?





내게 파리의 이미지는 ‘러너들의 세상’으로 새겨져 있다. 2016년 열흘 일정으로 파리에 여행을 갔었는데, 개선문 앞에서 처음 러너를 봤다. 수많은 관광객 속에서 탱크톱에 레깅스를 입고, 이어폰을 낀 채 도시를 달리는 그녀는 단연 눈에 띄었다. 튈르리 공원에서도, 생마르탱 운하에서도 도시 곳곳에서 러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 5일째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갔다가 야간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날도 센강을 따라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달리는 걸 봤다. 요즘 말로 ‘러닝 크루’였다.




달리기나 마라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던 때라 너무 신기해서 가이드에게 물었다.      


“파리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파리 사람들은 왜 열심히 달리나요?”

“프랑스는 소득이 많을 경우 최대 45%를 세금으로 내요. 낸 세금을 은퇴 후 연금으로 다 돌려받으려면 적어도 80살까지는 살아야 한다고 해요. 오래 살면서 노후를 누리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당시에는 가이드의 말이 공감돼서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기, 마라톤, 그 밖의 다양한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날 이후, ‘정말 오래 살면서 연금을 받으려고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달리는 걸까? 달리기에 다른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파리에서 만난 러너들이 자주 떠올랐다. 그들이 달렸던 목적에 대해, 달리기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혼자 공원을 달리면서 깨달았다. 장수, 건강 유지, 다이어트, 체력 향상 등 달리기를 시작한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달리기의 본질은 ‘즐거움’이라는 걸. 달리기에는 다채로운 즐거움의 층위가 존재하고, 즐겁지 않다면 꾸준히 달릴 수가 없다는 걸.      




먼저 달리는 것 자체의 즐거움이 있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며 리듬감 있게 몸을 움직이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며 상쾌한 기분이 든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하지만 질주하지는 않으면서 세상과 사람을 스쳐 지나가며 감상할 수 있다. 오로지 길 위를 달리는 내 몸과 내 생각에 집중하다 보면 몰입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경쾌하게 달리는 즐거움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나는 음악 없이 고요하게 달리는 걸 좋아하는데, 가끔 조성진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으며 달릴 때 황홀함에 빠진다.      




달리고 난 후의 즐거움도 크다. 목표한 거리를 달리고 나면 오늘도 나만의 레이스를 마쳤다는 성취감과 기쁨으로 마음이 꽉 찬다. 런데이 어플을 켜고 달리는 중간 찍은 사진에 달린 거리와 속도를  넣은 후 블로그에 일지를 쓰거나, 인스타에 올리면 내 삶의 벽돌 하나를 쌓았다는 생각에 비실비실 웃음이 나온다. 달린 후 마시는 시원하고 짜릿한 물 한잔과 피로와  고단함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샤워로 개운함과 즐거움의 정점을 찍는다. 솔직히 나에게 언제가 가장 즐겁냐고 물으면 믿기 어렵겠지만 달리는 매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달리기를 통한 성취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이모부를 응원하러 마라톤 결승선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하나, 둘 들어오는 주자들 뒤로, 저 멀리 모부가 보였다. 고통과 환희, 힘겨움과 기쁨이 뒤범벅된 얼굴이었다. 모부는 우리는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결승선을 향해 달려왔다.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단 듯 발은 무거워 보였으나, 펴진 어깨는 당당했고,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빛났다. 완주 후 누군가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고, 바닥에 쓰러져버리기도 했다. 주저앉아 펑펑 우는 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또 다음 마라톤에 출전할 거라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이 내뿜는 성취와 환희 에너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달리기도 이렇게 즐거운 진데, 함께 달린다면 어떨까? 나는 주말 아침에 남편과 종종 함께 달린다. 달리기는 경쟁이 목적이 아니라면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 하는 운동이지만, 함께 달리는 경험을 각별하다. 일종의 ‘달리기 데이트’이니 그 자체로 즐겁다. 서로 힘들지 않은지 물어봐 주고, 격려하다 보면 평소보다 먼 거리도 거뜬하게 달릴 수 있다. 함께 달리다가 속도가 차이나기도 하는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달린 후 함께 마시는 음료수도 달콤한 즐거움이다. 육아와 코로나라는 제약 때문에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엔 ‘러닝 크루(running crew)’나 러닝 동호회 사람들과도 함께 달려보고 싶다.      



센강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출처 :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블로그)


 




러닝 전도사 안정은은 <나는 오늘도 모리셔스의 바닷가를 달린다> 책을 썼을 당시 마라톤 풀코스 7회 완주, 울트라 트레일 러닝 111Km 완주, 철인 3종 경기 완주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 안정은에게 물었다고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달리는 거냐고. 그 물음에 안정은은 “그렇게까지 달려보셨어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렇게까지 달리게 되는 ‘달리기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육상 선수 김도연은 달리다 힘들면 ‘내가 운동만 하는 기계인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감정을 달리기로 이겨낸다고 한다. 그녀는 이것이 달리기의 딜레마이자 매력이라고 말한다.          




‘정말 달리기가 즐거울까? 도대체 달리기가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달리기의 세계엔 뭐가 있는 걸까?’ 이 글을 읽는 이의 마음에 물음표와 호기심이 생기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 내게 파리에서 만난 가이드를 마주치는 기막힌 우연이 찾아온다면, 그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파리 러너들이 달리는 건 달리기 자체가 좋아서 일거예요. 달리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거든요. 혹시 달려본 적이 없으면 저랑 같이 달려보실래요? 달리기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만끽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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