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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May 25. 2017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것

기록하는 아빠, 김항래 이야기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상징으로 읽어낸다. ‘방금 왜 저렇게 눈꼬리를 치켜떴을까?’, ‘저 표정은 더 먹고 싶다는 걸까, 그만 먹고 싶다는 걸까?’ 등 응시하고 신호를 포착하며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에게 서로의 몸짓은 암호이며, 해석되길 기다리는 기호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의 몸짓이, 말투가, 아주 작은 표정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자꾸만 마음에 달라붙는다면, 그 미묘한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면 그건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카카오 브랜드 팀에서 크리에이티브 마케터로 일하는 김항래와 제일기획 카피라이터인 박솔미 부부는 여느 초보 부모처럼 강렬한 연애 감정에 휩싸여 있다. 작고 꼬물꼬물한 딸 로엘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고 감탄하며 더 나아가 기록까지 한다. 보드라운 살갗, 동그스름한 뺨, 검고 선명한 눈동자가 둘에게 보내는 신호를 소중하게 수집해 매일 아침 사진에 담아낸다.


‘매일아침 로엘(@morning_roel)’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와 있는 이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야산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들꽃을 한 아름 모아다가 좋아하는 소녀에게 건네주는 소년의 마음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내가 아름다운 순간을 이렇게나 많이 모아왔어. 아빠가 너를 이렇게 지켜보고 있단다. 너를 읽어내는 건 정말 재미있거든.” 사랑에 빠진 이의 달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editor 최혜진 photo 이주연 



매일 출근 전, 딸 로엘이를 소파에 올려놓고 촬영하는 ‘매일아침 로엘’ 프로젝트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많은 아빠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카메라를 새로 구입합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저도 물론 했지요. 기왕이면 새로운 방식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마침 매년 딸과 같은 장소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 아버지 사례를 기사로 접하고, 똑같은 장소에서 일관성 있게 딸의 성장을 기록하기로 결심했죠. 조리원에서 딸을 집으로 데려온 첫날, 우연히 소파 위에 로엘이를 올려두었는데 그림이 독특하더라고요. 매일 촬영하려면 수고롭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공을 들이면 제가 지칠 것 같아 가볍게 ‘소파 위 로엘’이라는 콘셉트를 정했지요.


출근 준비하기에도 바쁜 아침 시간에 어떻게 매일 촬영까지 하는지 신기합니다

보통 9시 10분에 집에서 나서는데요, 8시 45분쯤 아침을 먹으면서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는 로엘이를 지켜봅니다. ‘오늘은 로엘이의 어떤 모습을 찍을까’ 생각하면서 밥을 먹어요. 지켜보면 그날그날의 사소한 특징이 눈에 들어오거든요. 유독 머리가 부스스한 날, 모기에 물린 날, 새 인형 선물을 받은 날.... 이렇게 매일 조금씩 다른 점을 찾아내 출근 직전에 로엘이를 소파에 올려놓고 2~3분 정도 사진을 찍고 회사로 향합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아침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어떤 멘트를 붙일까 고민하지요.


귀찮은 날도 분명 있겠죠?

물론이죠. 피곤한 날도 있고, ‘이거 해서 뭐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날도 분명 있어요. 실제로 며칠 빼먹은 적도 있고요. 그런데 로엘이 할머니, 외할머니, 주변 지인들이 전화를 걸어서 “요즘 로엘이 무슨 일 있니?” 묻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이 일종의 소식지가 된 셈이죠. 또 가끔씩 인스타그램 피드를 쭉 내려서 신생아였을 때 사진을 보면 굉장히 뭉클하기도 해요. 스토리라인이 보이거든요. ‘로엘이가 이렇게 작았구나. 이런 과정으로 커왔구나’ 하며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 게 저희 부부가 고된 육아에 함몰되지 않는 좋은 방법 같아요.



만약 ‘매일아침 로엘’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다면 딸의 모습을 이렇게까지 주의 깊게 관찰했을까요?

아마 아닐 것 같아요. 기록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기록할 거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점을 포착하는 시선, 관찰하는 습관은 이 프로젝트를 했기 때문에 한층 더 생겨났다고 할 수 있어요.그러니까 기록이 저를 ‘관찰하는 아버지’로 만들어준 거죠.


전문가 못지않은 사진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rae_kim)에 올린 여행 사진으로 사진 전시도 했고요. 좋은 사진이란 어떤 걸까요?

제가 최고로 꼽는 사진집이 있어요. 유명 사진가의 작품집도 아주 좋지만, 일본의 한 블로거가 자기 가족의 일상을 기록한 《다카페일기》의 감성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좋아하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순간이나 압도적 자연경관에서 느끼는 놀라움도 사진의 주제가 될 수 있지만, 저는 자신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담아낸 그 자세가 좋습니다.


사실 가족의 일상을 색다르게 포착하는 게 오히려 가장 내공이 필요한 작업 아닐까요? 감탄하는 마음이 살아 있어야 기록할 수 있는데, 사실 가족은 가장 익숙하고 당연한 존재여서 그들을 굳이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로엘이가 사춘기 청소년이 될 때까지 제가 이 아이를 보면서 매일 감동할지 자신할 순 없지만, 지금은 매일 감동하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전 아버지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요. 로엘이가 폭풍 성장을 하면서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어느 날은 출근할 때 얼굴이 다르고 퇴근해서 보는 얼굴이 달라요. 그렇게 사소한 로엘이의 변화를 보면서 감탄할 때 자주 부모님 생각을 합니다. 로엘이가 제 어릴 때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았거든요. 37년 전에 나도 우리 부모님에게 이렇게나 감탄스러운 존재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SNS에 일상을 공유하는 일에 대해 상반된 시선이 존재합니다. 자신의 삶을 부지런하게 사랑하는 일이라고 보는 긍정적 시선도 있고, 보여주고 싶은 면만 편집해 보여주며 과시하는 도구라는 부정적 시선도 존재하죠.

저도 그 점을 잘 인지하고 조심스럽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SNS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내 사진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내가 오늘 이런 장면을 봐서 사진으로 담아 봤어. 당신도 내가 본 이 장면을 보고 기분이 좋으면 좋겠어, 정도의 마음이랄까요. 사람들이 내 사진을, 내 멘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노심초사한다면 아마 SNS를 못 할 것 같아요.


SNS에 올릴 사진을 고르려면 찍어둔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잠시 멈춰서 기록해둔 것들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 시간에 어떤 느낌을 받나요?

물론 가치 있지요. 저는 어떤 상황을 시각적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오래전 사진을 다시 보면 ‘아, 내가 이때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 하는 기억이 되살아나요. 사진 한 컷에도 촬영한 당시 순간 앞뒤 몇 초간의 기억 조각이 붙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붙드는 방식이고, 그렇게 얻은 추억을 돌이켜볼 때 다시 확인하는 건 결국 저라는 사람입니다. 잘 찍은 사진이든 못 찍은 사진이든 어찌 되었든 모두 저의 시선으로 기록한 것들이니까요.



오랫동안 광고 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고, 지금도 가장 트렌디한 회사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선한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책, 잡지, 영화, 전시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잡식성으로 새롭고 트렌디한 콘텐츠와 경험을 끊임없이 찾아다닙니다. 무엇보다 제게 영감을 주는 건 여행이에요.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우선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단 생각을 합니다. ‘여기를 또 언제 와보겠어’란 마음에 최대한 집중해서 관찰하는 것 같아요. 물론 눈에 비치는 풍경이 익숙한 서울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더 살피고 관찰하는 면도 있고요. 그럴 때 툭 찾아오는 영감이 있어요. 여행의 영감을 집에 돌아와 정리하고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여행하며 찍은 사진도 정리하고, 그때 느낀 기분들도 기록하고요. 여행과 기록으로 이어지는 이 행위 자체가 저에겐 대단한 기쁨입니다.


흔히 아버지가 되면 생활에 함몰되어 창의성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에 동의하나요?

감성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요즘의 것, 가장 트렌디한 것에서 얻는 감성은 예전만큼 쫓아갈 수 없어서 둔감해지는 게 사실이지만, 아이가 채워주는 감성이 또 있어요. 다른 결로 오히려 더 감성적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네요.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됨으로써 하지 못하는 일들이 분명 생기긴 했습니다. 저는 2~3개월에 한 번씩 훌쩍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부담감이 솔직히 있어요. 금전적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하고요. 지금이야 로엘이가 크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지만 성장할수록 부모가 서포트해줘야 할 것이 늘어날 텐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러기에 지금 더욱더 좋은 추억과 기억, 감정을 아이 내면에 저금해둬야 한다고 믿어요. 나중에 아이가 크면 돈을 더 열심히 벌어야 할 때가 분명히 찾아올 거예요. 그때를 대비해 지금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감성적 씨앗을 심어두는 거죠. 아이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어딘가에는 함께 보낸 시간들이 분명 기록될 거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주말이면 로엘이를 유모차에 태워 셋이 전시회를 보러 갑니다. 아이가 전시 내용을 이해하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어요. 저희 부부가 영감을 채우러 가는 시간이고, 로엘이와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걸 습관화하고 싶거든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로엘이도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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