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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n 30. 2023

8장 진정한 교류란?

양이의 울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목욕 시간이 길어지거나 병원에서 복잡한 치료를 받았던 몇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 운 적이 없을 뿐더러, 집 안에서도 고양이 키우는 집인가 싶을 정도로 야옹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과거 고양이가 싫었던 수많은 이유 가운데 울음 소리도 있었다. 단독주택에 살던 어린 시절 한밤중에 지붕위에서 들려오는 동네 길냥이들의 울음 소리는 요상하고 음침하였다. 얼핏 아기 울음 같기도, 늑대 소리 같기도 하고, 사나운 톤, 호소하는 톤, 다투는 톤 등이 섞인 울음 소리는 고양이를 ‘비호감’ 동물로 만드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하였다. 사실 고양이가 내는 소리는 많고 다양하다고 한다. 흔히 알고 있는 ‘야옹’은 고양이가 내는 수백가지의 소리 가운데 아마도 사람 귀에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로 귀여운 이미지와 함께 자리잡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양이 동영상들을 보면, 사람에게 야옹 소리로 반응하는 장면들을 재미나게 포착하고 있다. 고양이 집사의 설명에 따라, 야옹 소리가 말대꾸, 투정, 호소, 애교, 화남, 빠짐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정확한 이유는 고양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을 것이다. 반려동물과 지내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나와 눈을 맞추고 나의 말을 알아듣고 적절한 반응을 할 때이다. 사람의 말이 아닌 무엇인가로 이루어지는 반려동물과의 소통은 반려세계의 매력 가운데 으뜸이 아닐까 싶다. 사람으로 치면 양이는 처음부터 말수가 적은 양이였을까, 아니면 치열했던 어린 시절을 지내며 말수가 없어진 걸까, 고양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울어 봤 자 소용없다는 무기력증이 있는 것일까 등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고양이가 아닌 이상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양이가 야옹 소리를 낼 줄은 아나 웬만해서는 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앉아, 손, 엎드려, 밥, 간식, 산책 등의 말을 척척 알아듣고 반응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교감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데도 사람의 표정, 톤, 소리의 높낮이, 눈빛, 제스츄어 등의 단서를 포착하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하기 짝이 없다. 양이의 경우, 야옹 소리를 내지 않지만 나와 소통이 되는 서너가지 단어들이 있다. ‘맘마, 츄르(짜먹는 고양이 간식), 자기 이름, 아고 예쁘다’ 이다. 양이가 나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한다는 사실은, 돌보는 수고와 귀찮음을 한방에 보상해준다. 동물과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교류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교감과 소통에 대한 욕구와 목마름에서 비롯된다. 나의 경우, 딸에게 섭섭한 감정을 느끼면 양이에게 너네 언니는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니 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가 하면, 몸이 안 좋을 때는 양이에게 집사가 아파 라고 호소를 하게 된다. 사람한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양이에게 털어 놓는데, 효과가 제법 크다. 내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 이야기를 하는지 알 턱이 없는 양이는 가만히 듣기 때문이다. 반응이 없더라도 나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위로가 아닐까 싶다. 종종 답답하고 힘든 마음이 들 때, 누군가 나의 얘기를 들어 주기만 해도 살 것 같은 때가 있다. 두말할 여지없이 소통의 반 이상은 서로 들어주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배고픔과 목마름, 인정과 소속감, 자기실현 등에 대한 욕구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소통의 욕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영어에 ‘we cannot not communicate’라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는 소통하지 않고 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성향상 말을 별로 하지 않고도 편안한 사람이 있고, 특수한 환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말을 안 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말을 안 하고 산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 말을 얼마만큼 하고(안하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동물, 신적인 존재와 같은 대상과 어떤 교감을 하면서 사는 가는 삶의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의 경우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해서 신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감에 대한 욕구가 적은 사람은 아니다. 좋아하는 대상과 교류하면서 느끼는 편안함과 즐거움, 유쾌함, 힘과 희망 등이 삶의 커다란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나는 90세가 넘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어머니와의 대화는 별로이다). 구십이 넘은 할아버지와 나눌 공감의 화제,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이야기, 함께 공분할 수 있는 사건, 심지어 연예인 뒷담화 등은 없었지만, 날씨가 좋다, 나무가 푸르다, 휠체어가 잘 구른다 와 같은 사소하고 짧은 대화로도 교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고 고마워한다는 느낌이 전해지고, 아버지 역시 말없이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는 딸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어머니는 신세 한탄, 과거지사, 잘 모르는 할머니들 스토리 등 이야기가 많지만 교감이 풍부한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주로 일방 통행의 대화이고, 자기 얘기를 반복하는 노인과의 교감의 어려운 이유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아버지와 교감이 잘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확실히 교감이 잘 되는 사람들이 개인마다 다른 것 같다. 쿵짝이 맞아서, 공감대가 이루어져서, 재미있어서, 호기심이 생겨서, 정보가 많아서 등 교류에는 많은 차원이 있다. 자신이 어떤 교감을 좋아하는지 발견하는 것이 교류의 시작이다. 


진정한 교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아는 척, 잘난 척이 배어 있는 사람, 자랑을 일삼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이 자기얘기만 하는 자기몰입적인 사람, 가르치려는 사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늘어 놓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지루하고 참아야 하며 재미가 없고 지치게 된다. 막상 이야기할 기회가 와도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의욕과 동기가 상실된 상태가 될 수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말하고 나서 기분이 별로가 되는 사람, 다시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만날까 말까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것 같다. 진심어린 교감과 공감, 즐거움이 오가는 대화에는 자신에게 잘 맞는 상대가 필요하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느끼게 되는 공허감과 외로움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나의 원함과 욕구에 따라 만남과 대상을 선택할 줄 아는 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심리적인 안전감은 마음이 편한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을 했다가 기분 나쁘거나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괜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가하면, 상대방으로부터 비난이나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고 불안해지는 만남도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마음 편한 소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관계도 피곤과 지침을 가져온다. 내가 무엇인가 증명해 보이고 상대방의 평가나 생각을 확인하는데 쓰는 에너지 소모는 찐 교류를 방해한다. 한편 자신의 의도나 생각이 오해나 잘못된 해석을 받는 것처럼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일도 없다. 완전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 내가 이해받고 있다는 만족감은 더 깊은 교류로 이어지게 한다. 공감이란 상대방이 나의 안경을 쓰고, 나의 신발을 신고 내가 하는 말이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의 입장에서 바라봐 주는 것인데, 자신도 그랬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웃고 울어주는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신뢰감이다. 


공통의 언어가 없는 양이와의 소통은 주로 터치와 눈맞춤으로 이루어지는데, 양이와 눈을 맞추는 짧은 순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양이는 잘 잤고, 맘마를 많이 먹었고, 혼자 잘 지냈다는 인사를 건네고, 나 역시 집사도 잘 잤다,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눈빛 교환으로 전한다. 꿈벅이고 바라보는 덤덤한 눈인사이지만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눈이다.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터치를 허용하는 양이에게 터치는, 고맙고 든든한 룸메이트에 대한 나의 고마움을 담고 있다. 그것을 양이가 느끼는가 잘 모르겠지만, 터치는 양이와 오갈 수 있는 효과적인 소통의 하나이다. 우리도 많은 비언어적인 소통을 한다. 표정으로, 눈으로, 손짓으로, 웃음과 울음으로, 한숨으로, 자세로, 터치로 소통하는 비율은 말로 하는 비율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비언어적인 소통의 도구들은 때로 더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서로를 드러낼 수 있는 소통의 도구로 쓰여 지기도 있지만, 반대로 잘못 쓰일 때도 많다. 무심한 눈빛과 표정이 상대방의 기분을 다운시키고 과장된 몸짓, 뜬금없는 웃음이나 울음이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기도 한다. 말 조심만큼 표정과 자세관리도 교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 기간동안, 양이하고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웠다. 말없는 양이가 주는 소통의 힘과는 다른,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시간, 웃는 시간, 속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이 나의 삶에 중요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진정한 교감이 오가는 소통은 우리 삶에 꼭 있어야 할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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