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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Nov 29. 2016

미래 식사?
가루 한 움큼 또는 애벌레 한 접시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2016년 10월 발행)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대에 보급하기 위해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통조림이 만들어졌습니다. 켈로그 형제가 만든 ‘콘플레이크’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제공하던 음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네요. 음식의 형태는 시대와 필요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래엔 어떤 음식이 일상이 될까요? 설마 물에 타는 화학 가루나 벌레 같은 건 아니겠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롭 라인하트는 졸업 후 무선통신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회사는 파산했고 라인하트는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라면이나 핫도그 등 값싼 음식을 먹으며 지냈는데, 점차 건강은 나빠졌고 모든 게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렴한 재료를 찾아다니는 장보기도, 요리도, 설거지도…. 그는 영양은 챙기면서 고생은 없는 식생활을 찾기로 결심했습니다.


“3개월간 생화학 및 영양학 교과서들을 탐독하면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영양분을 얻을 방법도 찾아냈어요. 대부분이 화학물질인데 단백질은 탈지유에서 추출한 분리유청단백질, 탄수화물은 식이섬유의 원료인 말토덱스트린에서 얻는 식이었죠. 아연, 크롬 같은 미량영양소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게을렀지만 똑똑했던 그는 수차례의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소일렌트’란 유동식流動食, 씹지 않고 삼킬 수 있도록, 소화하기 쉽게 만든 음식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소일렌트는 녹말과 유청 단백질, 올리브오일 등을 아미노산, 비타민 같은 천연화합물과 섞어 셰이크 형태로 만든 대체식품으로, 베이지 색상을 한 분말 가루를 물에 풀어서 마실 수 있는 스무디 같은 이 음료에는 건강한 식생활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래엔 식사시간이 낭비일까

라인하트는 2013년 소일렌트를 개발해 30일 동안 그것만 먹는 실험을 블로그에 게재했습니다. 영양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파우더형으로 물에 타 먹기만 하면 되는 이 대체식품은 블로그를 통해 입소문이나 대규모 자본 투자를 유치하는 등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 기술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밥 먹을 시간조차 아까운 벤처 기술자들과 사업가들에게 식사 준비시간과 식사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소일렌트는 파우더형 대체식품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소일렌트를 시작으로 ‘쉬모이렌트’ ‘쉬밀크’ 등의 대체식품이 연달아 개발됐습니다.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는 자서전에서 “안 먹고 일하는 방법만 있다면 안 먹을 텐데… 식사를 하지 않고도 영양소를 섭취하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고 푸념했는데, 실제 그 일이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소일렌트는 “밍밍하고 알갱이가 씹히는 팬케이크 반죽” 같은 맛이지만, (온라인 후기에 따르면 그저 ‘맛이 없다’고)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효과는 확실하다고 합니다. 특히 비용, 실리콘밸리 지역 식당에서 한끼 비용은 일반적으로 50달러 이상인데 소일렌트나 쉬모일렌트는 1주일치가 85달러에 불과합니다. “먹는 데 낭비된 시간은, 실리콘 밸리 식 표현을 빌자면, 최고 기술자들에게도 ‘통점(pain point)’인셈”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습니다.


부모님이 해준 음식,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 먹던 떡볶이…. 이런 음식을 생각한다면 미래에 정말 이런 가루를 먹을까 의아합니다만 다른 면에선 과학자들은 이런 대체음식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음식을 조리할 수 없거나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극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소일렌트와 같은 대체음식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통조림이 만들어지고 우주에서 튜브형 수프가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어주었듯 말입니다. 군인들, 오지로 여행간 사람들, 굶주림으로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소일렌트는 확실한 미래식입니다.


소일렌트와 마찬가지로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등 필수영양소가 함유된 대체음식이다. 한 끼에 330~340칼로리의 열량을 공급한다. 세 끼 모두 랩노쉬만 먹어도 괜찮지만 심리적 요인 때문에 랩노쉬를 만드는 사람들은 한두 끼만 권장한다고 한다. 그 심리적요인이란 역시 식사시간이 가져다주는 정서적 만족감일 테다.


개명한 곤충들

소일렌트가 화학적인 방법으로 영양을 채워준다면, 그동안 먹지 않았던것 중 영양가가 검증되면서 식탁 위로 새로이 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곤충입니다. 2014년 정부는 국내에서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곤충을 발표했습니다. 총 일곱 가지로 메뚜기, 누에번데기, 백강잠, 갈색거저리 유충,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굼벵이), 장수풍뎅이 유충, 쌍별귀뚜라미 성충입니다.

이들의 생김새는 모르더라도 이름만 들어선 먹는 거론 꺼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는 곤충 섭취에 대한 소비자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먼저 이름부터 바꾸기로 했습니다. 메뚜기, 누에번데기, 백강잠은 이미 이름이 알려진 것이니 그냥 두고, (위에 소개한 순서대로) 고소해서 고소애, ‘꽃’을 따와 꽃벵이, 먹으면 장수한다고 ‘장수애’, 본명의 앞글자를 따 쌍별이로 개명했습니다. 어떤가요? 이제 거부감이 좀 사라지나요?


과거 곤충 식용은 흔한 음식문화였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매미·메뚜기·풍뎅이·꿀벌 등 식용이 가능한 곤충과 효능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가 아더라도 현재 곤충을 즐기는 사람이많습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매일 곤충을 먹는 세계인구는 25억 명에 이른다고 하네요. 특히 아시아에서 곤충은 특별한 음식으로 취급됩니다. 중국에서 전갈 튀김은 고급요리에 속하고, 태국에서 귀뚜라미는 별미입니다.


정부는 식용곤충을 미래 먹거리로 지정하고,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정부가 사육 기준을 마련하고 법적 규제를 통해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식용곤충이 생산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식용곤충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2012년 이후 북미 지역에서만 귀뚜라미를 취급하는 신생회사가 30개 이상 등장했다고 합니다. 귀뚜라미가 들어간 쿠키, 튀김, 초콜릿, 그래놀라 바 등이 시판됐습니다.


왜 하필 곤충을 먹으려고 하는 걸까요. 농가의 수익을 올려주는 한편 식량 위기에 곤충만 한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는 10억 명이고, 굶어 죽는 사람만 하루 최소 2만 5000명에 이릅니다. 전 세계적으로 토지와 가축 사육 공간은 30%에 불과한데, 그나마 계속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식용 곤충은 개체수가 많고, 우수한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적은 사육 공간에서도 강한 번식력을 갖추는 등 미래식량으로 좋은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태운 기차가 끊임없이 달린다. 꼬리칸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하층민의 주식은 단백질 블록이다. 이 단백질 블록은 바퀴벌레로 만들어졌다. 이 설정은 계급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곤충이 효율적인 미래의 식품 자원이라는 과학적 견해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해충이자 혐오의 대상인 바퀴벌레가 식품 영양학 면으로 보면 완전식품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실제로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는 귀뚜라미를 비롯해 바퀴벌레 역시 식용으로 먹어왔다. 앞으로 닥칠 식량난에도 훌륭한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식용 곤충의 연구에 관심과 투자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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