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곳곳에 콘센트가 많았다. 그것도 누렇게 되다 못해 샛노랗게 열화된 상태의.
심지어 발코니까지 포함해 공간별로 최소 2개 이상의 콘센트가 설치되어 있어서 새삼 이전 집주인이 전자기기 덕후였나 싶을 정도. 덕분에 전선 길이만 확보하면 전자제품을 쓰는데 문제가 없어 편리하긴 했지만, 문제는 집안 전체의 노후한 콘센트가 개수로만 수십 개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이것만 따로 교체 공사를 하기도 애매했는데 이유는 이렇다.
1. 외관만 변색되었을 뿐 정상 동작한다.
2. 도배 마감 상태가 매끈하지 않아서 교체 후 주변 벽지가 상하거나 오염될 수 있다.
3. 타공된 벽 속의 콘크리트 지지 상태에 따라 새로 설치 시 온전히 고정되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4. 벽체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데 콘센트만 새것으로 반짝인다면 그것대로 어색하다.
이용 빈도가 낮은 콘센트는 굳이 교체하지 않기로 하고, 일상에서 시선의 흐름에 가장 많이 드러나고 자주 쓰는 콘센트만 교체했다.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가구와 물체로 가려지기를 기대하고 그럼에도 보이는 녀석들은 운명이다 생각하고 같이 살아가기로.
제일 큰 문제는 TV 하단에 나란히 붙어 세 쌍둥이처럼 강한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콘센트 세 개였다. 평일에는 운동할 때 외에는 아예 TV를 켜지 않기도 하고, 가끔 OTT의 콘텐츠를 몰아서 즐기는 용도가 TV의 존재 이유 다였다. 그래서 10년 가까이 된 작고 귀여운 TV는 크롬캐스트라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어두운 골방에서 요양 중이다. 그동안 굴러다니던 모니터 받침대를 세워서 가려뒀던 콘센트 삼총사를 한꺼번에 아름답게 다 가려주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 계획했으나.
도배 마감 때문에 벽체가 석고보드로 덧대져 있었는데 보드가 너무 약했다는 사실에 1차 쇼크. 석고보드가 쏟아내는 비산먼지에 2차 쇼크. 목표 위치 아래에 비닐을 붙이면 가루가 그곳으로 얌전히 다 들어갈 거라는 가설은 완벽히 빗나가 석고가루는 온 사방에 5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날렸다. 창문을 열어뒀지만 소용이 없어 곧바로 94 마스크를 장착했다. 유선 드릴의 전원까지 켠 상태에서 콘크리트층까지 진입해야 할지 살짝 고민하다가 합판 두께로 미뤄볼 때 받침대 무게 정도는 버텨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콘크리트층을 뚫으면 나올 시멘트 가루 뒤처리가 귀찮았고, 해머 드릴의 진동은 아무리 낮이라도 층간 소음이 될 수 있다. 반쯤은 진심으로 3M 방진 마스크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라도 정신 건강을 위해 빠르게 포기해 버렸다.
받침대의 너비에 맞춰 뚫어둔 구멍에 앵커를 집어넣고, 모니터를 살짝 걸칠 수 있을만한 길이의 못을 넣어 조였다. 콘센트를 가릴 선반으로 이용할 모니터 받침대는 발코니를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전면부만 건성으로 미리 칠해 말려 두었다. 받침대의 상단 지지대 양쪽에 못의 헤드 지름과 같은 크기의 구멍을 못이 벽에서 튀어나온 길이만큼 뚫었다. 부드러운 목재를 드릴로 뚫을 땐 묘하게 좋은 느낌이 들어도 미세먼지급으로 곱게 갈리는 분진을 보면 기분이고 뭐고 후다닥 끝내버리고 진공청소기로 제거하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선반을 못에 걸어주면 완성
운이 좋게도 마침 모니터 받침대의 다리가 딱 전선 몰딩의 높이만큼 더 튀어나와 있어 몰딩이 선반 위로 빠져나올 공간이 있었다. 몰딩을 통해 멀티탭의 전원 케이블이 통과할 수 있어서 추가 가공 없이 쉽게 부착했다. 박스형 선반이 된 모니터 받침대는 처음 창고에서 발견하곤 버리려다 놔두면 쓸데가 있겠거니 싶어 보관했더니 정말 제 쓸모를 찾았다. 전체 작업에서 드릴링보다는 선반 위치 선정과 타공 수평을 맞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 편이었다. 수차례 내 눈과 측정 앱을 의심해 가며 수평을 맞추는데 역시 현장엔 물리 도구인 레이저 수평계가 필요하다. 사전 준비나 설치 후 도구 정리와 청소까지 포함하면 작업 소요 시간은 예상치의 두 배 이상으로 잡아야 한다.
시중에는 벽고정형 선반이나 용도에 맞게 나온 미디어 선반도 판매되지만 내 TV는 주변 액세서리에까지 힘을 줄 고급 기기가 아니었다. 평소 필요가 큰 물건도 아닌 데다 오래된 부속이 고장이라도 나면 그땐 부분 수리보다는 통째로 교체해야 할 수도 있으니. 별다른 재료 사용 없이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페인팅과 드릴 작업만으로 깔끔하게 가려졌다는 데에 의미를 둔다면 투입된 노동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