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많은 형 덕분에, 나는 많은 걸 미리 알 수 있었다. 형이 먼저 경험한 고등학교 생활, 대학 생활, 그리고 군대까지. 형이 지나간 길을 보며 '나도 저런 일을 겪겠구나' 하고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형은 어느 해 12월, 겨울 초입에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런 종이로 포장한 소포가 집에 도착했다. 형이 입대할 때 입었던 옷이었다. 흙먼지가 뭍은 그대로 형의 체취가 남아있는 옷이 덩그러니 돌아온 거다.
지금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입대 후 보충대에서 며칠을 보내고 군복을 지급받았다. 그렇게 군복으로 갈아입으면 진짜 군생활의 시작이었다. 입고 있던 사복은 소포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형이 입던 옷을 부여안고 아버지가 울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때까지 아버지가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의외로 덤덤하셨고, 아버지가 더 힘들어하셨다. 그 순간은 내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번에는 내가 군대를 갔다.
보충대에서 며칠이 지나자 새 군복이 지급되었고, 이제는 내가 사복을 보내야 할 차례였다. 무수히 반복되었을 절차, 하지만 각기 다른 눈물로 기억될 순간. 나는 아버지의 그때 장면이 떠올랐다.
"아, 내 옷 보고 또 우실 텐데..."
군대에서 늘 그렇듯, 옷을 포장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그렇다고 소포를 받아보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대충 보낼 수 없었다. 나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최대한 깔끔히 포장했다. 그리고 급하게 누런 포장지를 찢어 간단한 편지를 썼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세월이 지나, 이제는 내 또래 친구들이 아들을 군대에 보낼 나이가 되었다. 주변에서 군대 보냈다는 얘기를 들으면 형이 보낸 옷을 붙잡고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정작 내 옷이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어떠셨는지 알지 못했다. 그냥 비슷하셨겠지 상상만 했고 얘기를 나눠 본 기억이 없었다.
얼마 전, 가족들에게 물어봤다.
"내 사복 소포가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어땠어?"
어머니와 형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기억해 내셨다.
"똑같았지."
형의 옷을 받아 들고 눈물을 흘리셨듯, 내 옷을 받아 들고도 똑같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쪽지도 선명히 기억하셨다. 그때 어떠셨을지, 나는 바로 옆에서 본 것 같이 상상할 수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더 힘들어하셨던 건, 직접 군 생활을 해 보셨기 때문일 거다. 어머니는 막연한 걱정을 하셨다면, 아버지는 더 구체적으로 힘든 상황이 떠올랐을 거다. 적어도 군대만큼은 아빠들이 엄마들보다 더 공감한다.
나는 딸만 둘이라 군대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을 겪을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첫 직장에 들어가고, 새로운 환경에서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나는 그 길이 어떨지 이미 안다. 그래서 더욱 안쓰럽고,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렇다고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언제든 필요하면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렇게 묵묵히 의지가 되어 주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남은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아버지의 눈물을 떠올리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