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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시선: 헤르만 헤세, 『데미안』(Demian)

헤세에게 보내는 반론 : 당신의 새는 아직 연약하다.

by 여기반짝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난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은 아브락사스.



청소년기 문학도를 꿈꾸어 본 사람이라면 소설 『데미안』의 한 두 문장 정도 노트나 일기장에 끄적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브락사스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교실 안의 연대와 경쟁, 세계에 대한 동경과 반항이 뒤엉킨 방황이라는 감정은, 의미를 특정할 수 없었던『데미안』의 문장과 닮아 있었다.

에바 부인의 속삭임과 데미안의 환영이, 당시의 나는 뜻도 모르면서 좋았다.



악마를 닮고 싶었던 청춘시대


애초에 『데미안』을 읽은 계기는 대학별 논술 추천 고전이기도 했거니와,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하기로 유명한' 청춘의 바이블이었달까. '알의 파괴'라는 의미가 친구들 사이에서 지식인의 묘한 완장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2~3번 더 읽어본 지금 추측건대, '데미안을 완독 하였노라'는 당시의 선언은 아마도 허세였을 것이다.

『데미안』청소년기의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세계관 위에 지어졌다.


청소년 시절 내가 소설에서 읽어 낸 메시지는 '투쟁과 변화'였다. 소설 『데미안』은 불안과 불만이 꿈틀대던 사춘기 학생이라면 빠져들만했다. 적어도 소설의 전반부는 그랬다.

낡고 위선적인 세계(알)를 깨부수고, 오직 신성한 자기 자신에게로 날아오르는 고독한 새의 투쟁.
안온하지만 거짓된 ‘빛의 세계’와 금지되었기에 더 매력적인 ‘어둠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던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인도로 마침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하지만 정답과 오답 사이를 예민하게 판단하는 데에 길들여진 독서 습관으로, 소설의 세계관을 '빛과 어둠', '알의 안과 밖'을 이분법으로만 판단하는 가치관을 허물기는 힘들었다. 빛과 어둠 사이에는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고, 회색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직장 물을 먹고 사회에서 굴러본 뒤에야 이해했다.


그리고 '빛'의 세계가 상징하는 어떤 어른들의 입장이 모두 위선이 아닐 수도 있음도 알았다.

누군가 품고 있을 사연을 짐작도 해 보게 되었다. '어둠'의 세계가 유발하는 저항의 힘이 반드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구절은, 몇 번이고 거듭 읽어도 뜻을 알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의 세례를 받은 후에야, 데미안의 얼굴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시대의 광기 앞에 선 헤세의 정당한 분노


헤세는 왜 세계를 '알'과 '아브락사스'를 중심으로 양분했을까?

먼저 헤세가 펜을 들었던 시대를 조명해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국가, 도덕률이라는 거대한 ‘알’은 애국심이라는 명령으로 청년들을 전장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조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비인간적 폭력과 광기 속에서, 헤세에게 사회의 규범과 전통은 파괴되어 마땅한 위선적 껍데기였다.


리빙 잡지에나 나올 법한 안온한 가정의 풍경은 바로 그 위선적 세계의 축소판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 안에서 선과 악은 명확히 분리되어 있었고, 의심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 세계를 깨뜨리는 것의 의미는 청소년기의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84쪽)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즉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생존 투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알의 파괴'가 촉발한 트리거에 청춘들이 응답했다.

그러니까 헤세의 분노는 표현론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정당했다.



비틀어 읽기 : 우리가 지켜야 할 연약한 '알'


청춘들은 여전히 분투 중이다.

청춘만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되어도 변화를 도무지 멈출 수가 없는 시대다.

사람 사이의 무한 경쟁에 이어 AI 특이점이 더해진 지금, 우리 모두는 불확실한 미래와 맞서고 있다.

혁신에의 요구와 추앙이 도처에서 들린다. 하지만 문제는 혁신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뿜어 나오지 못한 채 밖에서 들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알을 깰 힘이 없다면 무가치한 사람일까?

일상의 전쟁터에서 헤세의 ‘알 깨기’는 어떻게 다시 읽어야 하는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낡은 것들이 매일 파괴되는 오늘, ‘알’은 더 이상 억압의 유의어로만 읽을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알은 헤세의 시대처럼 견고하기는커녕, 전쟁과 재난, 기술적 특이점의 위협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미 곳곳에 금이 가고 위태롭기 짝이 없다.


여기서 ‘알’은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는 감옥이 아니라, 외부 혼돈으로부터의 최소한의 ‘보호막’이자 ‘사회적 안전망’으로 그 의미를 달리한다. 가령 통제 불가능한 속도로 발전하는 AI기술 앞에서 윤리 규정이라는 ‘알’은 인류의 미래를 지키는 연약한 안전망이다. 헤세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알’은 소수자와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로써 남아 있다.



깨진 알의 파편은 누구를 향하는가


영웅처럼 알을 깨고 나와 마침내 '어두운 거울 속에서...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완전히 닮아 보였'(222쪽) 던 싱클레어의 혁신을 청춘의 바이블로 삼는 관점이 현재도 유효할까.

한 사람의 영웅적 혁신은, 군중을 높은 차원으로 도약시키지만,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


(1) 플랫폼 노동: 알고리즘에 종속된 노동권

혁신(알의 파괴) : 배달, 운송, 가사도우미 등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일자리를 중개하는 '긱 이코노미'는 전통적인 고용 관행을 혁신했다.

권리 침해(새) :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근로자'가 아닌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며 최저임금, 퇴직금, 유급휴가 등 노동법의 보호 밖으로 밀어냈다.

안전망(알의 세계) : '노동법'과 '근로자성 인정'이라는 기존의 법적 보호막
라이더유니온 총회(출처: 한국일보, 2022.12.20)


(2) 원격 근무 감시: 기술로 통제되는 사생활

혁신(알의 파괴) : 직원들의 키보드 입력, 마우스 움직임, 웹캠 영상 등을 추적하는 '보스웨어(bossware)'로 생산성을 혁신했다.

권리 침해(새) : 노동자의 사적 공간인 '집'에까지 생산성이라는 명목 아래 기업의 감시가 침투되어 인간의 존엄성이 기술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안전망(알의 세계) : '개인정보보호법'과 '사생활 보호의 원칙'. 유럽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은 정보 주체에게 자신의 데이터 처리 방식에 대해 알 권리와 통제권을 부여한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AI 기반 보스웨어의 현황과 과제(출처: zum 뉴스, 2025.03.14)


(3) 딥페이크 기술

혁신(알의 파괴) : 딥페이크 기술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무한히 확장 중이다.

권리 침해(새) : 악의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때 개인의 명예와 사회의 신뢰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

안전망(알의 세계) '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및 '선거법' 등 진실과 개인의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규제


바이든 '가짜 목소리' 벌금 82억 원...딥페이크 음란물 제재(출처: YTN사이언스, 2024.05.24)



비상을 거부하는 이유


한국의 어른들은 더 이상 싱클레어가 될 수 없다.

폭주하는 빅테크 기술의 시대에 인권, 개인정보, 노동법 등의 '알'은 새를 키워줄 수 없다.

새는 충분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껍데기를 두드리며 자신의 세계를 파괴할 근육을 갖추지 못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과제는 알을 깨부수는 파괴의 기술이 아니라, 이 위태로운 알의 균열을 섬세하게 다듬는 집단지성이다.


『데미안』을 현대 청춘만이 아니라 기성세대까지 다시 읽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무작정 싱클레어의 파괴를 모방하고 '데미안'의 급진성을 추종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딛고 선 세계의 ‘알’이 과연 부서져야 할 낡은 억압의 알인지, 아니면 지켜내야 할 연약한 보호의 알인지를 반문해 보기 위함이다.

헤세가 자기 내면에서 선과 악을 통합한 신(아브락사스)을 찾으라 했다면, 현대의 어른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무엇을 파괴하고 무엇을 지킬지 선택해야 하는, 한층 더 고독한 과제를 안고 있다.


무작정 혁신을 외치기에 우리는 시스템 앞에 너무 연약하다.





인상 깊은 문장과 이유


"그걸 수행하거나 충분히 강하게 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말로 내 본질이 완전히 그것으로 채워져 있을 때뿐이야." (77쪽)

알을 깨는 행위가 단순한 충동이 아닌, 존재 전체를 건 결단이다. 자기 내면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절실함이 없다면 어떤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가져야 해." (83쪽)

사회가 ‘악’으로 규정한 것에도 세계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데미안의 도발이다.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84쪽)

개인의 고뇌가 보편적인 인간의 고뇌와 연결되는 순간 소년의 세계가 확장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포용의 영역이 넓어지는 순간이 성장의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131쪽)

운명의 주체가 오롯이 자신임을 선언하는 하는 장면이, 나라는 인간의 개별적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보였다." (222쪽)

소년이었던 싱클레어가 자신을 다른 차원으로 이끌었던 데미안을 자신의 얼굴에서 발견하는 장면이다. 이제 싱클레어는 진정한 구원을 스스로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 데미안만이 일방적으로 싱클레어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성장의 얼굴이 데미안인 것은, 싱클레어의 의지 또한 데미안을 향했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앞으로, 또 다른 데미안을 만나 내면의 얼굴울 바꿔나갈 것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자신이 누군가의 데미안이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통과의례를 지낸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 순간이다.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데미안』(Demian), 민음사)






⭐평점 및 추천 이유


별점: ★ ★ ★ ★ ★(4.0/5.0점)


추천 이유 :

학교나 직장이라는 필드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치르며 정체성의 갑옷이 너덜너덜해진 사람이라면.

이 시대의 어른은 괜찮은 척하는 외면이 있을 뿐, 내면도 결국 상처투성일 것이다.

왜냐하면 특이점 앞에서 우리 모두는 혁신에 등 떠밀린 싱클레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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