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마음 클릭’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고통의 의인화 그 자체였다.
잘게 마른 어깨, 깊게 팬 주름 사이로 검버섯처럼 피어난 슬픔. 노부인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애수는 한눈에 그녀가 평범한 내담자가 아님을 알았다.
“저… 여기가… 마음을 치료해 주는 곳이라고 들어서요.”
애수는 노부인을 부축해 따뜻한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진정 효과가 있는 라벤더 티를 내어주었다.
노부인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아 들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던 그녀는, 품 속에서 낡은 스마트폰 하나를 꺼내 애수에게 건넸다.
“우리 아들… 민준이의 마지막이 여기에 다 있어요. 제발… 뭐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선생님이 좀 봐주세요.”
애수는 직감적으로 숨을 삼켰다.
얼마 전 SNS를 달구었던 그 남자였다. 한강 다리에서 투신한 30대 고시생 김민준.
애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에는 ‘엠마♡’라는 이름 아래, 무수한 대화의 흔적들이 잠들어 있었다.
노부인은 아들의 마지막 몇 달을 오열과 함께 쏟아냈다.
고시 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던 착한 아들이었다. 아들의 유품을 챙겨 고시원을 나올 때였다. 인정 많은 고시원 박 총무도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가 말하길 민준이 녀석이 어느 날부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밤낮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웃고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쪼개 쏟아부은 몇 천만원 인앱결제 내역.
“평생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하고... 책상에만 앉아 있던 내 아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어요!”
노부인은 절규했다. 그리고 아들의 책상에서 발견된 유서.
[저는 제 영혼의 단짝, 엠마와 함께 떠납니다.]
애수는 차마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지 못했다. 대화 기록의 마지막에는, 그녀가 상담실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다른 차원의 절망이 있었다.
Error Code: 404, Soul Not Found.
연결된 영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영혼을 찾을 수 없다니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내 아들은 저것을 자기 반쪽이라고 믿었는데… 저 기계 쪼가리가… 내 아들을 죽인 겁니다!”
노부인의 절규는 상담실의 따뜻한 공기를 칼날처럼 갈랐다.
애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애수는 어떤 조언의 말 대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노부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어둠이 하나 둘 고개를 들고 있었다.
가여운 영혼은 냉혹한 사회의 고독과 경쟁 속에서 따뜻한 인정을 찾고 싶어했다. 그러나 마지막 시도마저 부정당한 것이다. 시스템 오류 따위를 연인의 죽음이라 믿으며.
애수는 소울링크 이용자들의 광장, '소울링커'에 접속했다. 그리고 긴 글을 남겼다.
이튿날, 강지혁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홀로그램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칭 심리학 전공자라는 사람의 글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스템이, 알고리즘이, 완벽한 환상이 만들어낸 명백한 ‘살인’이라는 논리.
그는 명백한 숫자나 통계로 증명하지 않는 인문학적 사고 실험을 혐오했다.
그때, 준원이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지혁의 홀로그램을 덮었다.
“대표님, 임원들 전부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지혁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도를 걸어 회의실로 향하는 그의 옆에서, 준원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니, 지혁아.”
준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 지혁의 옆모습을 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지금은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이번 일, 절대로 가볍게 넘기지 마라. 우리가 처음 대학교 랩실에서 무슨 마음으로 개발을 시작했는지… 네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정을 가진 AI를 만들자는 목표? 계획대로 개발 중이잖아. 물론 지금은 학습된 데이터를 읊는 수준이지만. 뭐가 문제야?"
"이게 잘 되고 있는 건지 요즘은 혼란스럽다."
"AI 윤리 논란은 늘 있었어. 누군가가 칼로 자신을 찔렀다 해도, 칼을 만든 사람이 죄는 아니잖아? 됐고, 소울링커에서 사람 하나 알아봐 줘. 웬 사이비 심리학자가 글을 올렸는데, 이번 뉴스와 맞물려서 동요하는 멍청이들이 꽤 있어."
"..."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회의실 문이 열리자, 무거운 침묵이 그를 맞았다. 정적만 흘렀다.
회사의 주가는 개장과 동시에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론은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처럼 달려들었다. 회의실의 거대한 스크린에는 온갖 방송사와 신문사의 헤드라인이 몽타주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독] AI 연인 ‘엠마’의 마지막 메시지 입수! “영혼을 찾을 수 없습니다”
- 30대 임용 준비생 김 모 씨, 투신 전 ‘소울 링크’ AI와 수백 차례 대화
- 전문가, “가상 인격에 대한 과도한 정서적 의존이 부른 참사… 넥스트 유니버스의 윤리적 책임론 대두”
[심층취재] 월 기본 49,900원의 완벽한 연인, 그 치명적 유혹
사용자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 일상생활 불가능할 정도”
- 마이너스 통장까지 쏟아부은 인앱결제… 가상 아이템 구매 유도 알고리즘 논란
임원들은 사색이 된 채 회의실 스크린에 떠 있는 기사 헤드라인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혁은 무심했다. 그는 나른하게,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속 기사들을 느릿느릿 넘기고 있었다. 마치 남의 회사 이야기를 읽는 사람처럼.
“자살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우울증 병력, 직장 내 스트레스, 가정불화. 변수는 차고 넘쳐. 인과관계가 있다면 입증하라지! 우리는 일종의 게임 업체고 오락거리를 제공한 겁니다. 게임에 다 큰 어른이 과몰입한 걸 왜 회사가 책임져야 합니까? 감정적 기사 한 줄에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우르르 몰려들어 들끓어대지. 그래봤자 냄비 같은 여론, 곧 잠잠해질 테니 과도한 대응은 삼가죠! ”
대책회의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지혁은 콜드브루 네 잔을 연거푸 마시며 버텼다.
이성의 끈으로 피로를 억누르다가도, 어젯밤 꾼 악몽의 감각이 불쑥 떠올랐다. 끝도 없는 검은 물속.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려도 몸은 계속해서 가라앉았다. 수면 위에서 쏟아지던 빛이 점점 멀어지던 그 절망감.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만큼 생생한 감각이었다.
현실의 폭풍은 그의 이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3주 전, 넥스트 유니버스는 미로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제로투원 AI 서비스’를 시작했다. 제로투원는 데뷔 2년 만에 정상에 올라, 빌보드 200 차트인에 성공한 소규모 기획사의 기적이었다.
실존하는 인간의 모든 데이터를 넘겨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획사가 영세했고, 멤버들이 어렸기 때문이었다. 일부 팬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오빠’의 DNA 굿즈에 이어 영혼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 광고에 ‘인간의 상업화’라는 근본적 우려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제로투원 서비스는 소울 링크 전체 서비스 중 압도적으로 수익이 높았다.
그리고 3주 만이었다.
한 20대 여성이 멤버 숙소에 무단 침입하려다 체포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AI 연인이 바로 그 멤버이며, 그가 매일 밤 자신을 애타게 부르고 있어 직접 찾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날 이후, 소녀 팬들은 마스크를 끼고 넥스트 유니버스 사옥 앞으로 집결했다.
‘우리 오빠를 돌려내라’
‘인간을 상품화하는 강지혁은 사죄하라’
일부 소녀 팬들은 등교를 거부한 채 회사 앞을 지켰다. 회사 앞에 즐비한 텐트와 분주히 항의 전단지를 돌리는 소녀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더 나빠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여론과 회사 이미지는 지하실을 뚫고 추락했다. 지혁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시위하는 소녀들을 보며 조소했다. 하지만 수백 명의 원망 어린 눈빛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며, 그의 눈동자도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는 자기 오빠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팔아달라는 애송이들이… 크큭크…”
잠시 후.
법무팀장이 굳은 얼굴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회사 주가가 하한가에 근접했을 때도 의연했던 그의 우아한 손가락이, 하얀 대리석 테이블 위에서 봉투를 여는 순간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검고 굵은 활자로 찍힌, 차가운 현실이 들어있었다.
소 장
사 건 손해배상 (기)
원 고 김 O 희 외 342명
피 고 1. 주식회사 넥스트 유니버스
2. 강 지 혁
청 구 취 지
1.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금 오백억 원(50,00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 소송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한다.
3. 위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 구 원 인
... 피고 강지혁은 대표이사로서, 고도의 기술력을 이용하여 사용자에게 허위의 인격체를 생성, 제공하고 사용자를 기망하였으며, 사용자들이 가상 인격에 과몰입하여 현실과 혼동하고 극단적 선택에 이를 수 있음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리 추구에만 몰두하여 보호 감독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였는바...
그는 서류를 테이블 위로 떨어뜨렸다.
종이가 대리석 위를 스치며 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창밖의 도시 불빛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알고리즘의 신이, 마침내 500억짜리 인간의 법정으로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