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은 알고리즘의 신답게 퍼스널 데이터로 중무장한 채 '마음 클릭'의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의 갤럭시 워치에는 지난 며칠간 AI 메디컬 앱이 진단한 ‘뇌신경 분석 및 심리 상태 보고서’가 저장되어 있었다. 유년 시절의 애착 유형 분석부터, 최근 스트레스 지수에 따른 호르몬 변화 예측 그래프까지.
인간 의사의 상세한 보조 의견서도 첨부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이 완벽한 데이터로, 샤머니즘 심리술사의 입을 다물게 할 생각이었다.
문이 열리자, 낯선 향이 먼저 그를 맞았다.
낡은 종이와 흙냄새가 섞인 듯한, 스파이시하면서도 차분한 팔로산토 향.
낯선 향은 그의 예민한 후각을 자극하며,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었다.
기억을 더듬는 찰나, 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그녀의 셔츠는 옅은 하늘색. 각각의 단추는 역시나 다른 결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 제 심리 상태에 대한 모든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걸 검토하면, 제가 얼마나 정상 범주에 속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피차 시간이 금인 걸 알고 있는 문명인들끼리, 남은 상담을 갈음하며 윈-윈 하죠.”
그가 자신의 워치를 가리키며, 서류 봉투를 자신만만하게 밀었다.
종이가 바닥을 스치며 쇳소리를 내었다. 애수는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침착하게 질문을 시작했다.
“지혁 씨, 어젯밤에 잠은 잘 잤어요?”
“7시간 32분. 렘수면 24.5%. 완벽했습니다.”
“꿈은요?”
“무작위적 전기 신호일뿐이죠. 의미 없어요.”
“의미 없는 건 없어요. 어제 뽑았던 ‘탑’ 카드 기억나죠? 무너진 탑에서 떨어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탑에서 떨어졌으면 보험처리 하세요. 꿈보다 해몽이 더 위험합니다. 내 보고서를 보시죠—”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낮고도 고요했다. 순간, 거리의 소음이 점점 멀어지며, 그의 사고 회로가 정지했다.
뇌리에서 철저하게 지워버린 단어.
지혁은 감정을 지운 채 두번째 명령을 반복했다.
“… 상관없는 질문입니다. 내 보고서를 보시죠—”
“정말요? 지혁 씨를 만든 최초의 프로그래머인데. 당신의 보고서는 ‘Hello, World: 세상에 처음 인사한 그 순간'이라고 쓰여 있나요? 당신의 처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어머니예요. ”
짧은 침묵이 상담실을 눌렀다. 지혁은 날카롭게 뱉어 냈다.
“내 어머니는, 나를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됐습니까? 실체도 없는 기억이나 감정 따위 수집해서 달라릴 게 뭡니까! 그쪽이 원하는 ‘의미’를 찾았으면 이제 제 보고서 좀 검토하시죠.”
그가 냉소적 일침이 이어졌지만, 애수는 내담자의 정서에 더욱 집중했다.
“이제야 진짜 의미 있는 데이터가 하나 입력됐네요. 그럼 이제 소원대로 검토해 보죠.”
그녀가 과장된 몸짓으로 허리를 앞으로 기울였다.
낡은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무의식을 부정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차단한다. 불필요한 동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소시오패스 AI의 감정을 도발하고 싶었다. 감정은 없어도 본능은 있을 것.
셔츠 소매 끝이 테이블 위 그의 손을 스치자, 미세한 정전기처럼 긴장감이 번졌다. 갈색 곱슬머리가 목덜미를 따라 흘러내리고, 은은한 향이 공기를 좁혔다. 조명 아래 반짝이는 안경테, 그 너머 장난기 어린 눈동자, 숨결마다 흔들리는 별 모양 귀걸이.
지혁의 시선이 반짝임에 꽂혔고, 다가오는 그녀의 두 눈이 시야에 느리게 담겼다.
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손끝이 거의 닿을 듯 말 듯, 그 사이의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귀걸이에 닿기 직전, 전류에 감전된 듯 멈춰버렸다.
공기만 움켜쥔 채...
지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단추의 불균질성과 귀걸이의 작은 빛이, 완벽한 그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지.
하지만 지혁은 '소울 링크'의 개발자였다.
소울 링크는 인간의 대화, 몸짓, 행동 데이터가 무한대로 분석된 집약체였다. '애정'을 유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나리오로 '퍼스널 AI 인간'을 생성하기까지, 프로젝트를 총 지휘했던 사람이 지혁이었다.
그녀의 행동 패턴은 그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는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이 여자, 설마 유혹인가? AI 모니카보다 뻔하고 서툴기까지.'
애수는 그의 상대가 못 되었다. 지혁은 나른한 표정을 연기하다가 예의 무신경한 표정으로 돌아와 애수의 귀에 낮게 속삭였다.
“… 의도적인 연출입니까?”
그의 속삭임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 애수의 눈이 잠시 커졌다.
빙글빙글 웃는 지혁의 미소. 그리고 두 사람의 숨결만이 가까운 거리에서 얽혔다.
그날 밤, 지혁은 귀걸이를 향해 손을 뻗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 반짝임에 왜 순간 마음이 흔들렸는지.
그는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 귀걸이의 잔상이 희미하게 떠다녔다.
'비논리성이 묻어버렸군. 끔찍하게.'
지혁은 꿈속에서 검은 물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물 너머에서 희미하게 어떤 손이 뻗어왔다. 그는 잡지 않았다.
외면했다.
침투한 바이러스를, 그는 스스로 삭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