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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알고리즘 09 : 데이터 빌런의 탄생

by 여기반짝


유기견 보호소의 공기는 흙먼지와 마른 사료, 동물의 체취가 뒤섞여 묵직했다.

그 안에, 끓어오르는 생명력 같은 것이 희미하게 떠다녔다. 봉사자들의 으쌰으쌰 하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어우러져 공간을 채웠다.

애수는 익숙하게 작업복을 입은 채 소매를 걷어 붙이고 사료 포대를 나르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언제나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며, 따뜻했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익숙한 소음들 사이로 낯선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잠시 후, 보호소 입구에 검은 세단이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렸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트레이닝복의 주인공은 어김없이 봉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애수는 지난 상담에서의 해프닝과 그의 능글맞은 웃음을 뇌리에서 떨치며 그를 외면했다. 내담자를 대상으로 도발이라니. 그건 애수의 사전에 없는 즉흥극이었다.

흙 묻은 장갑을 낀 손으로 괜히 콧잔등을 문질렀다.


'여기서도 마주쳐야 하다니, 아… 민망해라.'


그는 애수와 형식적 인사만 나눈 채, 곧장 견사 청소 도구를 집어 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익숙해진 손놀림이었으나, 그의 표정에는 참을성 없는 짜증이 묻어났다.


“거기 삽질 담당. 지금 동선, 알고리즘 최악입니다. 당신 삽질의 연산 속도가 우리 회사 서버였으면 벌써 다운됐어요.”

“거기 물청소! 수압, 각도, 분사량. 변수 통제 전혀 안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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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후.

그는 끊임없이 ‘효율’과 ‘데이터’, ‘낭비’를 내뱉는 참견 빌런이 되어 있었다. 최고의 셀럽인 '판교 루키'를 선망의 시선으로 보았다가, 순식간에 불량 부품 취급 당한 봉사자들은 지혁을 슬금슬금 피했다.


갈등이 터진 것은 오후의 입양 상담 시간이었다.

한 중년 여성이 수줍게 웃으며 보호소의 터줏대감, ‘마음이’의 견사 앞에 서 있었다.

마음이는 사람에게 여러 번 상처받고 버려져,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개였다.


“우리 마음이…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그렇죠?”


애수가 마음이의 푸석한 흰 털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자, 봉사자 중 한 명이 수기로 작성된 낡은 관리 차트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네! 어제는 거의 안 먹었는데, 오늘은 아침 사료도 다 비웠어요. 어… 근데 지난주 예방접종 날짜가… 가만있자…”


봉사자가 차트의 빼곡한 글씨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순간, 지혁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섰다.


“아직도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관리합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는 들고 있던 삽을 바닥에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허리춤에서 방수팩에 담긴 폴더블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이 개의 모든 기록, 지금 당장 스캔해서 이쪽으로 전송해요. 거기 당신. 입양 희망자 신상 정보, 이 양식에 맞춰 즉시 입력합니다. 5분 주지. 5분 안에 이 개의 모든 상태 데이터와 입양 희망자의 적합도 분석을 끝낼 수 있으니까.”


그의 명령조에 봉사자들의 얼굴이 다시 한 번 굳었다. 유명인인 지혁을 알고 있는 봉사자들은 '사회봉사 왔다더니, 성격이 영 아닌가 봐.' 수근대는 소리도 들렸다.


“지혁 씨. 여긴 회사가 아니에요. 다들 좋은 마음으로…”

“좋은 마음?”


지혁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태블릿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 좋은 마음이 저 개의 피부병을 낫게 합니까? 그 ‘온기’라는 거, 정량화는 가능합니까? 당신들의 그 감정놀음, 좋은 사람 행세하며 SNS 인증이나 하러 온 이상으로는 안 보이는데? 감정이 데이터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날로그 시대에나 통하던 미신일 뿐입니다.”

"이봐요, 사람의 마음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움직여요. 거기서 감정을 느끼고요! 감정 없는 숫자는 그냥 껍데기일 뿐이에요."

"감정은 그 껍데기조차 없지 않습니까? 숫자는 그나마 껍데기라도 남아서 분석이 되는 겁니다. 감정은 그냥 사라져 버려요. 이렇게 비논리적으로 경영하니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 겁니다. 여기 저 얼룩 똥덩어리도, 저 좁쌀만한 흰 똥덩어리도 한 달째 비실거리지 않습니까?



애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팔을 낚아챘다.

트레이닝복 안의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를 아무도 없는 보호소 뒤편으로 끌고 갔다. 낡은 창고 옆, 후미진 공간이었다.


“여긴 효율을 따지는 공장이 아니에요. 상처 입은 생명들이 온기를 나누며 마음을 치유하는 곳이라고요. 당신의 데이터가, 버려진 아이들한테 무슨 위로가 되는데요?”


“위로? 웃기는군.”


지혁은 그녀의 격앙된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시선에 비아냥거림이 가득했다.


“이 표정 말이야. 이런 표정 연기도 날 위한 위로였습니까?”


그의 말에 애수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지혁은 보란 듯이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상담실에서의 그녀처럼 낮게 속삭였다.


"내 AI 모니카보다도 영 서툴러서 말이야. 후훗.”


그는 더 이상 애수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차갑게 돌아섰다.

애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도발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그의 모습에, 분함과 동시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 내가 잠시 미쳤었지. 타인의 감정을 데이터 쪼가리로만 보는, 감정이 거세된 소시오패스! 으으!’


지혁은 남은 봉사 시간 내내 태블릿에만 몰두했다.

그가 화면 위에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보호소의 공기는 누구도 먼저 말을 걸 수 없는 어색함으로 가라앉았다. ‘황태자가 회사 이미지 메이킹하려고 납시었나 보다’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가 막 보호소를 떠나려 할 때였다. 보호소 소장이 난처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왔다. 흙 묻은 손을 바지에 여러 번 문지르며 손을 비볐다.


“저… 강 선생님. 혹시… 아까 만들던 그거… 개들 입양 기록 데이터, 그거 좀 완성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저희가 관리가 영 엉망이라, 약 먹이는 날짜를 착각할 때도 있고 그래서….”


지혁은 대답 대신, 소장의 어깨너머로 애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멀찍이 서서, 이쪽을 외면하려 애쓰는 얼굴로 뜬 눈을 하고 있었다. 지혁의 입가에, 차갑고도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애수는 그의 시선의 대화를 읽었다.


‘거봐. 결국 당신들의 그 비효율적인 온기는, 내 데이터 앞에 무릎 꿇게 될 테니.’


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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