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poem.휴*
부디 아름답게 죽여 줘
베란다에 깔린 빛은 내게 위안을 주려 하는데
나는 빈 화분,
내게서 말라죽은 것들이 너무 많다.
유난히 붉었던 그 꽃은, 내게
이별을 위한 꽃말만 던져준 뒤 그 밤에 가버렸고
빛이 가쁜 숨을 쉴 무렵, 문자 하나가 내 머리를 후려친다.
헤겔! 당신이?
내가 보고 싶다고?
지금 나는 삐걱대는 빛을 타고 헤겔에게로 가고 있다.
가야 할 목적은 그가 정해 주기로 했다면 너무 일방적이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의 상태로, 미친 듯 날아갈 거야.
아. 찬란해지던 공허에서 빛의 시동이 꺼졌다.
내가 살던 별은 날마다 같은 색깔로만 우는
새 한 마리가 산다
그리고 고장 난 공중전화 부스에 줄지어 기다리다
죽어가는 내 과거들뿐,
게다가 그 별은
체념에 길들여진 한 줄 문장이었다.
제기랄, 잘된 일이야.
도착하지도 못하고 늘 혼미하게 내 길은 사라진다.
그 지점에 무덤 하나가 있다면
안경을 걸친 못생긴 미라가 발견될 일이지만
하나도 낯설지 않아.
딩동!
소독하는 날이라며 초인종을 계속 누르고 서있다.
그래 나는 바퀴벌레다.
나는 무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돌아다니는 해충!
부디 나를 아름답게 죽여 줘.
글&사진. 김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