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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Jul 06. 2023

국룰과 변칙사이

7/1 식사일기

천하제일 바둑대회,는 아니고 전북바둑협회에서 개최한 어린이 바둑 승급 심사대회. 바둑에 입문한지 1년.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뽐내려 네가 긴장 속에 착수하고 있을 무렵, 나는 바로 옆 맛집에서 갓 나온 빵에 손을 얹고 있었다.

앞으로 많은 날들 그러하겠지. 너는 시험을 보고, 나는 먹으면서 기다리고. 무슨 인생 다 산 것처럼 말한다고 의아해하시겠지만, 애들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이미 경쟁을 상당 부분 마친 셈이다. 난 아들 나이로 돌아가라면 무섭다. 진절머리 난다. 인생 2회차로 아들 나이를 다시 산다면 난 아마 만사 귀찮아하다가 낙오될 거다.

아, 귀찮아서라기 보다 참지 못해 성질내다가 낙오될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고 하니, 이런 이유다. 김치 필라프 위에 마요네즈가 뿌려져서 나오고, 닭고기 샐러드 위에 발사믹 소스가 뿌려져서 나오는 것은 예전엔 국룰이었다. 당연히 이 소스까지 뿌려져야 요리의 완성이라 생각했겠지. 모를 때는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나 음식이 달달한 거 싫어한다고! 심지어 '국룰'이란 이름으로 강요되는 온갖 획일성과 눈치도, 약속이나 한 듯 단일한 청소년들의 무채색 옷들도 다 싫어. 그러면서 나도 오늘 검은 옷 입었네잉.

혁이는 이세돌 아저씨처럼 국룰을 넘어 변칙을 뒀으면 좋겠다. 바둑에서 그것만 배워도 남는 장사일 거야. 하지만 매사 변칙만 추구할 필요는 없을 게야. 애비도 이렇게 표리부동하단다. 봐라. 소스 어쩌구 투덜대면서도 국룰에 따라 나온 밥그릇과  샐러드 그릇을 맛있게 싹싹 비우고 입맛을 다시다가 디저트로 마련해 주신 수박까지 맛있게 먹느라 대국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잖니.

무리 지어 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황급히 뛰어나갔다. 끝까지 두고 승패를 가르는 시합이 아니라 두는 실력을 어른들이 보고 평가한 뒤 중단하고 자리를 바꾸어 가며 두는 방식이었단다. 마주한 형님 누님들께 인사 잘 했는지만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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