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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Dec 03. 2016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올라갔던 곳에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생도 게임과 같다면

 제가 처음 컴퓨터를 접한 나이는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이십여 년 전, 꼬맹이 어린 일곱 살 때였습니다. 지금도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지만, 당시 아버지는 없는 살림에도 한 달 월급에 육박하는 고가의 컴퓨터를 사 오셨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문과를 갔네요.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래서인지 어린 나이에도 저는 컴퓨터 게임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특히나 온라인 게임이 득세를 하기 전인 학창 시절에는,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장르를 즐겨했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역할을 맡아 스토리를 차곡차곡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둘, 어려운 일들을 많이도 겪었습니다. 단순히 어떤 시험 따위들을 넘어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같은 것들은 저를 참 많이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철없이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도 게임과 같다면 참 좋을 텐데.




 10년 전에 꽤나 인기였던 일본 드라마 ‘노부타를 프로듀스’에는 그런 주인공이 나옵니다. 인생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가 그 게임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고등학생 말이죠. 그러나 그 주인공이 유지하고 있던 자신만의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주인공은 인생은 절대 게임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게임처럼 ‘저장’도 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삶을 반복하는 ‘리셋’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취업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지금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참 많은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부모님 눈치, 돈에 대한 압박, 친구들에 대한 박탈감, 실패에 대한 좌절 등등. 취업준비생들을 괴롭히는 것들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제게도 그 질문을 한다면 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취업은 게임과는 달리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든, 면접에서 떨어졌든,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았든 간에, 일단 탈락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가 올라간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능 따위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친구들의 좌절감이 얼마나 큰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코앞에서 합격의 자격을 놓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기 때문이죠. 단 한 곳의 최종 합격을 위해서 짧게는 3번의 과정, 길게는 6번이 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이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사실입니다. 특히나 모든 기업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다음 공채시즌을 다시 도전해야 한다면, 취업에 대한 자신감과 열의가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채에 한 번씩 미끄러질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저를 매우 크게 짓눌렀습니다. 이미 공채 시즌을 네 번이나 거쳐 온 저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너무 두렵고 힘들었습니다. 똑같은 기업에 다시 똑같이 서류를 쓰고, 다시 필기 공부를 하고, 다시 면접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이미 필기시험을 통과했던 기업도, 면접을 통과했던 기업도, 인턴까지 했던 기업도, 결국 시작점은 똑같았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붙어본 적이 없는 기업에서 떨어질 때의 좌절감과, 이미 붙었던 기업에서 다시 떨어지는 좌절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수 없이 찍혀서 결국 흉터만 잔뜩 남았습니다. 


 그러나 저도, 우리도 결국은 했습니다. 해야 했습니다. 결국엔 취업을 해야 하니까요. 크게 변한 것 없는 나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소개서를 쓰고, 그때와는 다른 면접 전략을 짜고, 부족했던 부분을 굳이 찾아내 보완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취업이라는 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은 어느새 또 흐르고, 많은 기업들의 최종 결과가 하나 둘 발표가 나기 시작할 겁니다. 힘들었던 긴 시간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은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좌절과 압박감이 얼마나 큰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로도, 그 좌절과 압박에 대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채 시즌이 끝나는 여름과 겨울에 항상 멀리 여행을 갔습니다. 혼자 여행을 떠나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아픔을 털고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다시 시작’이 아니라, 그냥 ‘시작’이라고 스스로에게 주입시켰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는 되지 않겠지만, 무너지지 말아요.

 했던 것을 또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지 말고, 새로 시작합시다. 작은 말장난 같지만, 그렇게라도 위로를 하고 싶습니다. 일단 바람 좀 쐬고 말이죠.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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