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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들

by 김윤철

컴 앞에 앉았으니 주방의 아내가 폰을 들고 왔다. 바쁘니 외손녀의 전화를 받아달란다.

외손녀는 LA 소재 초등학교 5학년이다.

"할아버지!" 화상 통화라 입은 보이는데 소리가 너무 작다.

"잠깐만..." 얼른 보청기를 귀에 꽂았다.

"할아버지 뭐야?" 우리말을 곧잘 하는 손녀지만 보청기란 말을 알 리가 없다.

미국 나들이 몇 번한 값을 해야 한다.

"음... 헬프 히어링. 두유 언드스텐?" 답이 온다. "예스!"

TV에서 들은 말이 있다. "영어는 기세다." 손녀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제 엄마한테 패스.


그 5학년 손녀의 돌잔치 직후니까 벌써 십 년도 전의 이야기다.

출산까지 하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의 어려움을 생각해 아내와 함께 미국행.

사실은 미국에서 내가 딸에게 도움이 될 일은 별로 없다.

백수인 내가 혼자 있는 게 안쓰러워 아내가 나도 데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답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미국은 우리와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우리는 미국의 원조 물자에 의지한 세대다.

집 앞에 미군 부대가 주둔해 있었으며 학교에서 옥수수 죽으로 점심을 해결하던 세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다.


소위 전후 세대. 요즘 TV에 나오는 선전.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에티오피아에 우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전후의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미국은 꿈의 나라였다. 그냥 동화 속의 나라.

그때 유행하던 우스개 소리.

"미국 놈들은 102층 집에서 의자에 앉아 똥 싼다, "


6.25 동란. 미군과 함께 들어온 미국 문화들. 당시의 미국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선진국이었다.

그 문물과 함께 들어온 미국의 문화들. 그것들이 우리 생활에 너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를 쉽게 정의하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문화다.

선진국의 편리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까지 없애가며 쓸데없는 것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자와 함께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며 없어진 우리말들. 한 때는 우리 고유어 찾기 운동도 있었다.

"온, 즈믄 , 가람, 뫼, 시나브로 등등"




뗄 수 없는 관계지만 너무나 멀리 있고 다른 게 너무 많은 나라. 미국

우리도 지금은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다. 백범 일지에 나오는 백범의 소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문화가 높은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지금은 21세기. 김구 선생의 그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노벨상 수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빌보드 챠트 장기 진입하는 K팝들, K푸드 등등의 K컬쳐.

백범께서도 광복 백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우리가 이처럼 발전 하리란 예상은 못 하셨을 것 같다.

한 마디로 문화 강국인 우리가 남의 문물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쇄국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들만!


누가 뭐래도 아직은 미국이 선진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고르기 위해서라도 미국 문화의 이해는 필요 불가결한 일이라 생각한다.


컴을 뒤지니 다행히 네 번의 미국살이 어설픈 기록이 남아있다.

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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