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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Oct 05. 2024

써클K의 추억

오래전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었다.
한 번은 충정로에서, 한 번은 건대역 근처에서.
둘 다 써클케이였다. 전라도사투리로 쓰클케이라 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순 한국토종 써클케이..
주황색 로고.. 동그라미 안에 K자가 들어있었던, 참으로 정직하고 단순한 로고였다.
1995년에 충정로 지점에서 6개월여를, 1997년에 건대 앞에서 3개월여를 했었다.

건대 앞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될 즈음,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알바를 했다.
점장과 부점장 이하.. 야간 아르바이트하는 남자들은 얼굴을 잘 못 봤다. 난 오후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했다. 오전타임을 맡았던 여자는 나보다 서너 살 아래쯤 보이는 귀여운 여대생이었다. 갈색머리가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고 글래머에 얼굴은 귀염상이었던.. 성격까지 서글서글하니 편안함을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면 인수인계하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좋은가? 사람이 좋은가? 나는 일이 나면 부리나케 일터를 떠야 심신이 자유스러운데 이 아이는 집에 가면 재미가 없나?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새도 없이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부점장 하고 사귀는 사이였던 것이었다.
부점장은 나보다 서너 살 많았는데 이 사람이 나보다 서너 살 어린 그녀와 사귀는 거였다. 그땐 그렇게 나이차가 많다는 것이 신기하기보다 도둑놈처럼 느껴졌다.  나 내 상관할 바는 아니지.

부점장은 눈이 초롱초롱했다.
안경을 썼는데도 안 쓴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새까만 머리 새까만 눈동자에 날다람쥐처럼 움직이는 스타일이었는데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갔더니 나한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땐 편의점에서 비디오테이프도 대여해 줘서 테이프를 안 갖다 주는 이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일을 해야 했다.
테이프도 안 갖다 주고 전화도 안 받는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전화번호가 틀린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표기하면서 나는 '결본'이라 썼는데 그걸 본 부점장이  저.. 결번 아닌가요? 그러는 것이었다.
아~~~  그렇군요. 바로 인정하고 결본을 결번이라고 싹 고쳤다.
그때까지 결본인 줄 알았다.

점장은 점장답게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이 사람도 노는 걸 워낙 좋아해서 모든 일을 알바와 부점장에게 일임하고 당구 치러 나가기 일쑤였다.
고향이 완도라고 강조에 강조를 했다.
늘 꿈꾸듯이 그곳을 묘사했다.  꼭 한번 완도 가보라고 그 말을 참 여러 번을 했다.
많이 아름다운 곳인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듣곤 했다.
점장이 부재중에 찾는 전화가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누구시라고 전해드릴까요?를 깜박하는 바람에 핀잔을 먹곤 했다.  
왜 그걸 자꾸 잊어버렸을까?
그걸 가지고 그렇게 얼굴이 상기될 만큼 언짢아했다.  매일 나가 놀면서.

가끔 오전 타임 그녀의 친구들이 놀러 오곤 했다.
여자애도 있었고 남자애도 있었다. 90년대 전형의 패션과 머리모양이 눈에 선하다. 쫄티에 통 넓은 바지 주황색 머리..
놀러 오면 편의점 창고에서 노닥거렸는데 부점장의 백이 좋긴 좋아서 참으로 나이브하고 프리하게 긴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 느낌 그 분위기가  나도 싫진 않았다.
어느 날은 창고에서 부르스타에 짜파게티를 삼삼오오 쭈그리고 앉아서 끓여 먹고 있었는데  볼일이 있어 들어갔더니 나무젓가락으로 깨작깨작거리면서 같이 드실래요? 그러는 거였다.
짜파게티는 물을 끓이다가 좀 버리고 면과 수프를 넣고 국물이 좀 여유가 있게 졸여야 하는데 그들은 도대체 그걸 어찌 끓였는지 면은 다 불어 냄비에 붙어 있고 수프가루는 뭉쳐서 가루가 다 풀리지도 않은, 정말 (더럽게) 맛없어 보이는 걸 억지로 먹고들 있었다.
괜찮아요.
나는 웃으며 볼일을 보고 얼른 캐셔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할 얘기는 충정로 써클K다.
시스템이 지금은 편의점주가 곧 사장인 느낌인데 (맞나?) 1995년 당시의 써클K는 본사에서 점장 부지점장을 파견하는 것 같았다. 모든 써클K가 본사소속으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다 보니 써클K에서만 알바를 했다.
충정로 경기대로 올라가는 비탈길 옆 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곳이었다. 길건너에 피어리스빌딩이 있었는데 일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면 그 먼 곳까지 육교로 다녀왔다. 쾌적하고 오는 사람 안 막는 자애로운 뒷간을 자랑하는 빌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써클K 전용 뒷간이 있었단다. 그런데 부지점장  그 인간은 왜 내가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하면 얘기를 안 해줬을까? 뒤쪽으로 안 가고 앞문 열고 육교 건너는 거 몰랐을까?


누나 어디 가요?
아르바이트하러.
아, 쓰클케이요?
아니. 써클케이.
광주에서 올라온 후배는 사투리 억양 탓에 쓰클케이라고 했는데 알면서도 정정해 줬다. 자칫 잘못 발음하면 쓰글케이가 될 수도 있을 써클케이.. 동그라미 안에 대문자 K가 박혀 있던 주황색 로고의 순 한국산? 편의점. 지금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찾아보니 국내보다 동남아 쪽에 지점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충정로지점에서 처음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나와 같이 처음으로 발령받아 온 점장님이 있었다.
키는 멀거니 큰데 등은 약간 구부정하고 안경을 써서 학구적이면서도 신경질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일을 꼼꼼히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 관망하면서 예리하기도 한, 편의점 안쪽 작은 창고이자 쉼터같은 사무실에 앉아서 cctv로 알바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100원짜리 사탕이나 초콜릿을 슬쩍하면  퇴근하면서 뭐 하나 사주며 팔뚝을 꼬집어서 눈치채게 하던 그...


어느 날 라디오를 듣다가 어느 사연을 접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아파서 결근한다는 연락을 받은 사연자가 17시간째 근무 중이라면서 나 좀 살려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날이 궂으니 차가 막히겠지. 차가 막혀서, 혹은 날궂이로 몸도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기타 등등으로 그 아르바이트생은 땡땡이를 치고 싶었을지도..
사연을 듣고 오래전 써클K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때가 생각났다.
집은 저~~ 쪽 강북 끄트머리였는데 일하던 곳은 서대문 피어리스 건물 건너편 충정로..
어느 주말, 토요일에 집에 있다가 오후 알바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날따라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1시간이면 갈 곳을 2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헐레벌떡 달려가니 점장님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인계하고 쪽문 사무실로 들어가셨다.
써클K 본사에 있다가 좌천되어  온 그 점장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참 입바른 소리를 잘할 것 같은 필이 팍팍 느껴지던, 존 레논을 닮은 점장.. 혼날 줄 알았는데 차가 무진장 막혔던 그 사정을 꿰뚫었는지 어쩠는지 정말 한마디 생색도 없었다. 무사히 남은 시간 동안 알바를  수 있었다.
지금은 어찌 살고 있을까?
꼬장꼬장한 아재로 늙어가고 있을까? 속내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충정로 쓰클케이(써클K)에는 외국인들이 자주 왔었다. 번화가라 그랬나?
늘 같은 시간 같은 패턴으로 오는 외국인이 있었다.
밤색의 약간 구불거리는 짧은 머리에 190은 될 것 같은 키에 서양인 특유의 눈동자를(색깔은 자세히 확인 못함)지닌 사람이었다. 근처에 모델학원이 있나? 어학원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 때마다 뭘 듣는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계산대 바로 앞쪽 매대에 있는 트윅스를 샀다.
 트윅스만 샀다.
어느 날 똑같은 패턴(같은 발자국 개수, 이어폰 끼고 약간 고개를 까딱거리며)으로 매대 앞에 도달했는데 흠칫 멈춰 섰다. (그게 왜 그렇게 웃겼을까 )
트윅스가 없었던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옆에 있던 스니커즈를 집어 들었다.
웃겼지만 안 웃었는데 내 얼굴에 드러났는지
그 사람도 약간 웃으며 계산을 했다.
그리고는 같은 발자국소리를 내며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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