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표하기 딱 좋은 나이, 서른 살 입주민으로서의 기록
동대표하기 딱 좋은 나이, 서른 살 입주민으로서의 기록
회의는 길어지고 있었다.
관리소의 잘못은 분명했고, 나 역시 그 점은 지적했다. 그러나 소장을 향한 거친 말과 고함들은 소모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주저하다가 참다못해 말을 보탰다.
잘못은 따질 수 있지만, 사람을 향한 인격적인 모욕은 삼가자고.
그 순간, 한 중년 동대표 남성이 고개를 허공으로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정확한 끝맺음은 흐릿했지만, 기운은 충분히 또렷했다. 직접 던진 말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정확히 박혔다.
멋쩍은 웃음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웃음은 커녕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어린 것도 사실이었고, 여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건 단순한 사실이 아니었다.
감히 네가 무슨 동대표를 하느냐는 시선, 나이라는 권위와 성별의 벽이 합쳐진 무게였다.
동대표라는 직함은 밖에서 보면 단순한 권력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완장 차는 것이 취미인 사람들이 쉽게 발을 들여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경험해 보니 아파트 정치는 깊이 알면 알수록 정글 같았고, 분명한 한 사회였다.
같은 주차 규정 하나를 두고도 다양한 주민들은 서로 다른 목소리와 불만을 쏟아냈다. 누구는 자기 구역을 주장했고, 누구는 더 많은 공간을 요구했다. 생활 규칙 하나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고, 관리소장의 업무태도에 따라 단지 내 총체적 분위기가 뒤집히기도 했다.
그 한가운데에 동대표회의, 그리고 동대표인 내가 있었다.
가장 어린 축에 속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처음 임기를 시작할 때 내 목소리는 자주 가볍게 취급되었다. -엄연히 한 동의 대표를 맡고 있고, 우리 동의 투표율이 가장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민원인들의 엄한 분노가 나를 향하기도 했고, 임신과 출산 시기에는 더욱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의 나는 싸우는 대신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버티는 쪽을 선택할 정도로 버거웠다.
그럼에도 나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떠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집, 내가 사는 동네, 내 아이가 자라날 공간이 그 자리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흔들렸으나 버텼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웠다.
정치란 멀리 있는 국회의사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거창한 존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주차 규정을 만들고, 불만을 조율하고, 단지 내 입주민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는 주민들 열의 속에 있다.
이 책은 그 날 그 작은 ‘혼잣말‘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비아냥은 이제 나의 훈장이 되었다.
나는 그 말에 응답하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