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회 속에서 하루를 버텨낸 아이들에게
어린이집 학부모 상담에서 원장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어머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은 아니에요. 아무리 선생님이 예뻐해 주고 잘 대해줘도, 선생님은 엄마나 아빠처럼 편안한 사람이 아니에요. 어린이집 하원 후에 아이들이 유독 짜증을 내거나 말을 더 안 듣는다면, 그건 드디어 자신이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과 있기 때문에 마음껏 감정을 내뿜는 거예요. 우리도 학교 갔다 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퇴근하면 아무도 나한테 말 안 걸었으면 좋겠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하원 후에 나는 늘 아이에게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오늘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는지 묻곤 했다. 키즈노트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무척 즐거웠겠다고만 생각했지,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동시에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이제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 시기라, 키즈노트 속 웃음기 가득한 사진 뒤에 있을 아이들의 ‘작은 사회’를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 안에서 이 작은 아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 따라야 할 순서, 그리고 엄마 아빠와 떨어져 혼자 감당해야 했던 불안한 감정들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어렴풋이 나의 유치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의 기억 속에는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더 많았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 지내며, 나라의 수도를 외우고 공룡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다정하기보다는 조금 무서웠다.
지금 나의 아이들은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조금 일찍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현실적으로 어린이집을 당장 그만두고 가정보육으로 전환할 수는 없지만, 집에서는 이 아이들이 ‘그냥 편안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껏 투정 부리고, 눌려 있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이해해 줘야겠다.
선생님이 엄마가 아니듯, 엄마도 선생님이 아니다.
엄마는 엄마여야 하고, 집은 집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