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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용진 Nov 12. 2024

건강한 삶

가수 임종환 님을 기억하며


나는 어렸을 때 가요에 대한 취향이 또래와는 조금 달랐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던 것과 달리, 나는 나만의 음악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특히 6학년이었던 1994년, 그 해의 가요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여름의 음악들을 사랑했다. 당시 레게 스타일의 음악이 유행했는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그냥 걸었어'를 불렀던 임종환 님이었다.


임종환 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친구들은 내가 임종환 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대화가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미술 선생님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 선생님들은 학교 근처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 미술 선생님도 동네에서 학교로 출근하시던 분이었다. 어느 날 우리집 마당에 있는 선인장 화분을 보고 관심을 가지시며 자연스럽게 우리 엄마와 친해지셨다.


그렇게 친해진 미술 선생님은 가수 임종환이 자신의 사촌 동생이라고 말씀하시면서(아마도 근처에 사신다고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한다면 싸인을 받아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서울 변두리에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선생님께서 싸인을 주셨다. 작은 메모지였다. 나는 화려한 필기체로 멋지게 적힌 싸인을 기대했지만, 메모지에는 정자로 '건강한 삶 - 임종환'이라고 쓰여 있었다. 선생님께 진짜 가수 임종환이 쓴 것이 맞는지 여쭤봤고, 선생님은 맞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함께 그 싸인을 보면서 선생님이 거짓말을 하실 리 없다고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싸인을 책상에 붙여놓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다. 2001년, 소위 초고속 통신망이 깔리며 '정보화' 물결 속에서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다음 카페는 지금의 레딧과 같은 다양한 서브컬처 커뮤니티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혹시나 하며 가수 임종환 카페를 검색했다. 놀랍게도 팬카페가 실제로 존재했고, 나는 회원으로 가입했다. 가수 임종환 님도 그곳에 있을까 싶어 둘러보았는데, 정말로 활동을 하고 계셨다! 심지어 임종환 님께서 직접 레게를 주제로 소설을 카페에 올리고 계셨다.


그 해 여름에 만난 어떤 분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레게 장르가 주제가 되었는데, 그 분이 임종환 님이 여전히 레게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나도 그 팬카페의 회원이라면서 우쭐함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2010년, 나는 다음 커뮤니케이션 공채로 신입사원이 되었다. 그 해, 임종환 님이 암 투병 중에 사망하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한동안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방송국을 운영하셨고, 2008년에는 잠시 한국에서 음악 활동도 하셨다고 했다. 임종환 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초등학교 때 받은 싸인의 '건강한 삶'이라는 메시지였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 억지로 우연을 맞추기도 한다. 기억은 마치 잘못 맞춰진 퍼즐 조각처럼, 때로는 빈틈을 억지로 메우기 위해 무작위의 순간들을 끌어다 놓는다. 임종환 님에 대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내 기억의 빈틈을 채우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94년 그 여름의 거리를 흐르던 레게 음악, 대학 시절에 다시 마주친 반가움, 그리고 40대에 들어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임종환 님의 인터뷰 소식은 지금도 마치 좋은 기억으로 사진처럼 나에게 남아 있다.



"밴드 음악이 참 좋아요. 그래서 밴드를 운영할 정도의 자금이 생기면 나중에는 '레게 임종환' 밴드를 만들 생각이에요. 공연을 하러 다니며 팬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싶어요." - 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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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뉴스레터에 작성한 글을 옮겼습니다.

https://maily.so/7ish/o/notes/w6ovl2ypz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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