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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마음에 들어

by Lucie

나는 잘난 체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진짜 내 모습보다 더 나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특별히 거짓말을 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오는 말은 실제보다 허풍이 많았다. 잘난 체를 하는 마음은 측은하다. 스스로가 주변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꼈던 거 아닐까. 거기에 맞추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진짜보다는 좀 더 해야 해. 더 잘하는 것처럼 보여야 해. 나는 부족하니까.


원하는 대학은 글짓기를 해서 갔다. 그해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영어로 된 페미니즘 관련 글을 해석해서 적고, 거기에 대한 주제로 작문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탐탁지 않은 수능점수 때문에 탈락을 우려했으나 수시 합격 점수가 상위권이라서 수능 최저등급을 적용받지 않는 케이스로 합격을 했다. 합격의 기쁨과 함께 대학 가서 꼴등 하는 거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라 글짓기 실력에 비해 실제로는 합격한 다른 사람들보다 모자라니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장학금도 받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앉아서 공부해야 하는 류의 일에 도전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명확하게 결론 내린 건 아니지만 막연히 나는 공부를 못한다고 스스로 여겼던 듯하다. 사기업에 취직하는 미래만을 그렸고, 고시는 당연히 내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회계사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나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법이 싫었다. 학교 다닐 때도 들었던 모든 과목 중에 상법이 가장 와닿지 않았다. 그걸 내가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딱딱한 문장을 보면서 그게 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고 당최 한국말인데 무슨 말인지 해석도 잘 안되었다. 법대를 가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법과 규정이 내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롭다는 스타트업을 하면서 시작됐다. 우리 회사가 왜 창업 기업이 안 된다는 거지? 세상의 룰은 생각보다 무척 엄밀했다. 그전에는 회계팀과 법무팀 같은 전문 부서가 있는 환경에서 일했기 때문에 나는 내 분야만 할 줄 알면 되었지만, 스타트업에서는 두루두루 알아야 했다. 게다가 대기업 위주의 산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의 정부 의존도가 매우 높아서 법이나 행정규정들과 친해지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중소기업법을 좀 보려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작년에는 경영지도사 시험을 보았고 올해는 공인노무사 시험을 보게 되었다. 일 년 내내 행정쟁송과 노동 관련 판례들을 들여다보면서 세상의 많은 분쟁을 보았다. 특히나 노동 관련 판례들은 노동자로 살아온 나와도 가까운 일들이 많았다. 첫 회사 다닐 때 모회사인 sk텔레콤으로 파견 간 선배들이 자기들은 파견 왔다고 사원증으로 안 열리는 문이 많아서 서럽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판례 중에 sk플래닛에서 텔레콤으로 파견 간 근로자가 자기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달라는 소송을 한 경우도 있어서, 와 결국 누가 이런 소송을 했구나, 하면서 흥미롭게 보기도 했다. 어떤 때는 노동 판례가 너무 많아서 이런 것까지 외워야 하나 넘어가고 싶다가도,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파기 환송한 판례라는 걸 알고 해고된 분들이 대법원 승소까지 했는데 다시 고등법원에서 패소하는 일을 겪고 얼마나 좌절했을까, 그렇게 6년이나 걸려서 승소한 판례인데 소중하게 생각하고 외워야지.. 그런 생각으로 외운 적도 있었다.


2025년 8월은 내 인생에 가장 공부를 열심히 한 한 달이라 이렇게 브런치에 박제를 해본다. (물론 시험 탈락하면 내년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ㅠ) 너무 힘들 때는 엎드려서라도 책을 봤다. 힘들수록 그냥 봤다. 책을 바라보고라도 있었다. 슈퍼 스티키 포스트잇에 안 외워지는 내용을 적어서 밥 먹을 때도 보고 양치할 때도 보고 샤워할 때도 봤다. 세종대왕님이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를 만들어주셔서 앞글자를 따서 많은 양을 외워볼 수 있었다. 영어 알파벳으로 따면 절대 못 외웠을 것이다. 누가 수험생 카페에 공인노무사 자격증은 공인두문사 자격증이라고 적어서 진심으로 빵 터졌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독서실에 박혀있는 한 달 동안 그래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핸드폰에는 대부분의 앱이 지워졌고, 시험 보기 며칠 전에는 수험생 카페랑 나의 유일한 낙인 덕질용 트위터까지 지웠다. 힘들었지만 힘들게 쌓이는 매일매일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성실했구나. 나는 생각보다 모범생이구나. 나도 이런 전문자격증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에 대한 인식이 낼모레 마흔이 되는데도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을 올여름에 알게 되었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잘난 체를 하곤 했던 시간들을 지나 있는 그대로의 내가 마음에 드는 날이 오다니 마음이 벅차다. 나는 이제 내가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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