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과 9월
시험을 앞두고 다시 정신과 약을 먹기로 했다. 작년에 경영지도사 시험을 앞두고 꿈에서 패닉이 왔는데 깨보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등 공황 전조 증세들이 느껴져서, 올해는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일찌감치 미리 먹기로 했다. 복용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신과 약을 먹으면 일상생활에도 졸리거나 무기력해지는 등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매 순간 자신과 씨름하며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약 먹기가 상당히 꺼려진다. 그래서 시험에 임박해서 먹기보다 미리 먹으면서 컨디션 조절을 해나가기로 했다. 서두른다고 두 달 정도 미리 움직였는데 요즘 평이 괜찮은 병원이 모두 그렇듯 가장 빨리 진료가능한 일정이 한 달 뒤라고 했다. 그래서 시험 한 달 전부터 약을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약을 먹은 것이 코로나 시절이어서, 긴급 상황에서 먹는 안정제도 받은지 3년 이상 지난 상태였다. 나는 3년 동안 한 번도 긴급약을 먹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약을 아예 놓고 다닐 정도로 좋아지지는 못했다. 안정제를 갖고 있으면 안심이 되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탈 때든 영화관을 갈 때든 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무슨 애착약?!) 의사 선생님은 3년이나 지났으면 폐기해야 하는 약이라며 웃으면서 버려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용량이 그 약의 절반인 0.125mg의 자나팜을 여러 개 처방해 주셨다. 하루에 복용가능한 최대 용량을 설명해 주시면서 먹어보면서 조절해 보라고 했다.
올해는 좋아하는 배우가 스크린 데뷔를 해서 무대인사를 보기 위해서 혼자서 영화관을 가야 하는 일이 있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지 10년이 넘었는데 그 이후로 혼자 영화관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혼자 밀폐된 어두운 공간을 가는 데다 배우가 좁은 공간에 갇혀서 탈출하는 씬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극장 들어가기 전에 안정제를 먹고 들어갔다. 두려운 공간에 들어가면 초반이 문제고 적응하면 괜찮아지기 때문에 한 알 먹은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한 번 먹으면 30분 정도는 효과가 지속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공황장애약과 인데놀을 같이 처방받았다. 인데놀은 심박을 낮추는데 흔히 쓰이는 약이다. 공황장애약은 마지막에도 5mg을 처방 받았는데 이번에는 5mg을 절반으로 쪼개서 주셨다. 내가 약을 조금만 먹어도 낮에 심하게 다운되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해서 선생님이 더 적은 용량을 인데놀과 함께 처방해 주신 듯하다. 그렇게 먹었더니 낮에 다운되는 느낌이 전혀 없어서 일상생활에 지장 받지 않으면서도 나는 약을 먹고 있으니까 불안 조절이 잘 될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것이 생겨서 좀 더 원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여름에는 세수할 때나 자기 전 캄캄한 방에 있을 때 답답함이 느껴졌었는데 이번에는 약을 먹어서 그런지 그런 불안증상이 없어서 공부에 집중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문제는 수면 패턴이었는데 약을 먹고 4시간 정도 지나면 잠이 깼다. 그것도 아주 또렷한 정신으로 깼다. 약은 매일 자기 전에 먹었는데 먹고 나서 1시간 정도 있으면 잠이 오고, 12시에 자면 4시쯤에 딱 깼다. 다행히 다시 자기로 마음먹으면 금방 다시 잠들 수 있어서 시험 전에는 굳이 약을 바꾸지 않고 쭉 먹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약인데 신기하다고 했다. 시험 끝나고 약을 한 달 더 먹어보니까 지금은 새벽에 다시 깨지 않는다. 아마도 그때 새벽에 깼던 건 시험 때 예민해진 탓이었던 것 같다.
9월 들어서 오래간만에 지하철을 탔는데 한동안 안 타다 타니까 확실히 지하철 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늘 물과 안정제를 챙겨서 다닌다. 그런데도 종종 현기증이 난다. 시험 후 휴식을 위해서 해외여행을 계획했는데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불안이 찾아왔다. 이륙 직전 활주로 한복판에 있는데 진지하게 지금 내려달라고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정제 한 알을 먹어봤는데 그걸로는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한 알을 더 먹었는데 커다랗고 평평한 코끼리 발이 내 심장을 꼭 눌러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벌렁거리던 심장에 급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고, 약이 듣는 느낌이 들자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는 자나팜을 한 알만 먹어도 목소리가 변한다고 해서 사람마다 약이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나는 나대는 심장이 잘 제어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부작용이 있지는 않았다. 보통 공황장애약을 먹으면 심하게 다운이 와서 일하기도 힘들었는데 이번에 복용 중인 약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전혀 없어서 오래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이번엔 일 년쯤 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오래 먹어도 괜찮은 약의 용량을 찾아서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