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일기
어른 여성에게 순수함이나 문학적 감수성을 발견할 때 ‘소녀스럽다’고 표현할 때가 있다.
내가 제목에 쓴 ‘소녀’는 그런 순수함이나 감수성을 지닌 모습 보단 어딘가 어설픈 어른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썼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한지 어느덧 5년차 나는 ‘대리’라 불린다.
그 사이 결혼도 했다.
어른으로서 마땅히 ‘기능’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어딘가 어설픈 '어른소녀'의 모습에서 졸업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어떤 어설픔일까?
내가 놓지 못하는 소녀는 어떤 모습인가?
내가 느끼는 미숙함은 관계 방식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이유들을 떠올려보면,
- 정적이나 침묵을 견디기 어려움
- 억지로 웃을 때가 많음(특히 상대가 웃으면 따라 웃음)
- 자기주장을 하기 어려움(상대의 아이디어를 따르는 편)
- 거절, 요청, 부탁하는 게 어려움
- 1:1 관계가 어색하고, 불편할 때가 많음(남편 제외)
같은 것들이다.
언제부터였는진 모르겠지만,
내 추측으로는 친구 무리에서 소외되는 게 두려웠던
중학생 사춘기 시절부터 학습된 ‘전략’이 아닐까 싶다.
이런 전략을 취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모두가 동의할 순 없겠지만 내가 지금껏 경험한 여성소셜은 암묵적인 분위기란 게 있었던 것 같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됨’
으로 그 숨겨진 질서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기분이라는 게 상당히 주관적이고, 불확실한 것들이라 예측 불가능했고 그 결과 나는 상대와 잘 지내기 위해 위에 언급한 행동들을 학습하고 사용했던 것 같다.
행동의 방향은 ‘갈등 만들지 않기’,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등 나를 상대에 맞추는 방식에 향해있었다.
그리고 이 전략은 꽤나 유용했다.
적어도 ‘안전함’ 측면에서는.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왜곡된 사고방식이다.
- 자기주장을 한다는 건 공격적 또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 정적이나 침묵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
- 나를 만나는 상대를 즐겁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 상대가 웃을 때 같이 웃어주지 않으면 상대가 민망할 수 있다.
- 내가 무언가 요청하고 부탁하면 정말 귀찮을 거다.
- 내가 거절하면 상처받을 거다.
같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왜곡된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난 지금껏,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
사람들은 날 착하고, 재밌고, 리액션 좋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적어도 나에 대한 이런 평가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마이너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난 성인이고, 직장에서도 연차는 쌓여가고, 아직 아이는 없지만 미래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엄마이자 보호자가 될 것이다.
자기 기준과 선이 명확한 존중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
눈치껏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걸 또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건 애쓰는 게 아니라 센스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관계 맺는 방식을 점검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저 착하고 좋은 사람 말고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필요할 땐 자기주장을 할 줄 알고, 불필요한 웃음은 끄덕임으로 대체할 줄 알고, 정적과 침묵도 즐길 수 있는 여유 있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관계에서는 여전히 생존 전략을 써도 되고,
어떤 관계에서는 내려놓아도 될까?
우선, 내가 내 주장을 해도, 거절을 해도, 부탁을 해도, 침묵을 해도, 불필요하게 웃지 않아도 이 관계는 나에게 안전하다는 믿음이 필요할 것 같다.
2026년엔 달라질거다.
앞으로 그 변화의 과정을 마음일기 방식으로 기록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