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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식은 날 위한 시그널

by 초록해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서면 우울한 모습을 상대방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였다. 이전에는 그 모습을 감출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을 감출 힘조차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정말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는다. 퇴근을 하고 집으러 와 샤워를 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고 나왔는데, 나온 지 5분 만에 감정이 다시 컨트롤되지 않는 내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이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우울감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일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흘러가는 스토리들, 내가 스토리를 보는 건지, 스토리가 날 보는 건지 모른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는 스토리가 있었다.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감정이 잘 통하는 법이다. 전 회사 동료였던 친구의 스토리였는데, 그 친구의 스토리 내용은 "이전에는 에너지가 고갈되어도 그 에너지를 다시 끌어올릴 힘이 있었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아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친다"는 내용이었다. 반사적으로 DM을 보냈고, 퇴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1년에 기껏 해봐야 2번 정도 통화를 하지만 마음적으로 편한 친구였기에 거리낌이 없다.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내가 나의 상태를 이야기했다.

"내가 요즘 감정 컨트롤이 안돼서 이게 맞나 싶어."

"어.... 나도 그런데.."


그 친구도 어린 나이에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데, 갑자기 이유도 모를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항상 '동료상담'이 가장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뭔가 동료상담의 살아있는 현장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힘든 감정이 조금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에너지가 식은

30대 중반의 사람들


회사에서도 내가 선배한테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선배가 나에게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내 나이 36살. 내 나이를 듣던 선배는 딱 이때가 에너지가 고갈되는 나이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웃었지만, "모든 36살이 다 그럴까?" 라는 의문에 빠졌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을 들으면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에너지를 올렸을 나지만, 그 말을 듣고 있어도 에너지가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연스레 나는 다시 회사 책상 위에 놓인 수많은 영양제와 아르기닌, 홍삼을 먹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이 모든 영양제가 나를 지지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퇴근을 하면서 나와 가장 절친한 대학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무기력해.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아."

"야. 나도 그래..."


친구는 결혼을 했고 아직 육아는 하고 있지 않은 친구였다. 내 에너지가 식은 이유가 육아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는 육아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회사에서 퍼포먼스가 좋아 어딜가나 인정을 받고 있는 친구다. 오랜 시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모두가 왜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는지 그 원인을 찾게 되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도, 회사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로 일잘러 친구도, 나도 모두 오로지 각자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 하루 중 나만을 위한 시간이 1시간도 없었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도 본인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고, 일잘러 친구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계속 일에 몰두하다 보니 오로지 본인만의 시간이 전혀 없었다. 우리 모두 결혼을 했고, 모든 연차는 가족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쓰다 보니 정작 본인을 돌보는 시간을 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 연차를 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한 연차도 아닌, 부모님을 위한 연차도 아닌, 오로지 나의 쉼을 위한 연차를 말이다. 예전에는 혼자 카페에 와서 멍 때리고 여유를 부리는 게 익숙했는데, 지금은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든다. 이 어색한 감정을 다시 익숙하게 바꾸려 노력해보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쉼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진정한 쉼. 그 쉼이 나에게, 우리에게 모두 필요했다. 각자 좀 쉬고 나서 다시 연락을 했을 때 우리에게 식었던 에너지가 다시 올라오게 되면 지금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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