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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덕중 Jul 13. 2020

질주의 역사 - 5

하자 있는 물건

5/ 하자 있는 물건




고인겸의 답변서가 김학모에게 닿기도 전에 김학모는 퇴직금 문제로 연락을 주고 받았던 인사팀 차장에게 연락을 한다. 


“자…. 제가요, 저, 거, 소송을 했고, 소장도 냈고, 아무튼 저의 요구사항은 분명합니다. 회사에서 안받겠다! 이러시면 뭐 텔레비, 시사프로그램? 이런데다가 이 모든 걸 폭로할 거라거만 알아두쇼. 나 유튜브 채널도 있어요!”


“아니....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폭로라고 할게 있긴 있어요? 그리고 회장님도 위로금도 많이 드렸잖아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김학모가 소리친다. 잠시 침묵이 흐린다. “아니지…. 이제와 생각해보니깐 입 막음 하려고 돈 준거 아니야?”



-


차장은 머리가 아프다.


차장은 상황을 인사팀장에게 알린다. 인사팀장은 이걸 법무팀에 넘겨야 하나 홍보팀에 넘겨야 하나 반나절 고민 한다. 팀장은 업무분장과는 관계없이 담배 동무인 홍보팀장에게 알린다. 홍보팀장은 업무분장에 대해 고민하다, 먼저 법무팀에게 소송이 들어오기는 한 건지 확인하기로 한다. 평소 안면이 있던 법무팀 과장에게 물어보는데, 과장은 “김학모”라는 이름을 “김학몽”으로 잘못들어 그런 사건은 없다고 회신한다… 다시 돌아돌아 김학모에게 전화가 간다: 


“저…선생님, 정말 소송을 걸 긴 한건가요?”  


김학모는 회사가 원하는 대로 ‘사실확인’을 해준다. 메신저로 김학모의 소장과 사건번호가 전송된다. 차장은 그걸 사내 이메일은 보낸다. 사건번호는 다시 돌아돌아 법무팀 과장에게 전달된다. 과장은 전산업무시스템으로 사건의 담당변호사가 바로 ‘그 놈의 고 변호사’라는 걸 확인한다. 그럼 그렇지.


과장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과장은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신다: 몸을 가볍게 데우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작성해 법무팀장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메일을 받은 팀장이 그를 부를 때까지는 10분정도가 걸릴 것이다. 10분 후에 그녀가 온다. 하지영 법무팀장.


“그 새....아니, 고변도 같이 데려오세요. 상무님도 오십니다.”


회의실에는 홍보팀장, 법무팀장, 홍순기 사장이 자리하고 계신다. 고인겸 변호사는 내심 기다리던 이 순간.


“자,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보실래요?” 


홍 사장이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묻는다. 


고인겸은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당당하게 회의실 중간으로 걸어 나간다: 힘찬 몸짓과 당당한 표현, 이 김학모 사건의 역사적 필연성과 중요성에 대해 일장연설.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 이 재능으로 가득찬 젊은 변호사가 사건을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하게 ‘핸들링’하고 있는지. 


홍 사장은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끝까지 말을 듣는다. 속으로는 대책을 강구하면서.


“자, 다 들었으니 이제 가보세요.” 


사장 긴급 이사회를 사집한다. 안건은 ‘김학모 사건 수습’이었지만 ‘법무팀장이 김학모 사건이라는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로 한참동안 얘기가 오간다(고인겸의 해고는 회의안건 축에 끼지도 못한다). 


가장 중요한 김학모 사건에 대한 대응은 ‘회장 협의 후에 결정’으로 일단락 된다: 회장한테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홍순기 사장은 자초지정을 회장에게 보고 한다.


정우령 회장이 말한다: “일단 소장이나 한번 봅시다.” 


이미 한번 소장을 흝어본 홍순기가 생각한다: "안 보시는게 좋을 텐데요?"



-





김민주 건에 대한 여론을 겨우 잠재웠다. 


수많은 홍보팀 사원들이 며칠동안 철야를 해가면서 여론을 김민주 본인을 탓하는 방향으로 호도했다. 어쨌거나 그녀가 물건을 훔친 건 맞으니깐. 김학주의 비극적인 죽음이 여론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주요언론사들, 방송사들에게 밥을 먹여가며 김민주와 김학주 부녀의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여론의 방향을 비틀어 놓았다 - 홍보팀은 문화와 여론을 왜곡하라고 고용된 자들이다. 그들은 충실히 그 업무에 임했다.


주가는 사건 전으로 회복되었다. 이제 ‘그 일’은 매일 같이 터져나오는 자극적인 사건들에 묻혀 잊혀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소송이 시작되면 다시 그 덮어버린 상처를 열어야 할 것이다.  소송의 승패와 관계없이 그것만은 피할 수 없다. 


오는 총선결과에 달렸지만 이른바 ‘알파법’이라고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끄러워지면 정치권에서도 법안통과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다. 


가장 쉬운 옵션: 소송자체를 매수해버리는 것. 다행히 아직 소송이 언론에 알려진 것이 아니니, 소송을 하면서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기 보다는, 김학모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김학모는 49억원을 요구했지만 큰 돈은 아니다. 실제 협상에 들어가면 절반의 절반까지도 깎을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특성상 소송대응을 한다면 그 배에 달하는 법률비용이 들 수 있다. 그게 홍 사장의 의견이었다.


김학주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친구라면. 


“결국 부딪혀야할 문제입니다. 실험대에 올리고, 실험을 받고, 실험결과를 보여줍시다.”


그라면 그렇게 말했겠지. 그는 자신의 산물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으니깐. 그는 검증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는  ‘비밀’을 알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는 거기에 접근하려고 했지, 그리고 거기서 밝혀낸 것을 세상에 증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우령이 그걸 외면했던 것이다. 정우령은 소장을 넘겨 보았다.


“우리 형님도 참... 뭐 이런 병신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을 죽게합니까?”


책상에는 김학주, 홍순기 상무와 찍은 사진이 놓여있었다. 얼큰하게 취해서 사명을 '알파'로 정한 밤. 


회장은 하지영 법무팀장에게 전화하여 모든 ‘리소스’를 총동원해서,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김학모 소송에서 반드시 이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리가 하자있는 물건을 만든 것이 아니야.”




-



첫 재판기일 2030. 9. 15.


오전 10시 첫사건. 


새벽부터 서울서 달려온 국내의 내노라하는 ‘명변호사들’이 줄을 지어 영월지원 3호법정으로 몰려든다. 변호사들은 차례차례 빈 법정을 향해 90도로 깍듯이 인사를 올린다. 


10년간 회사의 굵직한 주요사건의 변론을 맡아왔던 박영수 변호사, 대법관 출신에 기술특허관련 분야 최고의 권위자인 송이경 변호사, 승소률 90%를 자랑하는 송무계의 에이스 강덕구 변호사... 이들이 피고 측의 대리인으로 등장한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불리는 변호사 셋이 친히 시골까지 내려와 역사적 사건에 출석을 한 것이다. 이들을 수행하는 인원들만 해도 30명가까이 됐고, 기자들과 구경나온 방청객으로 좁은 법정은 금새 사람들로 가득찼다. 


재판장인 명예원 판사는 법정을 들어서다 이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목례를 하고 말았다. 모양은 좀 빠지지만: 개정을 선언한다. 


그리고 김학모는 2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원고가 불출석한 것으로 처리하고 다음 재판일자를 잡아야겠지만... 이 사람들을 그대로 돌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명예원은 눈치를 주고 실무관은 다급하게 김학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고, 좀 빨리 오세요, 지금 다 오셨어요.” 다시 전화한다. “원고 어디까지 오셨어요?” 다시 전화한다. “원고… 좀…”


김학모가 전날 술로 반쯤 취한 채로 헐래벌래 법정문을 열어재낀다. 


법정에 들어서자 마자 김학모는 이제까지 그가 참석했던 모든 재판에서 그랬던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큰 절을 올린다.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은 촬영을 금한 재판장의 명을 어길 수 밖에 없었다. 쫓겨날때 쫓겨나도 이런 멋진 장면을 놓칠 수는 없지 않는가. 플래시가 터진다.


명예원은 평소 재판정에서 유지하였던 무표정을 깨뜨리고, 미간에 생긴 작은 주름에 엄지손가락을 얹으면서 소리없이 탄식했다. 


“다 찍었으면 시작 하겠습니다.”


명판사가 사건번호와, 당사자의 이름을 호명한다. 


원고 김학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고석으로 달려나가 울음을 쏟아냈다. 실무관과 법정경위와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원고는 원고석으로 돌아갔다. 원고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피고가 알파 같은 괴물만 만들지 않았더라면 우리형, 우리조카 모두 살아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갑에서 흑백으로 처리된 김학주, 김민주의 사진을 꺼내 번쩍 들었다.


“이들은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평소 공정하면서도 당사자의 심정을 잘 아우르는 것으로 법원내에 소문이 자자한 명판사는 연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원고의 연극을 지켜본다. 법정에서의 연극이라면 이미 물릴정도로 보아온 명판사였고, 연극이라면 일생동안 해온 원고였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명판사는 모든 합리적인 판사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물어볼 법한 합리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원고는 변호사를 선임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는 절대 변호사를 믿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진짜 사기꾼은 변호사들입니다!”


명예원은 ‘그럼 원고도 일단은 사기꾼이라는 말씀이신가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김학모는 소리치며 지난 세월동안 자신이 얼마나 변호사들의 감언이설에 당해 왔는 지에 대한 장광설을 펼친다. 이번엔 중간에 제지할 수 밖에 없었다. 명판사는 몇  번더 변호사 선임을 권유하였지만 김학모는 변호사를 쓸 돈이 없다는 식으로 악을 부렸고, 명판사는 법률구조공단에 신청을 하라고 권유 했고(공단 사람들이 학을 땔 발언이었다)... 김학모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다.


“판사나리님.... 저는 돈 욕심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요, 제가 소송을 하는 건 우리형, 우리 아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걸 말하는게 아니고요....” 명예원이 중얼거렸다.


두통인 쌓인 피고 변호사들은 답변서(고인겸이 낸 그 답변서)와 준비서면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했다. 답변서 자체는 훌륭하여 딱히 수정할 것도 없었다.


명판사는 원고에게 앞으로의 입증계획과 진행방법에 대해 물었다. 


“형의 영혼이 대답할 것이야!” 김학모가 부르짖는다.


명판사는 다음 재판기일을 한달 후인 2030. 10. 20.로 잡았다. 


“오늘 원고의 주장은 충분히 들은 것 같습니다. 다음 재판기일까지 추가적인 주장이나 입증이 없으면 재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판사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법정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기자들은 변호사와 김학모에게 마이크를 들이민다. 전날 마신 술의 취기가 오른 김학모는 본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



철학원으로 돌아와 양푼그릇에 남아있던 막걸리를 비우고 신당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 몰려오는 쪽팔림. 


쌀점을 보기 위해 탁상위해 쌀을 던지지만 김학모는 그걸 읽지 않는다. 


자기도 사이비라는 걸 아니깐. 그래서 형의 영혼이 결코 그에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얼굴도 기억 안나는 조카의 영혼은 말할 것도 없지.


머리속을 울리는 플래시 소리들을 누르면서 김학모는 상황을 되짚어본다. 


이제 자신에게 승산이 없으리라는 건 알고있다. 회사가 회유에 굴하지 않은 시점은 이미 승부가 난 것이나 마찬가지.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나마 협상의 여지가 있겠지만 회사가 이미 정면대응이라는 방침을 정한 이상 이제와 체면을 잃어가면서 협상을 할 리는 없다.... 이 무슨 개망신인가? 전과 17범의 사기꾼의 말을 믿어줄 세상은 없다. 애당초 주식으로 날린 돈을 찾기 위해 무리한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굴지의 대기업을 상대로 무리한 싸움을 시작한 것 아닐까? 그들에게 무당 하나 찍어누르는게 일이나 될까? 어디 객사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내일이라도 없었던 일로 하고 남은 돈으로 어디 휴양지나 가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제2의 인생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는가?


소송은 그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 


고인겸 변호사가 밤 늦은 시간에 점을 보러왔다면서 연신 영월용한점집의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김학모는 여행용 가방에 옷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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