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은 양계장 주인처럼 기숙사를 관리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그가 돌봐야 하는 것들을 돌본다.
고정적인 거주지, 작업실, 그리고 일정한 수입이 필요했던 사감에게, 미술 선생과 사감이라는 자리는 마침 그 필요를 충족해줄 좋은 수단이었다. 수단이라기 보다는 ‘재료’였다. 그림을 그릴 재료. 그게 전부였다. 자신의 생활이나, 나아가 그의 인생까지도 그림들을 위한 도구나 재료정도로 취급했다. 많지 않은 급여은 대부분 물감이나 이런저런 미술 재료를 사는데 소비됐다. ‘재료’와 ‘그림’을 제외하면 그의 삶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직업에 따르는 여러 가지 의무들, 수업, 기숙사 관리 따위의 ‘재료’가 ‘그림’이 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쯤. 수요일 저녁쯤에는 물감이나 캔버스를 한가득 들고 왔다. 학교를 제외하면 아마 그게 세상과의 유일한 접촉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모두 캠퍼스 위에 쏟아진다. ‘그림’에 퍼부어 놓는다. 그는 언제나 기숙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2미터가까이되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공허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어떻게 선생이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부임한지 2, 3달 만에 떠나곤 하는 선생들 속에서 약 10년 넘게 묵묵히, 그것도 적임자를 찾기 쉽지 않은 미술이라는 특수과목을 맡아 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격이 충분했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기숙사 사감까지 자발적으로 맡고 있었으니 학교측으로는 이만한 ‘인재’도 없었을 것이다. 여자기숙사의 경우에는 사감이 맡으려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수차례 사감을 교체해야 했고, 끝내는 별도의 여자 사감 없이 여자기숙사를 운영해야 했다.
사감이 자신의 일에 서툴렀다는 것은 아니다. 오랜 경험으로 빚어진 것이 분명한, 나름의 합리성과 효율성이 있었다. 비록 오랜 경험으로 원칙은 마모되었지만. 아침 7시가 되면 그의 커다란 몸에서 나오는 특유의 굵고 울리는 목소리가 사생들을 깨웠고, 7시 30분까지 씻고 교복을 입게 했고, 식당으로 이동시켜 8시까지 아침식사를 하게 했다. 6시에는 저녁식사를 하게했고, 9시에는 점호를 불렀다. 이걸 따르지 않으면 매질을 했다. 그 외의 간섭은 없었다.
사감은 수업시간 외에는 기숙사에 머물기를 원했다. 교감은 교사는 수업이 없을 때라도 교무실에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걸로 상당히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교감과 사감이 언성을 높이다가 결국 사감이 그러면 차라리 그만두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교감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고 한다.
어차피 그가 교무실에서 하는 일이 많지 않기도 했고, 그의 유능함 덕에 시험기간이 아닌 이상 일주일에 1, 2시간 정도면 깔끔하게 사무를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교감도 이를 문제 삼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를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는 아예 교무실의 책상까지 치워버렸다. 그는 사감실에서 주홍색 탁상 등을 켜 놓고 사무를 보곤 했다. 수업이 없는 날 서류를 학교로 전달해야 할 때는 등굣길에 사생 중 하나에게 서류를 맡기곤 했다.
사생들을 학교로 보내면 사감은 그림을 그린다. 수업시간에 알람이 울리도록 시계를 맞춰 놓고. 시간이 되면 알람이 운다. 알람시계가 내는 삐- 삐- 하는 전자음이 복도를 타고 울려오곤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감은 다시 알람시계를 여섯 시에 맞추고 그림을 그렸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다시 예의 삐- 삐- 하는 전자음이 복도를 울렸다. 저녁식사를 하고나면 그는 알람시계를 9시로 맞추고 그림을 그렸다. 삐- 삐- 하고 알람이 복도에 울리면 그는 숙소로 와서 사생들에게 점호 비슷한 걸 하게 한다. 서류상의 필요였다. 그는 명부를 읽고, 학생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대답한다. 사감의 시선은 명부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간 이후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숙소 문 밖으로 걸어 다니거나 뛰어 다니는 소리, 웃음소리, 삐- 삐- 하는 알람 소리가 들리곤 했다.
사감은 우리 중에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기숙사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기숙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거기에 사는 사람들 - 사생들과 자기 자신에게는 무심했다. 교사들에게 학생들은 지나가는 존재다. 학생들은 몇 년이 지나면 졸업하고, 특별한 자랑거리가 생기지 않는 이상 다시 학교나 선생에게 찾아가진 않는다.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일부러 애정을 갖지 않으려는 교사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경우는 달랐다. 영혼 속 깊은 무관심이 있었다. 통조림 공장에서 통조림을 옮기듯이 선생 일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나 사생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올라오는 깡통 캔과 비슷했다. 학생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그가 처리해야하는 사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목장의 주인이 가축을 점검하듯.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도 무심 했다. 그는 삶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인상은 50대 초반의 그것이었으나, 정확한 나이는 알 길이 없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은, 그도 과거에는 이 기숙사의 사생이었다는 것, 방학기간을 포함해 그가 이미 20년이 넘도록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내가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긴장해서 그런지 감기에 심하게 걸려 기숙사에 남아 있게 되었다. 감기약에 취해 한참을 정신없이 자다 목이 말라 잠에서 깼다. 마침 물이 떨어져서 식당에 있는 급수기에서 물을 떠올 요량으로 주전자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은은한 햇빛이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있었다. 회색 빛 복도에 햇빛이 깔려 있다. 매끈한 복도 바닥은 그 햇빛을 초록색 벽면에 반사하고있었다.
사감이 사감실에서 나왔다.
사감은 불쑥 서류 봉지를 내 손에 쥐어 주고는 교감선생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감기 때문에 어렵겠다고 하자, 사감은 그제서야 내게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침에 이미 병가를 내는데 동의했는데 말이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다시 사감실로 들어가, 지갑을 챙기더니 별 말없이 나가버렸다.
나는 식당으로 내려가 주전자에 물을 받았다. 물 받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몸으로 식당 문을 밀고 들어왔다.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바지자락 몸에 비볐다. 기숙사 주변을 떠도는 ‘미미’라는 주인 없는 고양이였다. 나는 습관처럼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고, 주전자를 들고 숙소로 올라왔다. 목을 축이고 다시 침상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다 불현듯 사감이 하루 종일 자습실에서 틀어박혀 무슨 대단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건지 궁금해졌다. 점점 커지는 호기심 때문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사감이 외출한 지금이야 말로 그걸 구경해볼 최고의 기회가 아닌가.
자습실에는 칠판과 책상이 10개정도 있었지만 사감이 자습을 감독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습실이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감이 거기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숙제를 해야 할 때도 숙소로 책상을 옮겨서 하곤 했다. 자습실에 난방이 되지 않은 점도 이유였다. 그렇게 자습실은 자연스럽게 잘 가지 않는 곳이 되어 있었고, 사감의 개인 작업실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그가 없는 사이에, 그곳에 들어간다는 것이 마치 그의 세계를, 이 특이한 사람의 비밀을 염탐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나는 가능한 발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그곳으로 들어갔다.
창고 문 쪽으로 낡은 이젤이 서 있었고, 그 위엔 캔버스가 놓여 있었다. 캔버스 옆에는 팔레트와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나는 캔버스를 향해 걸어갔다.
공기가 답답했다. 오후의 햇빛이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그 햇빛이 자습실에 떠다니는 먼지들을 비췄다. 모든 것이 황금빛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처럼. 그림 속의 시간도 멈춰 있었다.
커다란 파도가 그려져 있었다.
진하고 어두운 파란색의 파도가 화폭을 가득 채웠다. 검은색과 하얀색 선들이 파도 안쪽에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선들이 어떤 형상을 갖추려고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어떤 구체적인 형상도 갖추지 못했다. 파도가 내려치는 부분이 뭉툭하고 길었다. 그 파도는 물의 질감과는 달랐다. 물 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질감이 있었다. 얼핏 보면 손가락 같기도 했다. 손의 모양을 한 파도가, 무언가를 집어삼키려는 듯이 손을 뻗는 것 같았다.
삐-삐-하는 알람소리가 울렸다.
“怎么样?” (어때?)
사감이 돌아와 있었다. 기울어진 햇빛이 회색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사감은 그늘에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나는 중국어로 대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조용히 책상 위에 알람시계를 껐다. 이미 여섯시 무렵이었다.
거인의 그것과 같은 손이 나의 이마를 만졌다. “이제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나는 이마를 뒤로 뺐다. 그의 손은 축축했다.
사감은 다른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투를 책상위에 올려놨다. 물감들이 들어 있었다. “밥 먹으러 가자.” 마침 사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저녁식사 도중에 혹시 다른 그림도 보여줄 수 있냐고 사감에게 물었는데, 사감은 듣지 못한 척했다. 며칠 후 저녁식사 시간에 사감은 느닷없이 나에게 그 그림을 완성했다고 말해줬다. 내가 보여 달라고 하자 다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복도에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내가 단 한 번도 그의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언제나 소리뿐이다. 복도 불은 모두 꺼져있다. 그 어둠 속에서 사감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꿈이었을까?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소독약 냄새, 아니 더 독한 무언가. 다음날 옥상 한 중간에 무언가 탄 흔적을 발견했다. 검은 재들 사이로 파란색의 기름 덩어리 같은 것들이 섞여있었다. 옥상 바로 옆에는 울창한 숲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숲과 새들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림을 태운 것이다. 그는 그가 그린 모든 그림을 태우고 있었던 것이다.